대통령 측근비리 특검팀의 하루하루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검찰서 넘겨받은 자료를 검토해야 하고, 또 관련자를 소환해 추가 조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연일 특검팀을 둘러싸고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다. 특검팀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점검하고 있는 상황. 이를 둘러싼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1월 28일. ‘`대통령 측근비리’를 수사중인 김진흥 특검팀이 양길승 비리 의혹과 관련, 김도훈 전 청주지검 검사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하기로 한 이날의 현장을 스케치했다.1월 28일은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 대한 ‘몰래 카메라’사건을 주도하고 자신이 맡았던 사건 관련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 등)로 불구속 기소되어 징역 7년, 추징금 2,629만원을 구형 받은 김도훈(37) 전 청주지검 검사가 참고인 자격으로 특검의 소환을 받고 오기로 한 날.

오전 8시10분 :반포에 위치한 특검 사무실 건물 앞. 며칠간 위세를 떨친 강추위가 한풀 꺾여 다소 포근했지만 그래도 아침공기는 여전히 쌀쌀했다. 구정연휴 기간 중에도 특검 사무실에 나와 자리를 지켰던 취재 기자들. 이날도 변함없이 기자들이 아침부터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특검 사무실 개소 이후 동고동락해 온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주고받는 화제는 김도훈 전 검사의 소환.

오전 8시30분 :건물 현관은 어느새 기자들로 포화상태. 이들의 취재열기는 한겨울의 추위도 무색케 할 정도. 특검 검사와 소환 대상자를 기다리는 동안 젊은 기자들은 갖가지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며 담소를 나누는 반면, 관록있는 고참 기자들은 추위를 녹이려 히터주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이 건물을 지키는 수위는 기자들의 소란에 이골이 날 법도 한데 추위에 떠는 기자들에게 자신이 쬐던 전기히터까지 제공하며 미소로 격려한다.

오전 9시 :시계바늘이 9시에 다다르자 어디선가 ‘왔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기자들은 프로답게 일제히 나누던 대화를 멈추고 즉각 취재 태세를 갖췄다. 이들의 움직임은 잘 훈련된 군인들이 작전을 수행하는 듯했다. 정확히 출근시간에 맞춰 도착한 김진흥 특검은 남색 코트에 깔끔한 느낌의 황색 넥타이를 매고 건물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가 들어서자 사방에서 카메라 플레시가 터지는가 싶더니 기자들이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다. 하지만 정작 질문공세는 없고 김 특검에게 가까이 접근하려는 몸싸움만 치열했다. 그 모습은 흡사 톱스타를 쫓는 소녀 팬들과 같았다. 김 특검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자 기자들은 몸싸움하느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서로 엉켜 한 덩어리가 된 채 그를 따라 움직였다. 취재경쟁 앞에선 동료도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김 특검은 기자들의 몸싸움에 이리저리 밀리면서도 다소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르자 누군가가 질문의 물꼬를 텄다.카메라기자들과 펜기자(취재기자)가 뒤엉켜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최초의 질문이 나오는 순간 이에 대한 특검의 답변을 듣기 위해 모두 얼어붙은 듯 몸싸움을 멈추고 특검의 입을 주시했다.최초의 질문은 혹시 소환자 중 김도훈 전 검사 이외에 비공개로 소환되는 사람도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김 검사는 “비공개 소환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면서 “비공개 소환자가 있다 하더라도 개인프라이버시 보호차원에서 공개는 곤란하다”고 대답, 비공개 소환 가능성을 시사했다.또 이번 사건이 특정 종교단체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특검은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어디서 그런 이야길 들었냐”고 기자에게 반문하며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 문이 열리자 서로 특검과 엘리베이터에 동승하려고 몸싸움 벌였다. 여기서는 선후배 가릴 것 없이 민첩한 사람이 이기는 법.

오전 9시 20분 :엘리베이터를 타고 김 특검이 사라지자 분위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돌변했다. 일부 기자들은 조금전의 질문과 답변을 잘 듣지 못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동냥취재를 하는가 하면 친한 기자들끼리는 서로 모여 내용을 검토하며 취재에서 빠진 부분이 있는지 체크했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 주변을 떠나지 않는 기자들, 알고 보니 동승한 기자들이 내려와 전할 내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그러나 김 특검에게 한마디라도 더 듣겠다는 일념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엘리베이터에 동승했던 이들이 내려와 하는 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물어봐도 굳게 입을 다물더라”였다.북적이던 1층 현관은 서서히 파장 분위기로 바뀌었다. 추가로 수확할 것이 없다는 사실에 김빠진 기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한 것. 그래도 일부 기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특검 사무실이 있는 4. 5층으로 올라갔다.

오전 9시 30분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이 포토라인을 설정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자신을 특검실 행정계장이라 소개하며 나타난 사람이 지면으로부터 50센티미터 가량 띄워 설치하려던 포토라인 테이프를 바닥에 붙여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해 기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나 취재에 혈안이 되어 있는 많은 기자들의 의견을 혼자 힘으로 바꾸기는 역부족. 결국 행정계장의 의견은 묵살되어 사진기자들의 의견대로 포토라인이 설치되었다.

오전 9시 40분 :예정된 소환시간인 10시가 가까워 오자 흩어져있던 기자들은 설치된 포토라인 주위로 다시 몰려들었다. 여기서도 서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사진기자들은 시야를 확보키 위해 아예 사다리까지 동원했다.이에 반해 자리싸움에 아랑곳 않고 느긋하게 히터 옆에 앉아 신문을 보며 기다리는 기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고참 기자들. 각 언론사들은 특검에 2∼3명씩 팀을 짜서 기자를 배치하기 마련. 때문에 고참 기자는 후배기자 덕에 여유 있는 모습이다.기다리는 동안 기자들은 누가 김도훈 전 검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동승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을 나눴다. 오늘의 주인공 김 전 검사에게는 김진흥 검사 출근 때와 달리 소수정예로 접근하겠다는 의도다. 제대로 취재하기 위해서는 혼란을 줄이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의견을 나눈 결과 현관에서 취재가 끝난 후 사진기자는 빠지기로 하고 펜기자와 방송기자 각각 2명씩만 동승하기로 결정됐다.

오전 9시 50분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있던 한 사람이 현관문을 열고 “왔다, 왔어”라고 외쳤다. 이에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 등으로 시끌벅적하던 현관은 일순간에 정적이 감돌았다. 긴장감마저 감도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김도훈 전 검사가 현관에 들어섰다. 김 전 검사가 등장하자 20여개의 카메라 플레시가 일제히 터져 나이트 클럽을 방불케 했다.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넘긴 김 전 검사는 짙은 남색의 울 코드를 입고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김 전 검사가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띠고 등장하자 누군가 “웃지 마세요”라고 크게 말했다. 이에 김 전 검사의 표정이 야릇하게 굳어졌다.

김 전 검사의 수행원 중 한 명이 “질문하실 분 없으시면 이만 가도 되겠지요?”라고 묻자 그제서야 누군가가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이에 대해 검 전 검사는 느닷없이 “수사는 보안이 가장 중요하다. 보안에 실패하면 수사도 실패한다”는 묘한 답변을 했고, 김 전 검사의 특이한 답변거부 멘트에 기자들 모두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순간 장내는 또 다시 어색한 정적이 감도는 웃지못할 상황이 연출되었다.또 다른 기자가 재차 오늘 준비해 온 것 중 새로운 것이 있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또 검찰이 7년을 구형한 것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그것은 검찰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라고 자신감에 찬 어조로 짧게 말했다.

오전 10시 5분 :김 전 검사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기자들도 자리를 옮기며 또 다시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동승키로 했던 기자 4명이 재빨리 김 전 검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잠시 후 동승했던 기자들이 다시 내려오자 동료기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더냐며 몰려들었지만 “한 마디도 못들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에이, 이게 뭐야’라며 실망감을 표시했다.

오전 10시 20분 :오후 2시30분에 기자실에서 있을 예정인 브리핑을 앞두고 기자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졌고 방송사 카메라 기자를 제외한 일부 카메라 기자들은 주섬주섬 짐을 싸들고 철수했다.수확이 부족하다 느꼈는지 모 방송사 카메라 기자는 특검 사무실의 건물을 찍기 위해 건물앞 차도 중앙선까지 진출해 촬영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였다.4층 사무실 앞에 난로까지 갖다놓고 진을 친 기자들은 두 차례 전쟁을 치른 후 난로가에 모여 앉아 차와 함께 사담을 나눴다. 그렇다고 긴장마저 늦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편물 택배기사가 노란 대봉투에 든 우편물을 가지고 등장하자 느긋하게 사담을 나누던 기자들은 마치 회장님이라도 등장한 듯 동시에 모두 기립, 한꺼번에 내용물을 확인하려고 택배기사에게 몰려들었다. 놀란 택배기사가 왜들 그러느냐며 뒷걸음질치는 것은 당연한 일. 기자들은 합창하듯 그 우편물이 어디서 온 거냐, 내용물이 뭐냐, 좀 볼 수 없느냐 등등의 질문을 쏟아냈다.택배 기사는 “농협에서 온 건데 내용은 모르며 내용물을 보여 줄 순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하며 기자들을 뿌리치고 특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전 11시 50분 :김진흥 검사가 점심식사를 위해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 4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모두 일어나 김도훈 전 검사와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물으며 달라붙었지만, 그는 아직 특별한 사항 없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오후 2시 20분 :2시 30분에 있을 브리핑 시간이 가까워 오자 흩어졌던 기자들이 다시 기자실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특검 기자실 자리를 비웠던 기자들은 혹시 새로 들어온 정보가 있는지 동료 기자들에게 확인한다.특검 사무실이 자리한 건물 지하 1층에 마련된 기자실은 각 언론사가 공동으로 경비를 부담하고 마련했다. 이곳에는 인터넷을 위한 장비, 휴대폰 통화를 위한 간이 기지국, 이동식 대형 난방장치, 냉온수기 등 각종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브리핑 예정 시간을 10분 넘긴 2시40분, 드디어 브리핑을 위해 이우승 특검보가 들어왔고 기자들은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태세로 전진 이동했다. 이씨가 소환자에 대한 조사 내용을 발표하기 시작하자 기자실 내부는 이를 받아 적느라 노트북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로 요동쳤다. 노트북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에 발표자의 목소리가 파묻혀 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브리핑이 끝나자 기자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고 특검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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