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 조항 적용 못 받아 “장시간 근무에 환자 안전 우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뉴시스>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보건업 종사자들이 극심한 노동 강도와 과중한 업무시간, 저녁 없는 삶에 눈물짓고 있다.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서 보건업이 특례업종에 포함돼 이를 적용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보건업 종사자들은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고통받고 있다. 1인당 돌봐야 하는 환자의 수가 너무 많아서 버겁고 환자의 안전도 걱정된다”며 우려하고 있다. 보건업이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포함된 까닭과 보건업계 종사자들의 입장에 대해 알아봤다.

극심한 노동 강도·과중한 업무 시간…저녁 없는 삶 눈물
6개월 계도기간 갖는다는 정부…의견 차 좁혀질지 의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 2월 27일 1주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축소하는 노동시간 단축안에 합의했다. 합의문에는 주 40시간을 초과한 8시간 이내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하고, 8시간을 초과하는 휴일근로는 통상임금의 100%를 가산하는 내용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민간에도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노동시간 특례제도를 완전히 폐기하지 않은 점이다. 현재 26개 특례업종을 대부분 폐지하되 ▲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운송서비스업 ▲보건업 등 5개 업종은 제외돼 종사자들의 불만과 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특히 보건업의 경우 한의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한의사, 간호사 등도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오는 7월부터 시행될 근로기준법 개정안 적용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근로기준법 제59조에 따르면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 일정한 업종을 한정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업종을 말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연장근로 시간은 주당 최대 12시간을 넘길 수 없지만,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지정할 수 있다. 보건업이 포함된 이유는 일반 시민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업종 근로자의 경우 주 52시간을 넘어 연장 근로를 하게 되더라도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이 아니다. 휴일근로의 경우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받거나 8시간 초과하는 휴일근로에 대해 200%를 지급하도록 하는 개정안도 해당 사항이 아니다. 단, 비정상적인 초과 근무가 없도록 근무 후에는 11시간 연속 휴식권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보건업 종사자들이 과도한 장시간 근무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병원에는 장시간 노동이 횡행하고 있다. 2017년 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당 1일 평균 연장근무 시간은 82.2분이다. 이는 주당 평균 노동시간 46.85시간을 근무하고 있고, 연간 평균 2436시간을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2016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는 비율이 10.8%에 이른다.

종사자들 불만…업계 반발 거세

김포 N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근무하는 임상병리사 K씨(29)는 “우리나라 의료 환경 자체가 워낙 열악하고 바쁘다는 인식이 많다 보니, 고통을 감내하고 일하는 직원들이 많다. 근무 시간이 지나도 검사해야 하는 사람이 남아있는 한 일이 끝났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한없이 근무시간이 연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의료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차라리 근무시간이 줄어들고 월급 줄어들어도 사람을 더 채용하는 게 훨씬 낫다. 환자들을 위해서도, 근무자를 위해서도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이 종사자들의 생각”이라고 하소연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병원의 경우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이 관행이다. 최근 서울아산병원에서 자살한 신규 간호사는 저녁 근무 당시 오후 1시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 5시에 퇴근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정 근로시간이 준수되지 않고 일상적인 연장근로가 관례처럼 굳어져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지 않는 것은 병원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탁상정책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병원의 장시간 노동은 업무 특성 때문이 아니라 인력 부족 때문에 발생한다. 병원의 장시간 노동은 ▲적은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담당하게 하거나 많은 업무를 하게 하는 경우 ▲충분한 적응 기간이나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신규 인력을 곧바로 투입하는 경우 ▲이직률이 높아 숙련 인력이 부족한 경우 ▲충분한 인력 충원 없이 각종 회의·교육·행사·평가준비 등 엄청난 업무를 감당하게 만드는 경우 ▲각 직종 간의 업무 분장을 제대로 하지 않아 각 직종의 고유 업무를 타 직종이 대행하는 경우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2월 성명을 내고 “의사들의 장시간 노동이야말로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충분한 의사 인력 확보가 해답이지 의사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노동시간 특례제도 유지가 해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례 업종 지정할 이유 없어”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보건업을 근로시간 특례 대상 업종으로 지정해야 할 필요성과 관련해 응급상황을 예로 들지만, 응급수술이나 장시간이 소요되는 수술 등 응급상황의 발생으로 인해 연장근로가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반 수술은 대개 통상근무시간 내에 수술시간을 예약해 놓기 때문에 연장근로가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다. 응급수술의 경우에도 응급수술에 대비한 수술실 당직 근무자와 저녁 근무자가 있고, 주말이나 휴일의 경우 ‘콜 당직 제도’까지 가동하기 때문에 응급수술로 인한 연장근로 발생하는 경우는 실제로는 극히 드물다는 설명이다.

다만,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대형사고, 지진이나 신종플루, 메르스 같은 긴급 재난 등 특수한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긴급 재난의 경우에는 ‘근로시간 특례제도’가 아니라 ‘긴급재난 시 근로시간 특례’규정을 만들어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보건업은 상시적인 초과근로 대상사업도 아니고, 특수한 경우에도 장시간근로를 발생시키지 않는 교대 근무제, 당직 근무제 등이 운영되고 있으므로 보건의료산업을 노동시간 특례 대상 업종에 묶어둘 이유는 없다. 보건업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으로 계속 유지할 경우 인력부족으로 인한 병원 내 장시간노동을 악용하고 방치하는 핑계거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오는 2020년까지 노동시간을 1800시간대로 단축하기 위한 로드맵에 따라 2018년부터 병원 내 장시간 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시간외노동 줄이기 운동을 전면화하고, 시간외노동을 줄이기 위한 인력 확충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다.

한편 당·정·청이 지난 20일 다음 달 1일로 다가온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6개월간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도입한다는 결론을 내려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시행을 불과 열흘 앞두고 내린 결정인데,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는 “근로시간 단축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충정의 제안이라고 받아들인다.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계도기간과 관계없이 5개 업종이 특례업종으로 남게 되면서 특례업종 전면 폐지는 유보됐다.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남은 특례업종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특례업종이 유지되는 한 종사자들과 정부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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