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면접관…딸 채용면접 본 부행장 ‘빗나간 父情’

<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은행’은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직업으로 청년들 사이에서 ‘신의 직장’이라 불린다. 경쟁률도 최대 100:1에 이르고 있다. 최근 국내 금융권에선 ‘금수저 은행’, ‘스카이 은행’ 등 신조어가 탄생하고 있다. 검찰이 지난해 11월부터 8개월간 전국 6개 시중은행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결과 은행권에서는 임직원 자녀 등을 포함한 취업 청탁·취업비리가 만연한 형세였다. 이에 일각에선 외부 심사위원 참여와 미국식 징벌적 배상제를 투명성 강화의 방안으로 제시한다.


- ‘채용 금수저’ 알리기 위한 표식까지…로비 도구로 활용하기도
- 전문가 “무너진 감시 지배구조가 원인…노동조합도 침묵 깨야”



대검찰청은 지난 18일 시중은행 3곳과 지방은행 3곳에 대한 ‘은행권 채용비리’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검찰청 반부패부(김우현 검사장)는 “수사 결과 12명을 구속기소, 26명을 불구속기소, 남녀를 차별해 채용한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을 양벌규정으로 기소했다”라고 밝혔다.

외부인 청탁·임직원 자녀 특혜 채용 등 재판에 넘겨진 채용비리 건수는 총 695건에 달했다.

청탁은 은행장이나 임직원을 통한 정관계 인사뿐만 아니라 지점장 등이 추천한 주요 거래처 자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뤄졌다.

대부분 은행이 채용 청탁이 있을 경우 서류 면접은 무조건 통과시켜주는 관행이 있었다는 사실도 검찰 수사 결과 발견됐다.

 
고의적으로 낮춘
여성 채용 비율

 

채용비리 행태는 다양하다. 각 은행은 ‘채용 금수저’를 알리기 위해 사용되는 표식이 있다. A은행은 특정 지원자의 서류에 ‘함XX 대표님’이란 추천인의 이름을 적는가 하면 한 지원자의 서류전형엔 아예 ‘최종합격’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B은행의 경우는 채용 청탁 대상자들의 이름 옆에 ‘필(必)’ 자를 적어 넣었다.

지방 C은행은 기준에 못 미치는 일부 지원자에 돌머리를 뜻하는 ‘SB(Stone Brain)’라고 표기한 뒤 합격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청탁 대상자를 위한 조건 추가, 반복적 점수 조작, 자격 조작 등은 비일비재하다. A은행은 청탁대상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공고에도 없던 ‘해외대학 출신’ 전형을 별도로 신설했다. 이것도 모자라 344명 중 341위, 480명 중 456위로 합격권에 못 미치는 불합격 대상 2명을 최종 합격시켰다.

지방 D은행은 은행장의 주요 거래처 자녀 채용 지시를 받아 보훈대상자가 아닌 지원자에게 가짜 보훈 번호를 부여하고 영업지원직(보훈특채) 전형으로 합격시킨 바 있다.

고의로 여성 채용 비중을 낮추기 위한 점수 조작도 다수 발견됐다. A은행은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내부적으로 남녀 채용 비율을 4:1로 설정, 성별에 따라 별도 합격선을 설정했다. 이 때문에 지원자 중 40%였던 여성 비율이 합격자에서는 8~20%에 머물렀다.

다른 한 은행은 지난 2015년 1차 서류전형에서 여성합격자 비율이 높게 나타나자 여성 지원자 112명의 등급 점수를 낮추고 남성지원자 113명의 등급 점수를 높이는 방식으로 여성 합격자를 탈락시켰다.

일부 지방은행들은 채용을 로비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C은행은 지난 2015년 공채 당시 1조4000억 원 규모 경상남도 도(道) 금고 유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남발전연구원장 딸에 대한 청탁을 받고 단계별로 점수를 고쳤다. 그러고도 합격권에 못 들자 선발 예정 인원을 증원했으며 임원 면접 과정에서 애초 계획에 없던 영어면접까지 진행해 합격시켰다.

 
<뉴시스>

앞서 이 은행은 지난 2013년 부산시 금고 재지정을 앞두고 부산시 세정담당관의 아들 채용 청탁을 받아 재유치에 대한 대가로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켰다.
 

딸 면접 참여한 임원
‘만점’ 부여
 


이처럼 채용비리 문화가 고착화된 은행 내부에선 최근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일어났다.

한 은행 채용팀장은 부행장의 딸과 이름, 생년월일이 모두 같은 응시자가 지원하자 부행장의 딸인 줄 착각하고 논술 점수를 조작해 필기전형에서 합격시켰다. 이후 이 채용팀장은 부행장 자녀가 남성으로 군 복무 중인 사실을 알게 되자 해당 지원자를 면접에서 탈락시켰다.

부행장의 부탁은 없었지만 채용팀장의 과잉 충성으로 벌어진 촌극인 셈이다.

지방 E은행의 2015년 신입 행원 채용 면접에서는 ‘부녀 상봉’이 이뤄졌다. 인사 및 채용 부문 총괄 임원과 그의 딸이 2차 면접에서 평가자와 지원자로 마주앉은 것.

이 임원의 딸은 자기소개서에 부친의 지위를 그대로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는 딸에게 면접 최고점수를 줬고 딸은 최종 합격했다.

이와 관련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간사는 한국 사회는 ‘경쟁’만 있을 뿐 ‘공정함’은 없는 사회라고 비판했다. 그는 “수많은 청년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노력한다. 취업을 마지막 공정 무대라고 생각했을 청년들을 들러리로 세운 사실은 단순한 비리가 아니다”며 “국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다”라고 했다.

아울러 전 간사는 “타고난 성별로 채용을 결정하는 행태는 여성들에게 상당히 폭력적인 일임과 동시에 아직도 우리 사회의 약자가 여성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명백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다. 고용노동부에서 성차별 채용에 대한 감독을 철저히 하고 법 위반자 명단 공개, 승진 제한 등 강력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에 채용비리가 많은 이유로 무너진 감시 지배구조를 꼽았다. 그는 “채용비리는 공공기관 중에서도 계약직 혹은 임시직으로 뽑는다든가 아니면 특채로 뽑는 경우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 같다. 전통적으로 시험을 보고 입사를 하는 것보다는 특채 형식으로 뽑는데 청탁이 들어오면 눈감아주고 넘어가 이런 관례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내부 공공기관의 감시 지배구조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사위원들이 이런 비리를 적발해내야 하는데 기관장과 정부 눈치를 보는 입장이기도 해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다”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조 교수는 노동조합의 침묵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노조가 임직원 자녀 채용 비리에 대해 사실상 방기했다는 것은 한국 노동조합이 현재 어느 위치에 와 있느냐는 것을 보여준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조 교수는 투명성 강화하기 위해선 외부 심사위원 참여와 미국식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혹시라도 있을 내부의 담합 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이다. 그는 “3배가 아닌 50~1000배의 징벌적 배상제가 정착돼 기업들이 잘못하면 크게 손해를 보는 경종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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