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 재벌인 삼성은 고민이 크다. 삼성을 사실상 지배하는 이씨 일가는 수십조 원의 돈을 상속받을 자식이 셋이나 있지만 기업가 정신을 물려받을 계승자가 불분명하다. 3세인 이재용은 재산의 상속자일 뿐 계승자라 불리기엔 부족하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 수성보다 재창업을 택한 이건희를 잇기엔 아직 삼성의 3세 오너가 증명해야 할 것들이 많다.
 
창업보다 어려운 게 수성이라고 한다. 1대는 타고난 기업가정신으로 자수성가했으니 망할 일이 없다. 창업을 옆에서 지켜 본 2대도 재산 지킬 정도 재주는 갖추게 된다. 하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3대에 이르면 진정한 유산은 사라지고 돈만 남는다. 많은 가문, 기업, 종교들이 3대를 못 넘겼기에 부불삼대(富不三代), 부자가 삼대를 못 간다는 말은 허언(虛言)이 아니다.
 
한국사회 민주개혁 정치세력은 문재인 대에 이르러 비로소 창업의 완결이라 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 결과로 문재인은 창업세대인 김대중, 노무현이 갈아엎고 씨 뿌린 자갈밭을 옥토로 바꾸고 있다. 문재인은 취임 초 기대를 넘어 여느 창업자들 못지않은 원대한 비전과 도전정신으로 민주개혁세력의 성공가도를 이끌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창업세대인 김대중, 노무현. 창업과 수성을 동시에 하고 있는 문재인. 그 뒤를 누가 이을 것인가? 지난 대선 경선의 결과였던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의 3자 정립은 안희정이 무너지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안희정의 탈락으로 인한 친노, 친문 진영을 대표할 대권 주자의 공백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김경수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메워지고 있다.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안희정이 무너진 자리는 김경수가 아니라도 누군가의 이름으로 메워졌을 것이다. 때마침 조선일보가 ‘드루킹 사건’을 집요하게 치고 나온 것은 김경수에게는 천운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드루킹 특검을 건너야 할 과제가 남았지만 김경수는 친노, 친문진영의 계승자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김경수는 이재명과 함께 뻔히 결과가 예상된 밋밋한 지방선거를 뜨겁게 달궜다. 두 사람은 주변의 기대대로라면 다음 대선 국면에서 격돌할 가능성이 높다. 김경수는 친노, 친문의 상속자로, 이재명은 물려받은 정치적 유산이 없는 변방인으로. 친노, 친문의 상속자와 변방에서 온 포퓰리스트는 민주개혁세력의 3대를 노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것으로 보인다.
 
친노, 친문의 상속자가 된 김경수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보여 준 것이 별로 없다. 치열했던 경남도지사 선거 전에서 가장 빛났던 것은 김태호의 개인기였다. 선거 결과를 결정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김경수는 드루킹이란 사건을 타고 대권 주자로 부상했지만, 인간적 매력을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한다. 다행히 아직 시간은 김경수 편이다.
 
이재명은 선택의 기로에 선 것으로 보인다. 이 변방에서 온 포퓰리스트가 최대 지분을 가진 친노, 친문세력을 넘어 민주개혁세력의 3대로 우뚝 설 수 있을까? 일단 경기도지사직에 오르면서 그 가능성은 보여줬다. 상처뿐인 승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포퓰리스트에게 상처는 훈장일 수 있다.
 
친노, 친문을 등에 업고 대권 주자에 오른 김경수, 꾹꾹 눌러 참았던 자신을 드러내면서 변방인의 길을 걸을 이재명, 서울시장 3선에 성공한 박원순, 마지막 공략지인 TK를 근거지로 둔 김부겸. 승리자가 누구일지 모르지만 단순 상속자가 아닌 계승자의 길을 걷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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