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6.13 지방선거 당선자들 가운데 일부는 선거가 끝났음에도 좌불안석(坐不安席)인 모습이다. 이번 지선이 여당의 압도적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선거법 위반 사범을 가릴 수사당국의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는 탓이다.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에도 당선자 94명이 선거법 위반 등으로 당선 무효형을 확정받고 직을 잃었다. 중앙선관위와 검찰 등에 따르면 이번 지선에 당선된 ‘거물급 인사’ 상당수가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 당선인·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인·이재명 경기지사 당선인 등이 대표적이다. 수사당국은 이미 엄단 의지를 천명한 상태다. 공직선거법상 ‘100만 원’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다면 당선이 무효 처리된다.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선거에 출마할 수도 없다.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12월 13일께, 무더기 당선 무효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 ‘당선 무효’ 걱정에 이겼어도 ‘좌불안석(坐不安席)’ ‘일장춘몽’ 위기의 ‘3인’
- 權 ‘선거법 위반’·金 ‘드루킹 특검’·李 ‘여배우 스캔들’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마무리되면서 선거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는 일부 당선인들에 대한 검·경 수사도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대검찰청 발표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총 2113명의 선거사범이 입건됐고, 85%에 이르는 1801명이 수사대상이다. 주목할 점은 이 가운데 광역단체장에 선출된 17명 중 8명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권영진 대구시장 당선인·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인·이재명 경기지사 당선인 등이다.
 
權 “위반 인정… 고의성 없어”
劍 “위법성 조각 안 돼… 처벌 가능”

 
권영진 대구시장 당선인은 자유한국당 대구시장 후보 공천을 받기 위해 지난 3월 23일 예비후보로 등록했다가 공천이 확정되자 예비후보를 사퇴, 업무에 복귀했다. 이후 5월 5일, 권 당선인은 현직 지방자치단체장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조성제 달성군수 예비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 22분간 인사말을 하면서 자신과 조 예비후보의 업적을 홍보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 조 예비후보는 보도자료를 통해 “권영진 대구시장이 ‘달성군 발전을 위한 조성제 후보의 꿈이 곧 달성군민의 꿈이다. 함께 꿈을 이루자’며 자신을 응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86조 2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선거일 전 6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대책기구, 선거사무소, 선거연락소를 방문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에 대구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17일 권 당선인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대구지검은 4일 후인 21일 권 당선인의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수사를 공안부(서성호 부장검사)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자신이 대구시 선관위에 권 당선인을 고발했다고 밝힌 대구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선관위에서 당초 권 당선인을 고발하지 않고 있었다”며 “그래서 내가 선관위원장을 고발했고 그제야 선관위원장이 권 당선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선관위원장 자신이 면책받으려면 권 당선인을 고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구의 많은 시민단체들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나 역시 대구지역 시민단체의 장으로서 조사를 촉구하는 바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구 지역 시민단체는 권 당선인에 대한 조속하고 엄중한 조사를 거듭 요구하고 있다. 대구참여연대는 지난달 18일 성명을 통해 “선관위가 경고에 그치지 않고 고발 및 수사 의뢰까지 한 것은 권 시장의 행위가 선거법 위반이 확실할 뿐만 아니라 형사적 조치가 필요할 만큼 중대하다는 것”이라며 “만약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내려질 경우 당선 무효로 재선거를 치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권 당선인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드러날 경우 기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지검 최태원 제2차장 검사는 지난 5월 28일 “선거법상 권 후보의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약식기소가 불가능해 정식 채판을 청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해용 전 대구시 정무특보는 “권 시장은 조 달성군수 선거사무소 개소식 참석이 선거법 위반인지 꿈에도 몰랐고 선거 실무진도 권 시장이 예비후보직을 사퇴했다는 점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권 당선인 측 관계자 역시 “조성제 예비후보 개소식 참석은 달리 변명할 것도 없이 100% 위반을 인정한다”며 “고의성이 없는 단순한 착오였는데, 선관위 조사에 임해 적극 해명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최 차장 검사는 “권 시장이 위법성을 몰랐다고 주장하더라도 위법성을 조각(阻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위법성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정이 인정된 경우는 드물다. 권 시장이 선관위 등 공무원에게 물어본 것이 아닌 만큼 법적 책임은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권 당선인은 비슷한 시기에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행사에 참석해서 사전선거운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에는 권 당선인이 지난달 22일 동구의 한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행사에 참석해 유권자들에게 바른미래당 소속인 강대식 동구청장 지지와 자신의 지지를 호소해 사전선거운동을 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다만 선관위는 해당 신고에 대해서는 관계자 진술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이 아닌 수사를 의뢰하는데 그쳤다.
 
대구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달성군수 지지의 경우 자신의 선거법 위반을 입증할 확실한 ‘비디오’가 존재하기 때문에 권 당선인 측에서 잡아떼지 못하고 인정한 것”이라면서 “그런데 동구청장 지지와 관련해서는 ‘비디오’가 없고, 증언이 좀 다르다 보니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권 당선인 측 관계자는 강대식 동구청장 후보 지지와 관련해 “체육대회 부스에서 단순하게 오간 이야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작부터 꼬이는 ‘드루킹 특검’,
“박영수 특검은 5일 만에 수사 착수”

 
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자에 대한 ‘드루킹 특검’의 칼날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6.13 지방선거에서 드루킹 사건 핵심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김경수 의원이 당선됐고, 특별검사 임명장을 수여받은 허익범 특검은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14일 허익범 특별검사는 기자들과 만나 김 당선자 수사에 대해 “이전에도 국회의원이었고 지금은 (도지사) 당선이 됐다”며 “필요하면 변함없이 (수사를) 할 것”이라고 원칙적인 입장을 보였다.
 
허 특검이 수사에 성역이 없다는 원칙을 거듭 밝혔지만, 법조계에선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특검팀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김 당선자의 정치적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진 게 부담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검이 정무적 판단을 하지는 않겠지만 이번 선거 승리로 김 당선자의 정치적 입지가 공고해졌다”면서 “가뜩이나 쉽지 않은 수사가 더 쉽지 않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일각에서는 자료 확보와 인선 구성이 늦어지면서 ‘드루킹 특검’의 수사가 시작부터 꼬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농단 박영수 특검팀’의 경우 특검 임명 후 5일 만에 수사 인력과 자료 확보를 모두 마치고 수사에 착수한 반면 ‘드루킹 특검’의 경우 지난 8일 특검 임명 후 22일 현재 14일이 지났지만 수사팀 구성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과 정치권에 따르면 경찰의 수사가 특검 수사로까지 발전한 이유는 사건의 주범인 드루킹 일당이 ‘민주당원’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찰 수사 초기에는 수억 원대에 이르는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운영 자금이 민주당에서 흘러들어 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드루킹 일당 가운데 한 명이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다는 의혹도 잇따랐다.
 
하지만 경찰은 드루킹 일당과 민주당의 관련 여부가 아니라 댓글 조작 혐의에만 국한에 수사를 했다는 빈축을 낳았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드루킹 일당의 혐의가 더 늘어났다. 경찰은 또 드루킹의 주요 범행 동기인 ‘인사 청탁’ 여부도 확실히 밝혀내지 못했다.
 
결국 이번 특검의 성패는 김 당선자가 드루킹 김동원(49·구속)씨와 어떤 관계였고, 드루킹 일당의 매크로(자동 반복 입력) 프로그램 사용 사실을 알고 있었냐를 밝히는 것에 달렸다. 때문에 수사의 칼날이 김 당선자에게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부선 스캔들’·‘혜경궁 김씨’
의혹... 경찰 수사 본격화

 
이재명 경기지사 당선인 역시 마음을 졸이기는 마찬가지다. 지선 당시 막판까지 이 당선인의 발목을 잡았던 배우 김부선 씨와의 ‘여배우 스캔들’이 정식 수사에 돌입하면서다. 분당경찰서는 지난 17일 바른미래당이 ‘여배우 스캔들 해명은 거짓’이라 주장하며 이 당선자를 검찰에 고발한 사건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넘겨받아 수사한다고 밝혔다.
 
앞서 바른미래당 성남적폐진상조사특위는 “이 당선자가 자신의 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한 사실과 배우 김부선 씨를 농락한 사실을 부인한 것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한다”며 고발했다.
 
이어 “성남시장 권한으로 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한 직권남용죄, 구단주로 있던 성남FC에 기업 광고비 명목으로 160억 원 이상 지불하게 한 특가법상 뇌물죄(제3자 뇌물죄도 처벌하라”고 고발했다.
 
이에 대해 이 당선자 측은 “흑색선전에 불과하다. 말과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며 “허위사실로 선거를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시킨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선거기간 동안 반응해 왔다. 그는 “선거가 끝나면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이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이 당선인이 ‘강경책’을 꺼내 들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상황은 악화 일로다. 경찰은 ‘혜경궁 김씨’ 의혹과 관련해서도 조만간 수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판사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패러디물 ‘가카새끼 짬뽕’을 올려 논란을 빚었던 이정렬 변호사는 네티즌 1432명의 고발 대리인으로서 지난 11일 경기남부경찰청을 찾아 김 씨와 성명불상자 등 2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고발장에서 “트위터 계정 ‘@08__hkkim’을 사용하는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올렸다”며 “해당 트위터 계정 정보에 나타나는 휴대전화 번호 일부와 이메일 주소로 미뤄볼 때 계정의 주인은 김 씨로 보인다. 수사를 통해 피고발인들의 범죄를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적었다. 경찰은 이날 접수된 고발장을 검토한 뒤 필요할 경우 고발인 조사 등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사무장이나 후보자 직계존비속 및 배우자가 징역형 및 3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을 경우에도 당선이 무효가 되며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이 당선인 측은 “해당 트위터 계정이 후보 또는 후보의 가족과 관련이 없다는 기존의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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