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 녹색당 신지예 공동위원장

오늘공작소 사무실에서 만난 녹색당 신지예 서울특별시당 공동위원장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지난 13일 지방선거의 당락이 드러났다. 선거의 열띤 분위기는 식었지만, 더욱 존재감이 뚜렷해진 이가 있다. 바로 서울시장 8번 후보였던 녹색당 신지예 서울특별시당 공동위원장이다. ‘페미니스트’ 시장 후보였던 그가 1.7%라는 유의미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만 27세·여성·소수정당…열악한 환경에서 얻어 낸 값진 ‘1.7%’
“정치를 통해 내 삶이 변할 수 있다는 상상력 줄 수 있어 기뻐”


지난 13일 지방선거가 마무리됐다. 시장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인 서울에서 눈길을 끄는 후보가 탄생했다. 바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전면에 내건 녹색당 신지예 서울특별시당 공동위원장이다. 그는 청년기업 오늘공작소 대표이기도 하다.

선거 후일담을 듣기 위해 일요서울이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오늘공작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신 위원장은 오히려 선거 이후 더욱 ‘핫(hot)’한 정치인이 됐다. 그에게 가장 먼저 지방선거 이후의 소감을 물었다.

신 위원장은 “한국 정치판에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면서 정책화시키고, 시민들 특히나 페미니스트라고 본인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정치를 통해 내 삶이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하는 상상력을 줄 수 있어 기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아쉽다”면서 “(선거 유세) 시간이 길었다면 자원이 부족했어도 많은 분들을 만나러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현재 법정 선거 유세 기간으로 정해진 13일 남짓의 기간 동안 많은 시민들을 만나고 정책을 알릴 기회가 적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유세차 1대로 모든 곳을 돌아다녀야 했고, 선거 캠프는 총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꾸려졌다. 신 위원장 역시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그는 “부족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러낸 것을 매우 칭찬하고 시민들이 많은 관심과 응원을 줘 감사할 따름”이라며 희망찬 목소리로 답했다.

뒤이어 1.7%라는 지지율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를 수치화한다면 대략 서울에서 8만3000명 정도의 인원이 그에게 표를 행사한 것이다.

그는 “페미니즘 정치라는 게 결과적으로 굉장히 오래 가야 하는 정치”라면서 “(페미니즘 정치를) 몇 십 년은 해야 사회가 변할 텐데 그 첫 발걸음을 잘 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선거 과정에 관해 시종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는 이번 지방선거 중 매우 험난한 항로를 거친 후보 중 한 명이었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전면에 내건 새로운 시도에 우호적인 이들도 있었지만 일각에서 곱지 않은 시선도 분명 존재했다.

신 위원장은 “(선거 기간 동안) 벽보와 현수막 훼손이 매일 아침 제보됐다”면서 “그걸 보면서 정말 ‘백래시(backlash·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말. 주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에 따라 기득권층의 영향력이 약해질 때 그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다)’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 내지는 분노 같은 것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작동된 것으로 본다”고 풀이했다.

이와 더불어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문구만 넣었으면 좋겠다고 한 게 내 의견이기도 했고, (선거 포스터) 색깔과 글꼴도 디자이너가 정해줬는데 나는 멋있고 깔끔하고 한국 정치사에서 볼 수 없었던 포스터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신 위원장의 선거 포스터에서 하얀색으로 쓰인 ‘ㅅ’은 윗부분이 구부러져 있는데, 이것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벌인 ‘하얀 리본 캠페인’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2년 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당시 여성들은 고인을 추모하고 여성 살인, 여성 혐오를 멈추라는 뜻을 표출하기 위해 하얀 리본 캠페인을 진행했다. 선거 포스터 속 독특한 ‘ㅅ' 글씨체가 바로 이 하얀 리본을 상징화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선거 포스터에서 몸을 살짝 옆으로 튼 채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는 신 위원장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에 관해 신 위원장은 “누구는 시건방지다고 생각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진짜 시건방진가’라는 생각이 들어 (선거 포스터를) 몇 번을 (다시) 봤다”고 의구심을 표했다.

‘시건방지다’라는 표현의 뒤에는 만 27살의 어린 여자애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존재한다. 그 역시 “포스터를 통해서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나와서 비웃어’라는 비판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여성(출마 의원)이 여태까지 (선거) 포스터에서 어떻게 표현됐는지를 보면 항상 ‘○○의 딸’ ‘○○의 며느리’ 등 가정주부 또는 여성이어서 깔끔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이미지”였다면서 “(그것에서) 벗어난 여성이 등장한 것에 대한 불쾌함과 낯섦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지쳤을 법도 한데 신 위원장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내 역할이 이번 선거에서 중요했다고 생각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그에 의하면 ‘20대 여성이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수 있다’ ‘지금의 꼰대 정치가 잘못됐다’고 누군가 얘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본적·전통적으로 정치가 걸어왔던 의제가 아닌 성 평등을 전면에 드러내고 ‘정치가 이제 성 평등을 위해 정치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서울에서 녹색당과 신지예가 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 사회에서 젠더(gender·생물학적 성별이 아닌 사회 규범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인 성)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정치권에서도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다. 때문에 그 역시 이 바람에 편승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이에 관해 신 위원장은 “‘페미니즘이 표가 되는 것이냐’고 했을 때 ‘그렇다’고 확실히 답할 수 없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페미니즘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정치인들을 향해 “본인은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하면서 페미니즘적인 정치 행보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화가 많이 난다”면서 “페미니즘이 아니라 ‘여성 정치(인)’까지만 해도 각 정당의 악세사리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선거철이 되면 여성들을 앞세우며 ‘젊은 여성 후보가 공천을 받았으니 우리 정당이 새로워지고 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기에 급급할 뿐 정책을 통해 여성과 소수자들의 삶을 바꾸고, 실제로 여성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렇다면 신 위원장이 생각하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는 무엇일까. 그는 여성·남성·성소수자 등에 관계없이 평등한 시대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고 정의했다.

아울러 “내가 여성으로 살면서 받았던 억압, 성폭력의 현장을 더 이상 미래 세대의 여성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고) 이름 지은 것”이라 설명했다.

사실 기자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진짜 의미를 뒤이은 신 위원장의 말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내가 정치인으로 활동한다 해도 더 이상 ‘여성’ 정치인으로 구분되지 않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는 그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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