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카드 부실에 따른 오너 일가 책임론에 검찰의 비자금 수사로 그룹 차원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LG그룹이 이번에는 LG투자증권 노조가 구본무 회장 등 오너일가를 집중 공격하자 아연실색하고 있다. LG증권 노조는 지난 3일 LG증권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랑해요 LG’라는 가식적인 가면으로 위장하고 있는 LG그룹과 오너들의 추악하고 부도덕한 행태를 LG투자증권의 전직원과 10만 소액주주의 이름으로 만천하에 폭로하겠다”며 구본무 회장 등을 맹렬히 비난했다. 이날 노조는 “오너 일가가 LG카드 경영을 망친 장본인임에도 유상증자시 실권을 LG증권이 모두 인수하도록 해 부실 책임을 LG증권에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실 책임을 우량계열사에 전가시킨 그 동안의 사례들”이라며 계열사간 합병 및 대주주 일가의 LG카드 지분정리 등을 열거했다.‘BUY US(LG투자증권)!! Bye LG. By LG투자증권 노동조합’LG증권 노조가 기자회견장에서 배포한 광고물의 문안이다. LG그룹과의 결별과 동시에 LG증권의 새 경영주를 찾는다는, LG그룹에 대한 반역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이 문안은 LG증권이 그룹과 오너 일가에 대한 공격의 포문에 불과했다.이날 기자회견에는 약 3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 언론의 높은 관심도를 나타냈다. 적지 않은 취재진이 몰린 이유는 노조가 단순히 사측을 상대로 ‘투쟁’을 외치던 종전의 노동운동의 관행에서 벗어나 오너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해 구체적으로 ‘폭로’하겠다며 포문을 연데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에 대한 정면 공격

예상대로 대주주 일가에 대한 노조의 공격수위는 매우 높았다. LG증권 노조는 LG카드 유상증자에서 실권주를 모두 LG증권이 인수하는 ‘총액인수방식’이 LG증권을 수렁에 빠뜨릴 것으로 보고 대주주 일가의 무책임성을 적극 부각시켰다.노조에 따르면 대주주 일가는 LG카드가 상장하기 전 1조5,000억원 순이익의 혜택으로 40%에 달하는 고배당을 받았다. 또 상장 이후에는 주가가 한때 10만원까지 치솟고 올 상반기에는 LG카드 사태가 발발하기 직전 지분의 상당량을 팔아치웠다. 노조 관계자는 “1년전 대비 구씨 일가 지분의 54%를 팔아치웠다는 것만 봐도 이들의 의도적 카드사태 부실 급증 및 면피현상을 잘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노조는 지배구조에 있어 LG증권이 LG카드 부실에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LG가 취하고 있는 지주회사는 금융사를 거느릴 수 없기 때문에 금융사를 제외한 어떤 회사도 LG투자증권이나 LG카드 등의 최대주주가 될 수 없다. 이같은 규정으로 인해 LG는 대주주 일가가 LG증권을 지배하고 LG증권이 LG카드를 지배하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 LG카드 지배구도에 관한 금융감독원의 공시를 보면 LG증권은 962만6,030주(8.01%)를 보유한 1대주주이다. 여기에 LG증권 서경석 사장이 올초 LG카드 등기임원으로 등재된 점까지 더해져 LG카드의 부실 수렁에 함께 빠져들게 되는 요인으로 지적했다.지배구조의 불합리성이 LG증권의 동반 부실 위험성을 내포한 것이라면 총액인수방식은 위험성의 구체적 양상으로 드러난 셈이다.

LG카드가 유동성 위기를 맞아 채권단으로부터 2조원의 긴급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연말 3,000억원 유상증자에 이어 내년초에는 7,000억원의 추가 유상증자를 약속했다. LG와 구본무 회장은 유상증자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LG증권에 총액인수라는 ‘보험성’ 확약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문제는 총액인수방식의 특징상 대주주 일가가 최대한 실권을 내지 않아야 LG증권의 손해가 감소된다는 점이다. 현 상황으로서는 실권이 발생한다 해도 일반인들이 실권주 공모에 참여해 실권주를 모두 소화해주면 되겠지만 일반인들이 LG카드에 투자할 공산은 극히 미약한 실정이다. LG그룹 관계자는 “대주주 일가가 증자에 100% 참여한다”고 장담하고는 있지만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대주주 증자 참여 불투명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LG그룹 차원에서 LG카드 매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점, 계열분리를 명분 삼아 창업고문 일가가 LG카드 유동성위기를 기화로 LG카드 지분을 마구 팔고 있다는 점, 이로 인해 구본무 회장측 일가가 고위험을 무릅쓰고 증자에 참여하겠느냐는 점 등이다.LG증권 노조는 대주주 일가가 종국에는 LG카드를 포기하고 부실 경영의 책임을 LG증권에 떠넘겨 LG증권마저 부실로 전락시키려 한다고 보고 있다.이와 관련, 노조는 과거 LG종금, 부민금고 등 부실경영으로 부도 위기에 몰렸던 계열사들을 LG증권에 합병시키거나 합병을 기도했던 사례들을 열거했다.LG증권이 지난 99년 10월 합병한 LG종금의 경우 부실덩어리였던 LG종금을 살리기 위해 LG증권에 합병시켰다는 논란이 있었다.

당시 LG종금은 자본금을 대부분 잠식한 상태에서 LG증권과 1:8.2372의 비율로 합병을 하자 종금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해 LG증권의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의혹이 일었던 것이다.게다가 LG종금이 100% 출자한 부민상호신용금고마저 LG증권이 출자를 하려다 노조의 반발을 사 합병이 무산되기도 했다. 당시에도 노조위원장을 지내고 있던 김붕락 위원장에 따르면 부민금고의 부실 규모도 정확히 모르는 마당에 전체 200억원 증자에 LG증권이 45% 주주로 참여, 9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으나 노조가 물리적 저지를 통해 출자를 막았다. 노조의 주장대로라면 LG그룹 금융사들의 부실의 역사는 곧 LG증권의 출혈의 역사인 셈이다. 이밖에도 LG는 98년 말 LG금속과 LG산전을 합병하면서 1,000억원 이상의 자본잠식과 연속적자로 부채규모 2조240억원이었던 LG금속의 부실을 LG산전에 떠넘긴 바 있다.

도덕성 갖춘 경영주면 OK!

LG증권 노조는 구본무 회장이 부르짖던 ‘정도경영’ ‘1등 LG’에 대해 신랄히 비판하며 LG증권이 정신적 의미로서 LG그룹 계열사임을 부정했다. 노조는 “더 이상 구씨 일가의 술책에 말려들었다가는 일터를 잃을 것이며, 10만 소액주주들은 재산을 모두 날릴 것”이라며 “이에 노조는 구씨와의 결별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LG증권과 직원들, 고객,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도덕성을 갖춘 경영주를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LG그룹은 “LG카드 유상증자에서 발생한 사항들의 불가피성을 노조가 부정하고 이를 왜곡하고 있다”며 “과거 LG종금이나 LG금속의 경우도 아무 문제없이 지나간 일들을 이제 와서 시비를 거는 것은 무의미한 공격”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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