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구조조정의 최대 화두였던 부실투신사 구조조정이 현대투자증권과 현대투자신탁운용 등 현대 계열 금융사들의 해외 매각으로 본격 궤도에 올라섰다. 정부는 지난 11월25일 서울 여의도 금감위 회의실에서 푸르덴셜과 현대 금융사들의 매각 본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부실투신사 처리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제 금융권의 관심은 단연 한국투자신탁증권, 대한투자신탁증권의 처리방안에 모아지고 있다. 투신업계에서는 현투증권의 매각 방법이 이들 투신사들의 처리 방향의 예고편이 될 것으로 간주해온 만큼 한투나 대투 역시 해외 매각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매각 전 또 다시 막대한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할 것으로 예고하고 나왔다는 점이다.정부 당국에 따르면 한투와 대투에 대해 3조∼4조원의 추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내외에 매각하기로 했다.

현투증권을 푸르덴셜에 매각하기로 한 25일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내용이었다. 정부가 입을 열기 전에 이같은 내용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외국기관 중 1∼2곳이 한투·대투 매입 의사를 타진해왔고 정부가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 이 두 개 투신사에 대해 약 4조원의 추가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며, 빠르면 11월 안에 구조조정자문사(주간사)를 선정한다는 게 언론 보도 내용이었다.한투·대투에 각각 2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로 투입할 경우 지금까지 쏟아 부은 공적자금 7조7,000억원을 포함해 모두 11조7,000만원의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결과를 낳는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가더라도 매각을 통해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만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전액 회수’에 대해서는 어느 한 사람도 선뜻 손을 들지 않는 실정이다.공적자금 투입 목적은 역시 경영정상화다. 정부는 한투 및 대투의 순자산 부족분을 매우는 데 약 1조2,000억원, 잠재 부실 처리용으로 1조원, 영업용 순자본비율을 150%까지 맞추는데 1조∼2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용 예정인 내역만 놓고 보면 4조원이 빠듯하게 들어맞는다.정부의 시나리오대로 공적자금이 ‘반짝’ 경영정상화를 시현시킨다고 해도 한투·대투의 수익구조에 닿게 되면 매각 가치는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두 투신사들의 수익은 한마디로 만신창이 상태다. 한투의 경우 2002년 결산(2002년 4월1일∼2003년 3월31일)연도에 경상손실이 1,883억원에 달한다. 대투는 같은 기간 동안 1,224억원 손실을 냈다. 다행히 올해 상반기(4∼9월) 한투와 대투는 각각 1,020억원, 1,203억원 순이익을 기록하기는 했으나 이러한 실적은 주가상승에 따른 자기매매이익 증가에 따른 것으로,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한투와 대투가 부실을 맞게 된 것은 99년 대우 상태 이후 증권업계의 수익 증권 판매 규모가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올초 SK사태 당시 촉발한 카드채 위기로 인한 대규모 환매사태로 위기에 위기를 거듭해왔다.정부는 연내 공적자금 확보를 위한 국회 동의와 함께 매각 주간사 선정에 착수하고 내년 상반기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다음, 늦어도 내년 연말 이전까지 매각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정부가 생각하는 매각과정은 인수협상 파트너를 확정짓고 공적자금 투입금액 및 매각 금액을 정하는 방식이다. 실제 공적자금은 나중에 투입되는 형태다. 정부의 이러한 계산은 투신시장이 불안정한데다 고객들의 이탈 가능성, 매각협상에서 유리한 고지 확보 등을 고려한 것이기는 하나 이 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매각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여기에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는데 먼저 한투와 한투운용, 대투와 대투운용을 묶어 각각 따로 매각하는 방법과 운용사와 전환증권사를 각각 분리해 매각하는 방법, 한투와 대투를 합병해서 매각하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투신업계에 따르면 두 전환증권사와 투신사의 합병은 별다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땅히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운용사와 증권사를 분리 매각하는 것은 증권업계의 시스템상 전환증권사가 운용사의 판매창구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매수자측에서 달갑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한투와 한투운용, 대투와 대투운용을 각각 매각하거나 양측 중 한군데와 대우증권을 묶어서 매각하는 방법이 가장 유력시된다.

정부는 이들 부실 투신사가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에서 기관투자가 및 단기차입자로서 금융 시장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갖고 있다.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진표 부총리는 앞다퉈 투신사 문제에 대해 연내 해결을 공언해왔다.정부가 투신사 연내 처리를 서두른다는 것은 현투증권 매각이 올해를 넘길 거라는 업계의 전망을 보기 좋게 뒤집은 데서 잘 드러난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한투와 대투에 투입될 공적자금의 정확한 규모와 투입된 공적자금을 어느 정도 회수할 것인지로 압축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금융권 구조조정 해결 능력에 대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라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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