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뒤숭숭하다. 내년에만 임기가 만료되는 금융기관 수장이 약 20여명에 달하면서 설익은 하마평이 나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누가 어느 자리를 가기 위해 뛰고 있다’는 식의 뿌리 없는 말들이 금융권에 공공연히 나돈다. 인사와 관련, 금융권의 최대 관심사는 국민은행장과 우리은행장이 내년 임기 전까지 온전히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여부다. 올해 초부터 두 행장의 `중도하차설`이 꾸준히 나돌았다. 또 정부의 입김이 거센 예금보험공사와 기업은행 등 정부 산하기관과 정부가 대주주인 금융기관장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의 경우 내년 상반기중(국민은행은 내년 10월)으로 우리, 한미, 기업, 전북, 경남, 광주 등 시중·지방은행장의 임기가 만료된다. 최근 미국계 자본인 론스타에 경영권이 넘어간 외환은행까지 포함하면 약 8개 은행장의 자리가 바뀌게 된다. 이는 여느 때와 달리 최대 인사 폭이어서 은행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당장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차기 외환은행장에 누가 등극할 것이냐가 관심거리.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을 대폭 물갈이한 외환은행은 이강원 전 행장을 경영고문에 앉혀 2선으로 후퇴시키고, 후임 은행장을 찾고 있다. 현재 외환은행은 이달용 외환은행 부행장이 은행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다.

론스타는 국내외 인사 중에서 젊고 참신한 인재를 은행장으로 영입한다는 복안 아래 헤드헌터사에 은행장 후보를 물색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에 따르면, 론스타가 외국계 은행인 H사 임원을 이미 접촉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국내 D사 출신의 외국인 B씨를 이미 내정했다는 소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또 일부 언론에선 금감원 부원장 출신인 A씨가 한때 외환은행장으로 거론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내국인이 행장으로 부임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은행권 한켠의 관측이다.금융권 관계자는 “론스타가 투기펀드 성격이 강한 만큼 강력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국내 금융시장 사정에 밝은 사람을 은행장으로 영입할 가능성도 있다”며 “하지만 신임행장의 첫 번째 임무가 인력 조정 등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하는 부담이 큰 만큼 영입을 부담스러워할 가능성도 높아 이달용 은행장 직대체제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고 전했다.

외환은행장에 이어 관심을 끄는 것은 국내 최대은행인 국민은행장 자리. 현재 은행장을 맡고 있는 김정태 행장의 임기는 내년 10월로 예정돼 있다. 은행권에선 김정태 행장의 연임 여부를 두고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행장의 거취와 관련된 소문은 올해 내내 나돌았다. 최대 피크는 지난 6월. 감사원에서 김 행장의 스톡옵션 행사와 관련한 인사조치를 금융감독원에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스톡옵션 행사와 관련, 감사원은 지난 6월 김 행장이 은행장으로서 문제가 있다며 금감원에 인사 조치토록 요구했었던 것. 이 문제는 이후 국회 국정감사로까지 비화됐다. 비슷한 시기에 내부자의 소행으로 보이는 투서가 인터넷 등에 떠돌아 김 행장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당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은행권에선 김 행장 흔들기 이면에 행내 반(反)김정태 세력이 조장한 측면도 적지 않다는 비판도 새나왔다.

김 행장과 관련된 것은 소문일 뿐 진퇴에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이는 대통령이 직접 은행장과의 회동에서 은행권 인사에 정부가 개입을 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은 데다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국민은행 지분을 연내 처분할 방침이라서 정부의 눈치를 볼일이 없다는 분석 때문이다. 경영진의 대폭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의 인사도 지대한 관심거리. 내년 3월 윤병철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전광우 부회장, 이덕훈 우리은행장 등 경영진의 임기가 만료된다. 특히 각종 구설수에 휘말렸던 이덕훈 행장의 연임문제도 주목된다. 금융권에선 우리은행의 흑자폭이 상반기에만 8천억원을 넘었고, 올 한해 흑자 폭이 1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돼 이덕훈 행장의 유임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최근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 등이 부실자산 회계 기준을 놓고 갈등을 빚은 것도 알고 보면 내년 차기행장을 둘러싼 ‘기싸움’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 10월 초 우리금융은 부실자산 회계를 잘못 적용한 부행장의 징계를 우리은행측에 요청해 갈등을 빚고 있다는 해석을 낳았다. 따라서 집안싸움으로 이덕훈 행장이 의외로 낙마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종창 기업은행장도 내년 5월로 임기가 만료되나 자리 이동이 점쳐지고 있다. 김행장은 특수은행인 기업은행을 착실하게 경영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행장의 경우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김행장은 재경부를 거쳐 금감원 부원장까지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엄종대 광주은행장과 강신철 경남은행장, 홍성주 전북은행장 등은 내년 3월에 행장임기가 끝난다. 내년 3월부터 임기가 만료되는 금융유관기관장들의 대폭적인 물갈이도 예상된다. 오호수 증권업협회장과 양만기 투신협회장 등의 임기가 만료될 예정이고, 증권예탁원 금융결제원 등 정부 산하 기관장들도 임기가 끝난다.

특히 증권 등 유관 단체장들은 올해 증시 통합법이 제정됨에 따라 관련 단체가 일원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있어 자리이동이 가장 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편, 총선출마설이 나돌았던 김광림 재경부 차관은 최근 재경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거취와 관련, 김진표 부총리의 총선출마 가능성이 높다며 자리를 지킬 것임을 시사했다는 후문이다. 이외에도 몇몇 금융권 인사들이 내년 총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어 빈자리를 꿰차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게 눈에 띄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내년 금융기관장의 자리 이동이 있을 예정이어서 몇몇 인사들의 인사 청탁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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