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 공정위와 ‘대립각’공정위“의결권 행사 완화했더니 재벌들이 악용” 국감에 실태 보고재계“외국인 지분율 감안 않고 의결권 제한 여론 몰이 나서나” 불평공정위는 최근 금융보험사 의결권 행사 실태를 점검한 결과 보고서를 이번 국회 국감 자료로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공정위가 지난 8월 4일부터 같은달 13일까지 약 열흘간 조사한 것으로 재벌기업의 금융사의 의결권 행사 실태를 점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자료는 대외 유출 금지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으로 공개해서는 안되는 문건으로 공정위가 분류한 것이다. 다만 이 자료는 재경부내 재벌개혁 T/F팀 회의 안건인 것이다. 그런데 이 자료를 공정위가 국정감사자료집에 버젓이 올림에 따라 재계는 공정위의 진의 파악에 분주하다.

현재 정부와 재계가 이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재계의 우려는 보고서가 재계에 불리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지만 재계와 재경부 등 정부가 합의에 이를 때까지 내용 공개를 자제키로 하는 등 신사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정위가 자료를 공개한 것은 재계에 대한 우회적 압박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의결권 행사 문제는 재계의 초미의 관심사. 당초 의결권 행사 제한은 공정위가 전면 금지했던 것으로 지난해 4월 외국계 자본에 의해 경영권 위협을 당할 우려가 있다는 재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임원의 임면권 등 일부 경영사항에 대해서는 최대 30%까지 의결권 행사가 가능토록 제도를 완화했으나 최근 공정위 조사에서 외려 재벌그룹이 이 조항을 악용, 금융사의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확대하는 현상이 나타나자 공정위 등 정부에선 이를 다시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이 문제는 재경부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재벌개혁 T/F팀에서 재계와 의견 조율을 하는 중이며, 여섯 번에 거쳐 토론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 따르면, 재경부 등 정부와 입장 조율이 덜 끝난 상태이며,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지난 8일 오후 주요 일간지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자료에서 공정위가 지난 8월 벌인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행사 실태 점검 결과 보고서를 제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공정위가 자료를 공개한 진의가 어디에 있느냐며 재계의 의심스러운 시선이 모아졌다. 물론 관련 자료가 기사화됐으며, 재계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 정부와 힘겨운 협상을 벌여야 하는 재계로서는 그 자료가 공개된 것 자체가 고역이기 때문이다.보고서(관련 박스기사 참조)에 따르면, 공정위 조사결과, 재벌기업들이 정부의 제도 완화를 틈타 재계가 금융사를 통해 비금융사 지배를 확대하고 있는데다 특정 그룹의 경우 수시로 의결권을 행사해온 것으로 나타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기사도 비판적인 시각에서 게재됐으며, 재계는 논의 중인 문제를 공정위가 결정되기도 전에 공개함으로써 재계를 압박하는 게 아니냐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공정위에 자료 제출을 요구한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실에선 공정위가 실수를 했거나 고의로 유출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자료를 얻기 위해 공정위쪽에 무려 한달 여간을 매달린 끝에 얻어냈다는 것이다. 집요한 국회의원의 요구에 공정위가 어쩔 수 없이 자료를 제출한 것이며, 이왕에 제출된 자료를 공개 자료집에 수록해 떳떳하게 공개함으로써 공론화시키는 것이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향후 재벌그룹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음에도 비중있게 취급되지 않아 재계와 정부의 힘겨루기를 슬쩍 비켜선 느낌을 남겼다는 게 의원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재계가 공정위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것은 과잉반응이라는 것이다. 사안이 사인이다 보니 재계는 민감한 반응이다.

한 재벌그룹 관계자는 이와 관련, “국내 우량 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이미 넘어선 상황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의결권을 제한하는 조치는 납득하기 어렵거니와 소버린 등 외국계 자본때문에 벌어진 SK사태가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에도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 등 재계를 대표하는 기관에서도 민감한 현안을 협의하는 상황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되었는지를 언급은하지 않았다. 언급해도 재경부가 직접 맡게 된 상황이라 입장 표출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그 자료가 유출됨에 따라 재계는 난감한 입장에 빠졌다는 것만 전했을 따름이다.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재계의 입장은 현행제도 고수로 입장을 굳힌 듯하다. 전경련 등 재계는 시행한지 2년도 못돼 폐지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 일관성이 없는 것이며, SK사태에서 나타난 외국계 투기 자본이 언제든지 적대적 M&A를 할 수도 있어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공정위 등 정부에선 고객의 신탁자산으로 운용되는 금융사의 자산으로 계열사 지분을 보유,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금융사의 기능을 사금고로 전락시킬 우려가 큰 데다 이런 폐해는 지난 외환위기 이후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며, 이런 부작용이 정상적인 경제 시스템에 큰 장애 요인이라는 비판적 시각이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재벌의 금융사 지배는 고객의 자산으로 경영권을 고수하는 것으로 고객의 이익과 무관한 것으로 반드시 시정돼야 하는 것이 정부의 의지”라고 전했다. 양측의 시각은 나름대로 일리는 있어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논의 중인 핵심자료가 외부로 유출됐다는 점이다. 재계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정부가 앞장서서 재계를 압박하기 위해 여론 몰이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한창 논의 중인 문제를 공정위 쪽에서 자료를 흘린 부분에 대해서 재계 일각에선 공정위의 저의가 무엇이냐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재벌 그룹 관계자는 이와관련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긴 했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별 내용도 없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롯데 한화 등 일부 재벌그룹들이 새로운 금융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지분이 늘어난 것이지 실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보도는 비판적으로 나와 약간 왜곡된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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