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월드컵 축구 열기가 한창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스웨덴전 0:1 패, 멕시코전 1:2 패, 독일전? 누구나가 예선 돌파는 어렵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마지막 경기인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챙길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다. 3전 전패의 수모만은 막아야한다는 데 동의는 했지만,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유감스럽게도 축구장이 기울어져 있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상대는 FIFA 랭킹 1위인 독일, 선수들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 이번 대회 새롭게 도입된 VAR시스템은 결코 우리 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으며, 흥행을 위해서라도 독일을 결선 토너먼트에 올리는 것이 FIFA의 생각일 것이라며, ‘기울어진 운동장론’으로 우리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가 여기저기서 감지됐다.
 
드디어 킥 오프. 맥주집에서 지인과 함께 축구경기를 지켜봤는데 집중하지는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우리의 화제는 축구와는 다른 얘기였다. 그럼에도 축구경기가 신경이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노골적으로 어차피 한국은 결선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한다며, 독일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그렇게 날짜가 바뀌었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결국 옆 테이블에서 사달이 나고 말았다. 한국 사람이 독일팀을 응원한다며 주먹다짐 일보 직전까지 갔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다. 극도로 흥분되어 있는 두 사람. 그 싸움을 말릴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싸움을 말린 사람은 멀리 러시아 카잔에서 축구경기를 하고 있던 김영권 선수다. VAR시스템도 우리의 편이었다. 맥주집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었고, 방금 전까지 으르렁거리던 두 사람은 서로 먼저 죄송하다고 한다. 축구경기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2012년 대선에서 패한 민주당은 대선평가위원회를 발족시켜 18대 대선의 패배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성찰』이라는 제목의 대선평가보고서를 간행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민주당의 공식문서로 채택되지는 못했다. 이해관계와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공식문서로 채택되는 것을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 보고서에도 ‘기울어진 운동장’ 타령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애당초 이기기 힘든 선거에서 민주당이 최선을 다했으나 졌다”는 말은 전형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대변하는 말이다. 대선에 지기 위해 나섰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핑계다.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층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폐족이라고 불리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현직 대통령을 필두로 우리나라 정치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한국정치의 가장 특징은 바로 이러한 역동성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라고 하는 선인의 말씀을 우리 정치인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무작정 오르라는 것이 아니다.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라는 얘기다. 고민하고 방안을 찾아 오른다면 절대 오르지 못할 일이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론’에 현혹되어서 오르기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정치인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독일이 우리에게 졌다. 지난 대회 우승팀이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은 비난의 대상에서 일약 영웅이 되었다. 필자도 그들을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의 명대사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말이다”처럼 우리의 영웅들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한 야당들이 현재의 두려움을 극복할 유일한 방법은 용기를 가지는 일이다. 그리고 민주당도 독일이 ‘한 방에 훅’갔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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