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100% 공개는 좀…” 20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원장을 지냈던 A 의원실 관계자의 말이다. 국회 사무처는 7월 초 의원들에게 지급되는 특수활동비(특활비) 내역을 공개하기로 했다.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지 두 달여 만이다. 특활비는 영수증 등 사용 명세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돈이어서 이른바 ‘묻지마 쌈짓돈’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역시 생활비로 일부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즉 특활비 내역 공개의 목적은 ‘투명성’이다. 얼마를 받았는지가 아닌 어디에 어떻게 썼냐가 핵심인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는 ‘구체적 사용 내역’은 빼고 각 상임위 등에 지급된 현금 내역만 공개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사수’에 안간힘을 쓰는 ‘국회의원 특수활동비’, 그 민낯을 들여다봤다.
 

- ‘특활비 내역’에 ‘사용 내역’은 없다? ‘앙꼬 없는 찐빵’ 비난 ‘봇물’
- 노회찬 ‘특활비 반납’에 상임위원장 출신 B 의원실 “상임위별 금액 달라... ‘소액’이니 가능했을 뿐”
 

특수활동비 유용 논란의 발단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SNS 글이었다. 홍 전 대표(당시 경남도지사)는 지난 2015년 5월 11일 “2008년 여당 원내대표를 할 때 여당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하기 때문에 매달 국회 대책비로 4000만~5000만 원씩 나온다”며 “그 돈은 전부 현금화해서 국회 대책비로 쓰는데 그중 남은 돈을 집사람에게 생활비로 주곤 해서 그 돈을 모아 집사람 비자금으로 만들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구체적 사용 내역' 빼고
‘최소한의 공개’에 그칠 듯

 
그러자 ‘쌈짓돈’처럼 쓰인 국회 특활비를 살펴봐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졌다. 홍 전 대표가 글을 올린 3일 뒤 참여연대는 국회사무처에 2011~2013년 국회 특활비 지출 지급결의서, 금액, 수령인 등 사용내역을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그러나 국회사무처는 내역이 공개될 경우 의정활동이 위축돼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공개를 거부했고 참여연대는 곧바로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3년여간의 소송 끝에 지난 5월 3일, 대법원 3부는 참여연대가 국회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단한 원심 판결을 심리불속행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이란 2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곧바로 기각 처분하는 것을 뜻한다. 대법원 역시 특활비 공개가 국익에 더욱 가깝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국회사무처는 7월 초 의원들에게 지급되는 특활비 사용 명세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사무처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되는 자료는 참여연대가 요청한 2011~2013년 특활비 가운데 의정 및 위원회 운영 지원, 의원외교, 예비금 등의 내용이 될 전망이다. 국회 관계자는 “관련 자료가 워낙 방대해 참여연대와 공개 범위를 조율하고 있다”며 “늦어도 7월 둘째 주엔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투명하고 전면적인 특활비 공개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여야가 합심해 ‘최소한의 공개’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 기자가 20대 전반기 상임위 소속 의원실을 방문 ‘특활비의 투명한 공개’에 대한 입장을 묻자 마치 짠 듯이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 “100% 공개는 무리가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회 사무처 역시 이와 결을 같이하는 모양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자료를 정리 중이다. 공개하는 문서는 ‘지출결의서’로 정확히는 1295건이다. 페이지로는 수천 페이지”라며 “지출결의서를 보면 몇 월에 교섭단체 지원비 얼마, 상임위에 얼마, 매달 쭉 금액이 엇비슷하게 나가는 똑같은 형태가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해당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수천 페이지 분량의 공개 내역서에 정작 가장 중요한 ‘사용 내역’은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지출결의서라서 국회 사무처에서 현금으로 건넸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지 어떻게 받아 썼는지는 영수증을 남기지 않아서 모른다”면서도 “대체로 보면, 상임위원장들이 쓰는 것은 뻔하다. 일부 간사, 위원회 직원들에게 주고, 회식, 경조사비로도 사용한다”고 말했다.
 
초·재선조차 ‘특활비 폐지’ 반대,
“당 눈치 볼 수밖에...”
 

한편 특활비의 투명한 공개뿐만 아니라 여론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특활비 폐지’도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자신이 받은 석 달치 특활비 3천여만 원을 반납하면서 ‘특활비 폐지 법안’을 내려했지만 발의에 필요한 10명도 채우지 못했던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법안에 서명한 의원은 정의당 의원 전원에 바른미래당 한 명을 더해 고작 7명이었다.
 
이와 관련해 오히려 B 의원실 관계자는 “노회찬 의원이 특활비를 다 반납했다고 하는데 그야 금액이 다르니까...”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특활비는 국회의장과 부의장, 교섭단체, 상임위에 지급되고 그 액수는 천차만별이다. 즉 해당 관계자의 발언은 특활비 수수 금액이 ‘소액’이면 반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금액이 큰 우리는 쉽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B 의원은 전반기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그런데 관계자의 말 대로라 해도 법안 발의에 서명한 의원이 ‘7명’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상임위에 소속돼있지 않아 특활비를 받지 않는 초·재선 의원들조차 법안 발의에 서명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노회찬 의원은 당시 “(속으로는) 동의하는 의원들이 많으리라고 생각된다. 다만 당이나 당론에 묶여 있거나 당의 눈치를 좀 보는 상황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당 소속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특활비를 받아본 적이 없다. 특활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면서도 “다만 100%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특활비 폐지에 대해서도 찬반을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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