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신공항, ‘TK 죽이기’ 위한 與의 공수표?

더불어민주당 부산·울산·경남의 화합과 번영을 위한 상생협약식이 26일 울산시 남구 도시공사 시민소통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김경수 경남도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인. <뉴시스>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간 뇌관이 결국 터졌다.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다시 불거진 것. 후보자 신분 시절 ‘가덕도 신공항’을 공약으로 내세운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의 ‘초반 밀어붙이기’가 도화선이 됐다. 이를 둘러싼 TK-PK 간 팽팽한 신경전은 이번만 3번째라 파장은 더욱 크다. ‘가덕도 신공항’ 논란은 노무현 정부 때 시작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갈등→봉합’을 반복, 10년간 줄다리기를 이어왔다. PK는 이번에야말로 마침표를 찍겠다는 심산이다. TK도 “이미 매듭지은 문제를 또 꺼내든다”며 최후의 결전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이번 싸움은 ‘민주당vs한국당’ 싸움으로 비화할 공산이 크다. 민주당이 6.13지방선거 결과로 PK를 장악했고, 한국당은 TK에 국한됐기 때문. 일각에서는 ‘가덕도 신공항’을 내세워 지역 갈등을 조장하고, TK를 고립시키려는 여당의 속내가 비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광폭 행보에 ‘울산·경남’ 발 맞춤… 여당도 측면 지원 ‘의혹’
“이미 봉합된 문제 꺼내는 속내 무엇?” TK 정치권 반발 확산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이 민선 7기 본격 출범(7월 1일) 전부터 ‘가덕도 신공항’을 둘러싼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오 당선인은 지난 25일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결론인) 김해신공항은 잘못된 정치적 판단”이라며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공약은 선거용이 아니며 가덕도 신공항을 재추진하겠다는 뜻에 추호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발표 직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오 당선인은 지난 28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70년 만에 오는 평화의 시대를 맞아 전국적 차원에서,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도 관점의 하나”라며 재차 공약 이행 의지에 못을 박았다.
 
오 당선인은 지난해 48억 원(기본계획 수립)과 올해 64억 원(기본설계)이 투입된 김해신공항 계획을 축소하고, 대신 내년 상반기까지 가덕도 신공항 검토를 마치겠다는 설계다. 4대강 사업과 마찬가지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하고 내년 하반기 기본계획 수립에 돌입, 설계에 들어가면 2028년 완공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오거돈의 ‘과욕’ 화약고 건드렸나
 

오 당선인의 ‘초반 밀어붙이기’는 결국 독이 된 것일까. 오 당선인의 지나친 의욕이 결국 해묵은 지역 갈등에 부채질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 문제는 TK와 PK 사이 ‘정치적 화약고’로 분류된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처음 거론돼 2011년 이명박 정부 때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한 차례 무산됐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신공항 건설을 재차 내세워 지역별 이해관계가 극에 달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결국 영남권 5개 광역단체장 합의를 통해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제3의 대안을 선택, 가까스로 갈등을 봉합했다.
 
그런데 오 당선인이 부산시청에 입성하자마자 이 같은 ‘시한폭탄’을 건드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 당선자 측 전세표 대변인은 “김해공항 확장만으로는 남부권 관문 공항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고 소음 문제 때문에 김해시민이 김해공항 확장(활주로 1개 신설)에 반대하고 있어 가덕도 신공항을 재추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부울경’을 장악한 여당 광역단체장들도 측면 지원에 가세하며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6.13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여당 소속 PK 광역단체장들이 지난 26일 ‘신공항 건설을 위한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것.
 
오거돈(부산)·김경수(경남)·송철호(울산) 광역단체장 당선인들은 지난 26일 울산도시공사에서 공동 정책간담회를 갖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동남권 관문공항에 걸맞은 신공항 건설을 위해 부-울-경 공동의 TF를 구성한다” 등 6개항에 합의했다.
 
이들은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미세한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다만 오 당선인이 이미 ‘가덕도 신공항 추진’ 의사를 밝혔고, 이들이 오 당선인에 동조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가덕도’가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김해공항 확장 불필요론’을 공론화한 후,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밀어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측면 지원’ 정부는 ‘시큰둥’
 
비단 PK 광역단체장과 지역구 의원들만의 독자 행보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크다. 이들의 TF 구성 발표 자리에 여당 원내대표단이 동석한 것이 ‘힘을 실어준 것과 다름없다’는 해석이다. 노무현 정부도 같은 공약을 내건 바 있다는 점에서 ‘부울경 트리오’가 행동대장으로 나섰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기에 최근 여당 일부 지도부가 가덕도 신공항 추진 관련 “당 차원에서 검토하겠다”는 등 모호한 입장을 취한 대목이 이 같은 주장을 방증한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민주당 차원의 ‘가덕도 신공항 추진안’ 재검토 추진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울산에서 열린 부산·울산·경남 지역 시도지사 당선인 간담회 자리에서 가덕도 신공항 추진 관련 “오늘 간담회에서 논의하지 않았다”면서도 “당 차원에서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중앙당은 공식 협의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인이 울산·부산 당선인들과 TF 구성해서 논의를 지역차원에서 하겠다고 했다”며 “TF를 구성해서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안에 대해 재점검해 보겠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와는 불협화음을 내는 모양새다. 정부는 오 당선인의 이 같은 움직임이 논란이 되자 즉각 “재검토 사항이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미 지난 정부 때 5개 광역단체장의 합의에 따라 이행 결정된 사항인 만큼 정부가 이에 손을 댈 경우 후폭풍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홍 원내대표 발언 다음 날인 27일 “가덕도 공항 재추진을 거론하는 정치권 일각의 움직임이 있으나 정부는 김해신공항 추진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민주당 소속 PK 광역단체장들의 요구가 본격화될 경우 정부 입장이 변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방선거 보복 카드” 당력 총집중 반격 시사
 
PK 정치권의 움직임이 구체화되자 TK 정치권도 반격 태세를 갖췄다. TK 정치권에서는 여권이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지방선거 결과 보복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오 당선인의 발언 직후 “가덕도 신공항은 대국민 사기극이다. 가덕도에는 신공항을 짓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정부가 다시 추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대구 달서병)도 지난 27일 논평을 통해 “여권에서 가덕도 신공항을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은 영남권에서 TK와 PK를 분리해 PK를 새로운 민주당 텃밭으로 삼으려는 정치꾼들의 터무니없는 선동이자 대구경북에 대한 배신이자 도발 행위”라며 “정부가 결정하고 청와대가 추인한 김해신공항 건설 추진 사업이 흔들리거나 가덕도 공항 망령이 되살아난다면, 오만한 여당의 지역갈등 조장 행위로 간주하고 모든 당력을 집중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막아 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에서 “문재인 정권의 신하들이 정말 무례한 행동을 했다”며 “민주당 원내대표와 지도부까지 참여한 가운데 당선자 신분인 광역단체장들이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하겠다며 노골적으로 영남권 지역갈등을 유발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대행은 “마지막 남은 보수 정당의 기반마저 고립시켜서 대한민국을 통째로 문재인 정권 손아귀에 쥐는 게 그렇게 시급하고 절실한 현실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영남권에 지역갈등을 유발하는 저의가 어디에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與 ‘동진정책’ 기반 구축? 한국당 내분까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 당선인이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은 사실상 ‘공수표’ 아니냐는 지적이 크다. 부울경 광역단체장을 중심으로 PK를 확실한 민주당 영토로 다지고, ‘한국당 텃밭’인 TK를 고립시키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여당이 추진한 ‘동진정책’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써 ‘가덕도 신공항’을 꺼내 들었을 공산이 크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부울경 광역단체장들이 이 논의를 계속하면 TK에 대한 ‘정치 보복’ 차원의 움직임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가덕도 신공항’이 지역별 이해관계에 가로막혀 이대로 무산되더라도 이들은 ‘공약 이행을 시도했다’는 핑계거리가 생긴다. 그러면서 민심의 비판 화살을 TK로 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가덕도 신공항’을 둘러싼 TK와 PK 정치권 입장은 분명하게 갈라선 모양새다. 울산·경남 지역에서는 ‘중립’ 의견도 크지만 대체로 찬성한다는 게 지역 정가의 분위기다. 지역구에 따라 한국당 내분도 일어나고 있어 신경전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부산이 지역구인 한국당 소속 한 의원은 “정치적 의도에서 벗어나 공항 수요의 적정성·경쟁력 등을 고려하면 ‘가덕도 신공항’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현재 김해 신공항의 소음 문제, 짧은 활주로 등 단점만 보더라도 ‘신공항 건설’ 이유는 명백하다”고 찬성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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