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 역군에서 천덕꾸러기로…탈원전 후유증

<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가 결정됐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총리 주재 회의에서 탈(脫)원전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수천억 원 규모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비용을 국민이 낸 전기료로 조성된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충당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산업용 심야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한다고 했다. 이는 탈원전 1년간 원전 가동률 하락에 따른 매몰 비용 등 막대한 탈원전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정부는 지금껏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국민과 기업에 그 몫을 전가하는 모양새다.


-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도 추진…기업 경쟁력 상실될 수도
- 찬반 나뉜 지역주민…노조 “손실은 이사회가 책임져야”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지난달 15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와 신규 건설할 예정이던 원전 4기의 건설 중단을 의결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이날 “정부 정책에 따라 월성 1호기의 계속 운전을 검토한 결과 경제성이 떨어져 조기 중단하기로 했다”며 “월성 1호기가 국내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6%이기 때문에 전력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수원은 곧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월성 1호기 영구정지 운영 변경 허가를 낼 예정이다. 정 사장은 “최종적인 폐쇄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2년 정도 걸린다”라고 했다.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는 월성 1호기가 조기 폐쇄된 이유는 외부 회계법인에서 수행한 경제성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발전단가가 높아 경제성이 떨어지고 이용률도 낮아 손실이 쌓이는 적자 구조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입수한 ‘2018년 제7차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월성 1호기의 발전단가는 지난해 122.82원/kWh로 전체 원전 평균 판매단가(60.68원/kWh)의 2배였다. 이는 석탄(79.27원/kWh)은 물론 친환경에너지인 액화천연가스(LNG·113.44원/kWh)보다 비싼 가격이다.

한수원이 회계법인을 통해 실시한 경제성 평가에서도 당초 운영기간 만료일인 2022년 11월까지 계속 운전하는 것보다 즉시 발전을 정지하는 게 이득으로 판명됐다.
 

최초 가압중수로형 원전
2012년 가동 중단되기도

 

우리나라 최초 가압중수로형 원전인 월성 1호기는 지난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가압 중수로형 원자로는 지난 1997년 캐나다에서 개발한 것으로 물 중에서 중수소와 삼중수소로만 이뤄진 무거운 물인 ‘중수’를 추출해 감속재와 냉각재로 이용한다.

방사성 물질인 ‘삼중 수소’가 발전 과정에서 많이 나올뿐더러 사용 후 핵연료도 국내 다른 원전에 비해 많이 나와 임시저장시설의 포화를 앞당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월성 1호기는 30년간의 설계수명이 만료된 지난 2012년 11월 20일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이후 한수원은 10년간 추가로 운전할 수 있도록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했으며 지난 2015년 6월 23일 재가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016 포항과 경주에서 잇따라 강진이 발생하면서 노후 원전에 대한 안전성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됐다.

이에 일각에선 여전히 가동되고 있는 월성 1호기를 빨리 정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시민과 주민 등 2166명이 참여한 국민소송원고단은 무효 소송을 제기했으며 1심에서 수명연장 허가 취소 판결을 받아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한 월성 1호기 폐쇄는 결국 이번 한수원의 발표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주민 반발 이어지는
탈원전 정책

 

탈원전 정책에는 천문학적 돈이 쓰인다. 한수원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원전 4기 건설을 백지화하면서 초래된 비용만 1조 원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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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2022년까지 가동할 예정이었던 월성 1호기는 한수원이 가동 연장을 위해 설비 등을 보충하고 지역에 내놓은 지원금으로 총 7000억 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한수원 측은 월성 1호기의 감가상각 등을 고려할 경우 현재의 잔존 가치는 1836억 원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추가로 원전 건설이 중단된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에 대한 땅 매입비 904억 원, 33억 원씩 더하면 손실액은 최소 2700억대에서 8000억 원 정도인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사 중단과 관련한 비용을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고쳐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탈원전 비용에 쓰는 방안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기금이 국민이 낸 전기료로 조성됐다는 것이다.

원래 전기사업법 시행령에 명시된 기금의 용처는 매달 전기료 중 3.7%씩 떼어 낸 돈으로 전기 안전, 전기의 보편적 공급을 위한 사업, 해외 진출 지원, 전력 산업 연구·개발(R&D) 등을 위한 용도로 규정돼 있다.

이에 대해 산업부 에너지자원실 관계자는 “시행령을 고쳐 기금을 탈원전에 사용한다 해도 모법(母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정부는 산업용 경(輕)부하 요금(심야요금)을 올리는 구체적인 방안도 밝혔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은 시간대, 계절별로 다르다. 6~8월의 경우 오전 10시~정오와 오후 1시~오후 5시 피크 시간에는 kWh당 요금이 114.2~196.6원에 달한다.

반면 심야요금 시간대인 오후 11시~오전 9시에는 52.8~61.6원으로 요율이 피크 시간의 절반 이하다.

산업용 전기료 인상은 기업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 현재 많은 기업이 전기 사용량의 절반을 요금이 싼 심야 시간에 쓰고 있다. 국회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실에 따르면 경부하 요금 할인이 10% 축소되면 전기요금이 3.2% 오르는 효과로 이어진다.

즉 경부하 요금을 쓰던 8만 개 기업의 전기요금이 4962억 원 확대된다는 것.

여기에 전기요금 할인 폭이 50%까지 확대된다면 기업부담액은 2조5000억 원까지 증가할 수 있다.

이에 제조원가 중 전기요금의 비중이 높은 석유화학업계, 철강 등 국내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한편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결정은 경주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측은 “월성1호기는 노후설비 교체 및 안전성 강화를 위해 5600억 원을 투입해 2022년까지 10년 계속 운전 승인을 받은 안전하고 깨끗한 발전소다”라며 “계속 운전을 위해 투입한 비용 5600억 원과 이미 집행한 지역상생협력금 825억 원에 대한 손실은 이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한전 주식을 소유한 주민, 원전종사자, 일반 국민 대규모 소송인단을 구성해 이사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라며 반발했다.

반면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은 “안전사회를 향한 희생과 땀의 정당한 결과인 월성1호기 폐쇄를 경주 시민사회를 대신해 대환영한다”며 “월성1호기는 수명연장, 고준위 핵폐기물과 삼중수소 대량 발생, 지진까지 더해지면서 핵발전소 위험을 상징하는 구조물이 됐다. 더는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둘러싼 주민 갈등과 대립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찬성 의견을 내비쳐 월성 1호기 조기 폐기를 둔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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