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심각한 상황 … “IMF위기 때보다 생활형편 더 어렵다”강남지역 아파트 값 폭등·부유층 사치 행각에 상대적 박탈감 심화“서민층 붕괴 막을 강력한 대책 속히 마련돼야”경제가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1/4분기 중 경제성장률이 3.7%로 급락하더니, 2/4분기에는 1.9%로 더욱 하락했다. 이와 같은 낮은 경제성장률은 70년대 오일쇼크와 정권교체기였던 지난 80년, IMF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 있는 일이다.이는 이라크 전쟁, SARS, 북한 핵문제 등 대외적인 악재가 겹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내부에 있다. 전경련 및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들은 최근 경기 침체가 대립적 노사관계, 과도한 규제, 높은 물류비용 등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가계부채의 증가와 신용불량자의 급증 등‘서민경제’가 흔들리면서, 국가 경제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민경제의 몰락은 소비의 위축 및 장기간 경기침체를 예고하고 있다.실제로 지난 6일 통계청의 ‘도시근로자 가구 가계수치동향’에 따르면 올 2/4분기 소득기준 하위 20%의 서민층 가구의 월평균 가계수지(처분가능 소득-소비지출)는 매월 13만700원 적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월평균 적자액(8만2,600원)에 비해 올 들어 적자규모가 58%나 증가,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이와 함께 대한상의가 서울지역 1,000가구를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결과에서도 ‘지난해와 비교해 올들어 가계부채가 증가했다 ’는 답변이 25.2%였다.이번 조사에서는 가채부채가 증가한 가구의 75.4%가 소비를 줄인 것으로 답해, 가계부채가 소비 위축의 주요 원인임을 알 수 있다.

소비축소의 이유에 대해서는 전체의 44.1%가 각종 소득 감소, 34.8%가 경기불안 우려를 들었다. 이와 함께 생활형편이 IMF 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응답이 전체의 45.5%, 비슷하다가 27.9%, IMF 때보다는 낫지만 어려운 형편이라는 응답이 12.2%를 차지, 서민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대한 상의의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도 알수 있는 것처럼, 경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국민들의 소비심리가 지나치게 위축돼 있어, 경기 회복을 위한 각종 대책뿐 아니라 정부의 심리안정화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경기침체의 타격이 서민들에게 집중되면서 좌절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일부 부유층들의 사치 행각이 계속 집중 조명되면서,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심화되고 있다.최근 한병당 천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최고급 위스키‘로열 살루트’20병이 국내에 수입돼 이중 절반 이상이 팔려나갔다.

이와 같이 수백만원하는 굴비, 수천만원하는 도자기 세트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뉴스를 접하는 서민들은 “살 의욕이 없다”며 한탄하고 있는 실정이다.‘집값’ 문제도 서민들의 허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1억원 이상 폭등했다는 소식에 서민들은 허탈감을 맛보고 있는 것.아파트 값 폭등에 의한 빈부격차의 심화, 서민 경제의 몰락 등 사회 갈등이 심화되면서 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표시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최근 서울 강남의 모 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 등을 폭파하겠다는 협박 전화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지난 5일 경찰에 신원미상의 40대 남자가 “강남 대치동 모 아파트의 한 동과 고급 주상복합건물의 지하 헬스클럽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전화를 걸어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사회적 박탈감에 따른 계층간의 갈등이 ‘강남’이라는 지역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이와 같이 집값 폭등에 의한 사회 갈등이 심각하게 전개되자 정부에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는 등 서둘러 사태 진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주택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하고 장기임대주택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서민주거 안정 대책과 소형주택 의무 건설 비율을 대폭 강화한 재건축 시장 안정 대책을 발표한 것.

정부가 내놓은 이번 대책은 재건축 때 중소형 아파트를 60% 이상 짓도록 함으로써 재건축에 대한 투기적 수요를 막는 동시에 강남 아파트의 공급물량을 크게 늘리는 효과를 얻겠다는 취지. 이와 동시에 분양권 전매 금지, 1가구 1주택 비과세 요건 강화, 국세청 세무조사 등 각종 규제수단을 통해 단기차익을 노린 아파트 수요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또 판교 신도시의 교육여건을 개선해 강남 대체효과를 높이겠다는 대책도 내놓았다.하지만 이같은 대책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중소형 아파트의 공급물량이 늘어나면서 중대형 아파트의 공급은 줄어들어 이에 따른 수요가 급증, 기존 중대형 아파트 가격은 오히려 더 뛸 것이란 분석이다. 결국, 주택 문제로 인한 서민들의 박탈감은 더욱 가중될 것이란 관측인 셈이다.

그렇다면, ‘서민경제’의 몰락을 가져온 경기 침체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대한상의 조사에서 서민들은 ‘생활형편이 언제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인가’란 질문에 대해서는 2005년 이후라는 응답이 전체의 56.8%를 차지해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내년 하반기 23.5%, 내년 상반기 13.0%, 올해 하반기 3.9%의 순으로 나타났다. 경기 회복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 전문가들의 견해도 다를 바 없다.“4/4분기에는 경기가 다소 회복되겠지만, 그 폭은 미미할 것”이라며 올 하반기에도 경기침체가 지속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한국개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경제동향을 통해 최근 각종 ‘지표’들이 예상치를 오히려 밑돌고 있기 때문에, 4/4분기에도 경기 지표가 불투명하다고 발표했다. 또 연구원은 수출은 대외적 여건이 좋아지면서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소비와 설비투자의 위축이 하반기 경기의 불안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도 이런 경기진단에 동조하고 있다. 당초 한은은 하반기 들어 경기가 다소 호전돼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3.1%를 기록할 것이라며 낙관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소비와 설비투자 등 내수침체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자, “3% 성장은 힘들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각 기업들도 “4분기, 체감경기 위축이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한상의가 1,500여개의 기업체를 대상으로 ‘2003년 4/4분기 기업경기전망’을 조사한 결과, 금번 4/4분기의 BSI(기업경기실사지수, 기준치=100)지수는 ‘90’으로 나타나, 위축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전체 응답업체 분포를 보면 경기가 3/4분기에 비해 호전된다고 예상한 업체가 23.9%(313개사)인 반면, 악화된다고 예상한 업체는 34.3%(449개사)에 달해 악화를 예상한 업체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대한상의 관계자는 “경제의 불확실성 지속으로 기업들의 불안심리 해소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라고 지적하고, “각종 규제완화, 법과 원칙에 입각한 노사관계 정립 등을 통해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이와 같이 경기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서민경제’의 몰락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경기 침체로 인해 서민들의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며 “정부는 국가 경제 기반인 서민층 붕괴를 막을 강력하고도 충분한 장단기 종합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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