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인도·싱가포르 순방은 지난해 천명한 '신(新) 남방정책'을 본격적으로 구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경제·외교안보 전략인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 구상의 한 축을 담당하는 신 남방정책 이행을 위해 핵심 전략국가와의 관계 구축을 한다는 데 이번 순방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오는 8일부터 5박6일 간 인도·싱가포르를 잇따라 국빈방문한다. 8~11일 3박4일 간 인도를, 11~13일 2박3일 간 싱가포르를 각각 방문할 예정이다.

인도와 싱가포르는 인도네시아와 함께 외교다변화를 모색 중인 문 대통령의 '신 남방정책'을 구현할 핵심 거점국가들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순방에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으로의 경제·안보적 외연 확장전략을 담은 '신 남방정책'을 천명한 바 있다.

 신 남방정책은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부터 가져온 '한반도 신 경제지도' 구상의 일부분이다. 한반도를 기준으로 북쪽의 러시아를 거점으로 '신 북방정책'을, 남쪽의 인도네시아를 거점으로는 '신 남방정책'을 통해 경제활로를 개척해 나간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신 남방정책은 경제가 정치·외교에 종속 돼 미국과 중국이라는 G2국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기존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기존 대(對)미·대중 중심의 의존적 경제외교에서 벗어나 한반도 남쪽의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 등 아세안 소속 국가로 경제의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아세안과의 교역규모를 2000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신 남방정책을 통해 중국과의 교역수준인 2100억 달러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이같은 정책에는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기존 무역시장의 패러다임 대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 과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경제보복 경험에서 확인했듯 새 시장개척의 필요성이 더해졌다.

 이는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强)국에서 벗어나 다변화를 꾀하겠다는 외교적 구상과도 맥을 같이한다. 외교다변화의 흐름 속에 경제영역도 다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이다. 신 남방정책의 강력한 추진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은 외교 다변화를 위한 첫단추를 막 꿴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13억 인구의 인도는 신흥시장 개척이라는 경제적 이익 외에도 최근 부상하는 미국의 새 안보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과 맞물려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은 지난달 30일 기존의 태평양사령부 이름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바꾸고 사령관을 새로 임명했다. 1947년 출범한 태평양사령부의 간판이 바뀐 순간으로, 인도·일본과 손잡고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미국의 대(對) 중국 견제 전략이 반영된 결과였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태평양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지역을 무역투자와 해양안보 벨트로 묶어 새로운 협력을 추진하자는 외교전략이다. 일본·호주·인도·미국을 연결하는 외교적 라인을 구축해 해상 진출을 노리는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게 미국의 구상이다.

 문 대통령이 동아시아 균형외교의 핵심파트너로서 기존의 아세안 국가들 뿐 아니라 인도를 포함시킨 것은 이러한 미국의 안보전략 변화와도 궤를 같이 한다. 다만 당장의 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안보 영역에서 인도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방안은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구상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인도는 경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면서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나라"라면서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신(新) 남방정책'의 핵심협력 대상국"이라고 인도 방문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한국과 인도는 올해로 수교 45주년을 맞는다"면서 "인도는 경제분야는 물론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중요 협력파트너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는 인도-인도네시아를 잇는 교량국가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정부의 신 남방지역 연간 투자 규모를 비춰봐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싱가포르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우리의 최대 건설 시장이자, 아세안에서 교역액 2위 국가로 문 대통령의 '신 남방정책' 추진의 핵심 국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여기에 싱가포르는 이미 체결된 한·싱가포르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바탕으로 추진 중인 한·아세안 FTA 체결을 위해서도 전략적 가치가 크다. 4차 산업혁명을 지렛대로 한 교류협력의 폭을 넓힌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이번 두 나라의 방문을 통해 우리 정부가 역점 추진 중인 '신 남방정책'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우리나라 외교 지평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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