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M&A설로 회사 주가 뛰자 차명계좌 통해 차익 남겨당시 M&A 시도 대주주된 당사자가 이익반환소송내 승소지난 8월18일 서울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홍기종 부장판사)는 한 웃지 못할 민사사건의 판결을 내렸다. 판결 요지는 M&A(적대적 인수합병)로 주가가 폭등하는 틈을 타 대주주로서 차명계좌 주식을 단기 매매해 얻은 이익을 회사에 반환하라는 것. 이 소송은 지난 2000년 벽산의 대주주 김희철 회장이 경영권을 위협받는 순간에도 뒤로는 시세차익을 올리자 한 주주가 이익을 반환하라며 낸 것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 회장을 법정에 세운 사람이 M&A를 시도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M&A 시도에 이어 M&A 대상이 된 회사의 오너를 법정에 세운 사람은 아이베스트투자의 한범희 사장. 한 사장은 지난 99년 말부터 워크아웃이 진행 중이던 벽산의 주식을 사들였다. 2000년 9월까지 계속된 지분 매집 결과 벽산의 대주주에 이어 지금까지 2대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베스트투자가 공개적이면서도 집중적으로 벽산 지분을 매입하자 시장에서는 M &A 시도라고 결론지었다. 한범희 사장은 M&A설을 부인하면서도 “벽산의 경영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언제라도 M&A에 나설 것”이라며 뒷살을 붙였다. 그러나 한 사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벽산이 자금난에 몰려 있어 방어 지분 매집이 어려웠고 주요 계열사들도 워크아웃에 묶여 우호세력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99년 7월 설립한 직후 벽산 지분 매집에 나선 아이베스트투자로서는 상대를 제대로 잡은 것이었다.당시 시장의 전망과 달리 한범희 사장의 약속 성격의 해명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아이베스트투자는 6월말 현재 벽산의 최대주주이며 한범희 사장 등의 지분을 보태면 전체 지분의 38.1%에 달한다. 김희철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44.9%로 경영권 방어에는 성공하고 있지만 한 사장과 아이베스트투자는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한범희 사장과 김희철 회장사이의 긴장감을 가장 잘 보여준 사건이 최근 있었던 소송건이었다.

지난 2000년 8월부터 2001년 1월까지 김희철 회장은 6개 차명계좌를 활용해 벽산 주식을 매매했다. 거래에서 올린 차익은 모두 8억9,700만원. 이 시기는 아이베스트투자에 의해 M&A설이 벽산을 뒤흔들 때였다.보통 M&A는 단기 투자자들에게 최대 호재로 통한다. 지분 공방으로 주가가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회사는 숨넘어갈 판에 오너는 차명계좌를 통해 잇속을 챙기기에 바빴던 것.어느새 벽산의 대주주 겸 비등기 임원이 된 한범희 사장은 김 회장에 대해 2002년 8월 ‘단기매매차익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한 사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김 회장에게 매매차익을 회사에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이에 앞서 금융감독원도 김희철 회장이 단기매매 차익 취득 사실을 인정했다. 같은 해 12월 금감원이 이를 인정하기는 했으나 차익을 청구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단기차익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인 2년이 지났기 때문이라는 것.증권거래법 등 관련법은 대주주가 6개월 이내의 주식거래로 취득한 단기차익은 회사에 반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취득일로부터 2년 내에 반환청구를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한범희 사장이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한 시점은 2000년 8월13일. 이 시기는 김희철 회장이 차익을 올리기 위한 매매거래 시작일인 같은해 8월24일로부터 2년이 지나기 전이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었지만 금감원은 이미 세운 방침을 벗어나지 않았고 한 사장은 소송으로써 차익을 돌려 받게 된 것이다.금감원은 또 김 회장이 올린 단기 매매차익이 4억1,686만원이라고 했지만 한 사장은 9억여원에 달한다고 주장해 이견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재판부가 한 사장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금감원 조사 결과에 흠집이 생겼다.대주주이면서 최대 위협세력인 아이베스트투자 및 한범희 사장과 대치중인 벽산 및 김희철 회장. 과연 한 사장이 벽산의 M&A 세력이 아닌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로 김 회장의 입지가 크게 좁아지는 것은 물론, 한 사장의 입김은 더욱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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