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업체엔 “가격높아 제외됐다” 통보세간에 떠돌아다니던 은행권 납품 실태가 이번 감사원 감사결과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 6월 감사원의 금융기관 감사 결과 보고서에서 은행의 납품 과정은 해당 직원의 도덕적 해이가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국민은행 가구 및 간판교체 공사 계약 업무 부당 처리로 관련자 3명에 대해 국민은행측에 징계를 요구했다.

◆은행권 구매시스템은 요지경
= 감사원에 따르면 국민은행의 경우 저가에 가구를 납품하는 회사가 있는데도 특별한 이유없이 고가의 납품업체를 선정하는가 하면 1, 101개의 영업점 간판을 교체하기 위해 납품 업체를 선정하는 데도 납품 희망업체 56개사에서 제시하는 단가 157만원에서 250만원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제시한 가격을 그대로 인정하는 등 기준이 없이 업체 선정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국민은행측의 입장은 횡설수설이다. 암호같은 표현으로 나름대로 고충이 많이 있다고 했다. 우리 은행의 경우는 물품구매 담당자가 평소 계약업무로 알게 된 용역업체 대표로부터 약 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는지 그 요지경 속을 들여다봤다.

◆고가 납품 업체 선정의혹
= 국민은행 당시 총무팀 A씨와 B씨는 지난해 5월 6일 신설 예정인 모 지점에 비치할 의자와 책상 등 가구구입을 위해 인천시에 있는 모 회사 등 7개 업체로부터 납품 제안서를 받았다. 열흘 후 납품업체를 선정했다.선정방식은 이랬다. 공개입찰 방식으로 진행했다. 총 7개 사가 납품을 희망했다. 7개 업체 중 모회사는 약 11억1,800만원을 제시했다. 이 금액은 업체 중 최저 가격대였다. 가장 유력한 납품 업체였다. 그러나 납품 업체는 14억6,800만원을 적어낸 서울시 동대문구에 있는 모 업체가 선정됐다. 유력한 업체보다 무려 3억5,000만원이나 높게 써냈음에도 선정됐다. 재미있는 것은 담당자들이 최저가를 써낸 업체를 탈락시킨 이유다. 담당자들은 최저가를 써낸 해당업체에 “귀사의 제안가격이 타사보다 높아 계약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전화로 통보했다.

해당업체는 누가 얼마를 써냈는지 알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확인할 길이 없었던 것. 그러고는 “해당업체가 납품기일을 맞출 수 없어 탈락시켰다”는 요지의 내부 보고서를 작성, 14억6,800만원을 적어낸 업체를 납품업체로 선정했다.국민은행측은 “제안가격이 타사보다 높아 계약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통보한 사실이 없으며, 탈락 사유는 납품을 위해서 시일이 필요하다는 해당 업체의 의사 표시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감사원은 해당 업체 영업담당자로부터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납기내에 납품을 하지 못하겠다고 의사표시한 사실이 없으며, 국민은행측으로부터 견적가격이 높아 계약 대상자에서 제외됐다는 통보를 받고 납품을 포기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납품업체 부르는대로 공사비용 지급
= 개인이 집을 수리하려고 한다. 그러면 마땅히 비용이 얼마가 들어가는지는 최소한 알아둘 것이다. 그러나 공사 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공사를 했다면 믿을까.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났다. 국민은행은 작년 8월 12일 1, 101개 영업점의 간판을 교체한 일이 있다. 주택은행과 합병하고 난 다음 CI(기업이미지)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지점의 간판을 바꾼 것이다. 무려 56개사의 희망업체가 납품하겠다고 지원했다. 국민은행은 심사숙고(?) 끝에 26개사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전국 지점에 있는 간판을 교체하기 위해 국민은행은 얼마 정도의 예산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정답은 모른다 였다. 국민은행은 비용이 얼마나 들지도 모르고 공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국민은행은 56개사로부터 받은 견적서를 접수한 결과 A사에서는 정문(조명)공사 등 13개 공정에 총금액 60억원으로 각 공정별 견적가격을 제시했다.

그러나 은행은 공정별 견적 가격을 예정가격으로 정하는 등 입찰 과정에서 공사가격을 정해야만 했는데도 예정가격을 작성하지 않았다.입간판(2면 조명) 공사의 경우 B사가 제시한 157만원에서 C사가 제시한 259만원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공정에 제 각각의 견적가격을 그대로 적용해 26개 업체와 약 75억원대에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A사가 제시한 금액보다 무려 15억원이나 높은 가격인 것이다. 국민은행 측은 이와관련, “간판공사의 계약금액을 각 업체마다 다르게 한 이유는 업체의 책임 하에 공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감사원은 국민은행의 해명에 대해 간판교체공사의 경우 업체는 동일한 공사를 했고, 공사감독이 국민은행 시설지원팀에서 제시한 사양대로 준공하면 되는 것이므로 책임시공을 위해 업체별로 각각 다른 견적가를 적용해 공사비를 지급하는 것은 변명의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거미줄 먹이사슬 자정능력있을까
=국민은행은 “감사원의 지적이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구매방식을 보다 투명하게 고치려 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금융권 일각에선 인테리어 물품 납품 등이 오래전부터 은행 고위층과의 먹이사슬이 거미줄처럼 쳐져 있어 자정능력이 있을지 우려된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은행측은 감사원의 해당 직원 징계요구에 대해 “감사원의 조치가 내려오면 반드시 그 결과에 대해 감사원에 보고케 돼 있어 징계를 할 예정”이라며 “당사자들의 억울한 점이 없는지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국민은행은 감사원의 지적을 의식해서인지 총무팀에서 맡았던 구매시스템을 통합구매팀이라는 전담 부서를 신설, 구매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운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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