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침해로 ‘학교가 정치판 된다’ 우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에 정당인이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 얘기다. 벌써부터 학운위가 ‘정치인들의 놀이터’로 전락됐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시의회는 본회의를 열고 학운위에 정당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참석 시의원 50명 중 34명이 찬성, 13명이 반대, 3명이 기권했다. 이에 따라 올해 선출된 학운위원 임기(2년)가 종료되는 2020년부터는 정당인도 학운위원이 될 수 있다. 총 1348개 학교다. 일요서울이 정당인의 학운위 참여 문제점을 살펴봤다.
 
서윤기 의원 “‘솥뚜껑’을 보고 ‘자라’라고 외치는 격”
서울 제외한 13개 시도, 정당인 배제 규정 별도로 없다
 
학운위는 학부모, 교사, 지역 인사 등으로 구성된다. 학운위는 주로 교육과정, 교과서 선정 등 다양한 학교 교육 활동과 공모 교장 추천, 학칙 개정, 예산안 등 학교 운영 전반을 논의하고 심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 초·중·고교는 총 1348개교다

학운위의 정당인 참여 논란의 중심은 정치적 중립성 훼손 우려다. 과거 역사교과서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좌·우로 편향된 교과서는 교육현장과 학생들에게 큰 혼란을 초래해 왔다. 

기존 서울시 조례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당 당원을 학운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해 왔다. 이번 개정안은 서울시의회 소속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다른 시도엔 학운위에 정당인을 배제하는 규정이 없는데 서울만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제출했다. 

개정안의 주 내용은 학교운영위원의 자격을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로 규정한 현행 조항을 삭제하는 것으로, 그동안 서울시내 학교운영위원 중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에 한해 입후보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개인의 정치적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었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4곳이 학운위 자격을 조례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서울을 제외한 13개 시도는 정당인 배제 규정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국·공립고 교장들에 이어 26일 서울 국·공립 중학교 교장들과 사립 중고교 교장들도 해당 조례안 철회를 촉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소속 정당 이념 따라
심의내용 좌우·갈등 요소도
 
서울특별시국공립중학교장회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는 학교 운영 전반을 논의하고 심의하는 기구로 심의된 사안은 교원의 교육 활동뿐 아니라 교육 대상자인 학생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이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만약 조례안대로 정당인이 학교운영위원에 학부모위원과 지역위원으로 참여하게 된다면 자칫 소속 정당의 이념이나 이익에 따라 심의 내용이 좌우돼 학교운영에 있어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기 쉽고, 정파를 달리하는 학운위원 간 갈등과 다툼으로 학교의 교육활동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예산 편성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영향력 있는 정당인이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특정 학교나 지역에 예산 지원이 편중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또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이 조례안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제31조)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교육기본법 제 6조(교육의 중립성)’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학교운영위원회의 위원 자격에 ‘정당의 당원인 자’를 배제하고 있는 현행 규정이 그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중학교인 경우 교육 대상자가 청소년기의 어린 학생이기 때문에 교육활동에 있어 정치적 중립성은 철저히 요구된다”며 “이 조례안의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사립중·고등학교 교장회도 “학운위 위원 자격에 ‘정당의 당원인 자’를 배제하고 있는 현행 규정이 그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데에 뜻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행 학운위 규정상 학부모위원과 지역위원이 3분의 2 이상이 되기 때문에 만약 조례안대로 정당인이 학부모위원이나 지역위원으로 학교운영위원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 소속 정당의 이념이나 이익에 따라 학교 운영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학교의 중요 행사장이 정당인들의 정견 발표나 표밭을 다지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장으로 변질될 수 있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교육감 선거에서 정당의 공천을 불허하고, 특정 정당의 후보가 선거 운동 과정에서 특정 교육감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도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라면서 “서울시교육위원회에서도 관련 조례가 철회돼 학교의 정치적 중립이 유지될 수 있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서울교총
정치인참여배제법 낼 것
 
서울시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서울교총)도 지난달 29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서울교총은 성명서를 통해 “서울시교육청은 ‘눈치보기식 안일한 태도’를 취하지 말고 즉각적인 재의 요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학교 현장의 반대에 부딪혀 1년 넘게 계류 중이던 안건을 상임위에서 기습 상정, 기습 통과시킨 것도 모자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서울시의회의 행태는 참으로 암담한 결정을 한 것”이라며 “서울시의회는 본 조례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반드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교총은 서울시교육청의 적극적인 자세도 요청했다. 성명서에서 “이제 공은 서울시교육청에 넘어갔다. 반드시 재의 요구하고 새롭게 구성되는 민선7기 서울시의회 의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이끌어 내 ‘학교운영위원회 조례개정안’을 반드시 철회·폐기시켜야 할 것”이라며 교육청의 결단을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서울교총은 “한국교총과 공조하여 정치 논리로 반복되는 소모적 논쟁을 끝내기 위해  ‘학운위 위원 자격에 정치인의 참여를 배제’하는 ‘초중등교육법’의 개정 입법을 위한 대국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과 조희연 교육감도 개정안에 반대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서울시의회 민주당 의원들이 개정안을 발의할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조례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서를 시의회에 제출했다.

한편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서울시의회 서윤기 의원은 반대하는 입장에 대해 “‘솥뚜껑’을 보고 ‘자라’라고 외치는 격”이라고 말하며 “당원을 정치인이라고 주장하고, 교육을 정치에 예속한다는 주장은 의도적인 왜곡 과장을 넘어 논리적 비약으로 실제 평범한 학부모가 정당의 당원인 사례가 많은데 이런 기본권 제한에는 눈을 감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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