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은 개, 돼지”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파면당한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가 재판에서 이겨 복직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 전 기획관은 올 8월 즈음이면 교육부에서 다시 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급여, 퇴직금, 연금을 수령하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다. 분명, 노후도 평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론의 잣대로는 실망스러운 결말이지만 영화가 아닌 현실에선 당연한 수순이다. 고위공무원은 개, 돼지가 아니니까.
 
나 전 기획관의 개, 돼지발언은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이 영화는 여의도를 중심으로 혼음(混飮), 혼숙(混宿)하는 내부자들이 보기에도 흥미진진했다. 영화의 인물들이 다 어디서 본 사람 같고 얼굴이 겹치지는 느낌을 가졌다.

줄거리도 영화적 장치를 위해 극적으로 구성된 점만 빼면 여의도의 시간 어느 토막을 묘사한 것으로 보였다. 여의도뿐만이 아니다. 서민들로서는 짐작도 못할 ‘내부자들만의 세상’은 곳곳에 숨겨져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종걸 의원이 원내대표 시절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했다. 용기가 무모할 정도다. 이 의원의 고백을 공명심에 따른 단순한 자진납세로 평가해선 안 된다.

이 의원은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그동안 감춰져 있던 음습한 세상의 한 자락을 공개한 것이다. 이로써 특수활동비라는 명목으로 구성되었던 내부자들의 카르텔 하나가 무너지게 되었다. 그의 양심고백으로 서민들은 몰랐던 그들만의 잔칫상 하나가 엎어졌다.
 
이 의원도 방송국에서 공개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 왔을 때 고민했을 것이다. 실익도 따져보고 미칠 파장도 가늠했을 것이다. 어째든 다른 정치인들이 머뭇거릴 때 그는 직진했다.

장자연 사건을 공론화하고 삼성의 지배구조를 겨냥할 때처럼 과감했다. 이번에는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냈다. 일단 반응은 나뉘고 있다. ‘역시 독립운동가의 자손’답다는 칭찬과‘다 똑같은 X들’이라는 성토가 비등하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쓰고 있는 눈먼 돈의 규모에 놀랐다. 유력 정당의 원내대표라서 다달이 받는 눈먼 돈이 6천 만 원이 넘는다. 국회의장이라서 외유 나갈 때 여행가방에 챙겨나간 달러가 6만 5천 달러(약 7천만 원)였다고 한다.

지난해 연평균 가구소득인 5010만 원을 훌쩍 뛰어 넘는 돈이다. 세금 허투루 쓰는지 감시하라고 뽑았더니 세금을 퍼 쓰고 있다.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이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그들만의 결속이 무너진 것은 내부의 균열 탓이었다. 젊은 검사 우장훈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 칼을 빼든 순간 그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에 직면했다. 독과점을 노린 기업 간 담합의 해체도 대부분 내부에서 시작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리니언시 제도’를 운영하는 데 담합을 최초로 신고하면 벌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담합에 나섰던 기업들은 공동의 이익보다 개별활동의 이익이 커지는 순간 앞 다퉈 담합을 자진 신고한다.
 
이 의원도 고백에 따른 자신의 이익이 여의도 내부자들의 공동이익을 넘어선 지점에서 특별활동비 내역 공개를 결심했을 가능성이 높다. 공익을 염두에 두면 한통속으로 몰아붙이고 끝낼 일이 아니다.
 
고발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 그래야 카르텔이 무너진다. 내부자들이 갈라선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닳고 닳은 거대 신문사 논설주간은 내부자들을 가리켜 “저들은 괴물이야”라고 한다. 괴물이 되어버린 내부자들을 무너뜨릴 기회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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