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재벌기업 중 처음으로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한다. 표면적으로 LG가 먼저 구조본을 없애기는 했지만 LG(주)가 지배구조의 정점의 위치에서 일정부분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SK의 구조본 해체 결정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나머지 재벌들에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은 SK가 왜 갑작스레 구조본 해체 카드를 내밀었느냐는 것. SK는 그동안 논의되어온 내용이라고 하지만 시기적으로 구조본 해체보다 중요한 사안들이 즐비하다.SK글로벌 지원에 대한 입체적 압박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경영권 위협 리스크 커 결단까지 최태원회장 고뇌많았을 듯가장 최근에는 SK(주)가 SK글로벌에 대한 출자전환을 결정해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또 최태원 회장이 실형선고를 받아 구조본의 더욱 강한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었다. 물론 SK는 계열사간 자율경영을 독려해오고 있었다고 하지만 SK글로벌 처리 문제에 구조본이 적극 개입했다. 국내 대부분 재벌이 이같은 방식으로 경영을 해오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 18일 SK가 발표한 ‘SK 기업구조 개혁방안’에 따르면 SK는 구조본 해체를 통해 ▲브랜드와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독립기업의 네트워크 변신 ▲구조본 해체,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 ▲2007년까지 부채비율 120% 달성 ▲에너지, 정보통신 중심의 사업구조 집중 ▲자생력 없는 계열사 청산 ▲부당내부거래 소지 원천 제거 등을 꾀한다.간단히 말해 SK(주)와 SK텔레콤 중심으로 계열사를 재편하고 여기에서 벗어나고 돈이 안되는 계열사를 정리해 부채비율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이야 구조본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사항이다.그런데 여기에서도 몇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SK(주)와 SK텔레콤 중심의 사업구조 재편을 하는 데 있어 누가 주체가 될 것이냐는 점이다. 또 SKC&C를 통해 여전히 그룹의 정점에 있는 최태원 회장의 향후 거취에 대한 SK의 결정은 무엇이냐는 점이다.

재계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의문점이 해소되어야만 비로소 구조본이 해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구조본 해체 이후 SK의 경영은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흥미로운 것은 SK가 구조본 해체를 발표하며 언급한 내용 중 ‘느슨한 연합 체제’로 계열사간 유기적 관계를 유지한다는 부분이다. SK는 이에 대해 ‘브랜드와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상호 네트워크 체제’라고 설명했다.SK 구조본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구조본 해체에 관해 크게 3가지 방안이 논의돼왔다. LG와 같은 지주회사로의 지배구조 전환, 구조본 해체와 이에 따르는 그룹 해체, 구조본을 해체하되 SK(주)에 의한 그룹 지배 유지 등이다. 이중 SK가 선택한 것은 마지막 방안이다.지주회사로의 전환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고 LG가 그랬던 전환과정에서 부당내부거래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또 구조본 해체와 함께 그룹이 사분오열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결국 지배구조는 그대로 끌고 가면서 동시에 최태원 회장의 불투명한 지배력을 상존시키고 구조본 해체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방안을 SK가 택한 것이다.구조본 해체의 최종 승인자는 역시 최태원 회장. SK의 한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의 동의 없이 구조본 해체가 가능했겠느냐”며 최 회장과 논의가 계속됐음을 시사했다.SK의 구조본 해체 결정이 예고 없이 이루어진 것은 최태원 회장 스스로 선택의 압박에 시달렸다는 해석이 있다. 재계 일부에서는 SK(주)가 출자전환을 결정하며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이 또 다시 거론될 것을 이미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구조본은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의 상징. SK는 글로벌 지원에 대한 입체적 압박에서 벗어나는 해법을 구조본 해체에서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재계는 최태원 회장의 결단까지 상당한 고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계 서열 3위 그룹을 지배하던 오너가 경영권을 상실할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리기가 쉬웠겠느냐”고 반문했다.

SK의 구조본 해체 결정과 향후 경영 구도 내용이 다소 구체적이지 않고 급조됐다는 인상마저 주는 게 사실. 올초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SK가 구조본 해체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할 틈이 없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최태원 회장 입장에서는 경영권 유지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던 구조본이 없어지며 경영권 위협받을 수 있는 리스크를 떠안게 됐다. 투자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소버린도 언제 낯빛을 바꿀지 장담할 수 없다.SK가 계열사간 업무조정 역할을 맡을 ‘사업관리실(가칭)’을 SK(주)에 설치 여부를 고민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계열사간 업무조정은 구조본의 순기능에 속했던 부분. 가상의 구조본이 특정 부서로 실체를 띨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구조본이 줄곧 비난의 대상이 돼왔던 총수를 위한 ‘비대한 비서실’과는 다른 차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관계의 끈만 유지한 채 각개 전투로 전환하는 SK가 최태원 회장을 보호하면서 경영권까지 방어하는 경영을 실현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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