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MF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나홀로 승승장구하던 SK그룹이 올해 초 SK글로벌 사태와 관련, 그룹 존폐위기에까지 몰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최태원 SK(주) 회장은 SK글로벌 분식회계와 부당내부거래 혐의로 현재 구속 중이고 이 틈을 노린(?) 소버린 자산운용 등 외국자본의 공격으로 SK그룹은 경영권마저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우와 현대 등 재계를 호령하던 그룹들이 하나둘씩 쓰러질 때도 나홀로 고속행진을 거듭하던 자산규모만 4조원이 넘는 재계순위 3위 SK그룹이 어떻게 이런 상황에까지 몰리게 된 걸까.IMF때도 ‘나홀로 성장’ … 현재 자산규모 4조로 재계 순위 3위오너구속에 외국자본의 경영권 공격으로 창사이래 최대의 고비“국가경제 측면서 최태원회장 선처” 각계서 구명 움직임

너무 큰 원죄의 멍에

마침내 최태원 SK(주) 회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상균 부장판사)는 13일 SK 부당내부거래 및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 배임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태원 SK(주)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의 실형을, 전경련 회장인 손길승 SK그룹 회장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에 앞서 최 회장은 SK글로벌의 채무를 줄여 1조5,587억원의 이익을 부풀리는 등 분식회계하고 그룹 지배권 확보 과정에서 워커힐호텔 주식과 SK(주) 주식을 맞교환해 959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으며 SK그룹과 JP모건간 SK증권 주식 이면계약 과정에도 개입, 계열사에 1,112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지난 3월 구속 기소돼 징역 6년이 구형됐다.

최 회장이 분식회계와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자신의 경영권 확보와 부당이익을 챙긴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합당한 벌을 받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일부에서는 다른 그룹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유독 SK그룹만이 표적이 돼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다른 재벌 총수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고 젊은 경영인들과만 어울리는 등 재계 총수들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재벌개혁의 본보기로 유독 혼자만 수사대상에 올랐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취재도중 만났던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이 SK 입장에서는 다른 그룹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을 것”이라며 “최 회장이 혼자 너무나도 큰 원죄(분식회계, 부당내부거래 등)의 멍에를 쓴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SK의 시원(始原)-창업과 수성

SK그룹은 1953년 설립된 선경직물(현 SK글로벌)을 모기업으로 하고 있다. 이후 1960년대 최종현 회장이 합류하면서 선경합섬(주)·해외섬유(주) 등을 설립, 학생복지인 ‘엘리트’의 성공으로 그룹의 기반을 마련한다. 1970년대 석유에서 섬유까지 그룹을 수직 계열화한다는 계획 하에 1973년 선경석유(주)를 설립했으며 1976년 선경(주)로 상호를 변경, 종합상사로 건설·목재·금속·기계·화학·관광호텔업·산림·농산·조경공사 등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SK그룹 아니 당시 선경그룹은 재계 순위 10위권 밖의 중견 그룹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80년대 대형 유공(현 SK주식회사) 등 공기업 인수에 성공하면서 지금의 SK그룹으로 성장하게 된다. 80년 유공 인수전에서 삼성, 현대 등 당시 재계 1, 2위를 다투던 대기업들을 물리치면서 곧바로 재계 5위로 뛰어올랐고 마침내 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 그룹의 축을 자연스레 이동통신과 석유화학으로 재정립시키며 재계 3위로 발돋움한다. 이후 1998년 지금의 사명인 SK그룹으로 변경하고 1999년 생명과학분야에도 진출해 세계 최초로 제3세대 백금착제 항암제를 개발하기도 했다. 현재는 주력사업인 에너지·화학·정보통신을 비롯해 금융, 건설·물류, 서비스 분야에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21세기 최대 시장으로 꼽히는 IMT-2000사업과 생명공학부문을 육성하는 등 ‘세계화된 혁신적인 종합마케팅 회사’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새 영웅의 등장-최종현의 카리스마

고 최종현 회장은 SK그룹의 창업자인 고 최종건 회장의 동생으로 1929년 경기도 수원시 평동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54년 서울대학교 농대 3학년 재학 중 미국 유학을 떠나 1956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형인 최종건 회장의 권유로 1962년 귀국했다. 귀국 직후 선경직물 이사를 거쳐 1970년 선경직물 사장을 역임했으며 1973년 최종건 회장이 죽자 경영권을 이어받아 이듬해인 1974년부터 1998년까지 선경그룹 회장직을 맡았다. 회장 취임 후 석유파동으로 인한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기업의 토대를 굳건히 해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유공과 한국이동통신 인수를 통해 그룹의 핵심 축을 마련했다.

1993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에 취임, 3기 연속 전경련 회장으로 활동했고 주한 콜롬비아 명예총영사(1979), 2002년 월드컵축구조직위원회 위원(1996), 1·2기 노사정위원회 위원(1998) 등을 역임했다. SK그룹의 오늘이 있기까지 최종현 회장의 합류가 발전의 분기점이 됐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학자로서의 꿈을 키우던 최종현 회장은 형인 최종건 회장이 경영난에 빠져 구원의 손길을 뻗치자 귀국해 형과 함께 멋진 콤비플레이를 전개, 일개 조그만 중소회사를 재벌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친화력이 강점인 최종건 회장은 대외활동에 전담하고 내성적이며 화학지식이 풍부한 최 회장은 안살림을 맡기로 역할을 분담한 것이다. 최종건 회장의 보스기질, 개척자정신, 강력한 추진력의 바탕 위에 최종현 회장의 기술력, 선진적 국제감각, 세밀한 관리능력이 조화를 이뤄 SK그룹이라는 꽃이 만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때가 사실상 SK그룹의 시발점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룹 중흥의 새 기치-‘수펙스(SUPEX)’의 명암

수펙스(SUPEX)는 SK그룹이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세계 일류 기업들과 겨뤄 이기기 위해 개발한 독특한 경영관리체계로 현재 세계 일류 기업들이 10년 후 도달할 수 있는 수준 이상, 즉 ‘Super Excellent 수준’을 목표로 설정, 반드시 성취하고자하는 SK인들의 실천의지를 담고 있다. SK그룹은 90년대 중반부터 수펙스 경영시스템을 도입, 끊임없는 경영혁신을 주도해왔다. SK가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하기까지 수펙스는 그 중심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해왔다. SK의 사장단 모임 명칭도 ‘수펙스 추구협의회’일 정도다. 최근 중국에서는 SK의 수펙스 경영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재계 중견기업에서 단시간에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SK의 노하우를 수펙스 경영시스템에서 찾은 것이다. 그 첨병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 지난 1990년 11월 중국의 인데센 그룹과 합작, 설립된 SKC.SK는 1997년부터 이 회사에 수펙스 경영기법을 도입, 2,000만달러 수준이던 매출을 이듬해 바로 8,000만달러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급성장시켰다. 1999년부터는 현지 매출이 1억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SK는 2001년 말부터 ‘수펙스 2000’을 21세기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채택, 실천해오고 있다.

신화는 계속돼야 한다

이번 SK글로벌 사태 전만해도 SK그룹은 ‘고객이 OK할 때까지, OK! SK’란 광고 카피처럼, 국민들의 신뢰가 두터운, 몇 안되는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SK는 그룹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또한 SK는 최고 경영진의 경영 공백과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 등으로 창사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최근 국가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연초부터 불어닥친 국내외 악재로 연초 6%대를 상회하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불과 반년도 안돼 반토막(2.9%)으로 줄었고 앞으로 언제쯤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도 섣불리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지난 1997년 IMF 당시보다 살기가 더 힘들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최태원 SK(주) 회장의 문제를 경제논리로만 풀 것이 아니라 국가경제측면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최 회장의 선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경제와 기업의 대외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초래하고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다. 우리 경제는 현재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이라크전쟁과 사스, 미국경제 불안 등 연일 이어지는 악재에 국내 경기도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잘못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재벌의 잘못된 경영관행에 일침을 놓기 위한 의도였다면 이제는 칼을 칼자루에 꽂아야 할 때다. 경제는 법의 논리로만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문제는 그동안의 국가 경제에 대한 공헌도와 위상, 국가경제 등을 아울러 고려해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SK그룹의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그동안의 공헌 등을 이제는 한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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