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주업계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소주시장의 최고봉인 진로가 법원으로부터 법정관리 결정을 받은 데 이어 지역의 맹주인 대선주조와 무학은 1년째 M&A 전쟁을 겪고 있다. 소주는 국내 전통주 시장에서 가장 많은 공급과 수요를 자랑하는 품목이다. 전통주라는 특성은 애주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소주업계를 ‘국민기업’으로 인식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법정관리 결정이 난 진로의 경우 자칫 외국인 손에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다 대선과 무학의 다툼에 브랜드 이미지 훼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소주 업계의 치열한 M&A나 최근 진로의 법정관리로 인한 외국계 인수 가능성이 재계의 높은 관심을 사고 있다. M&A는 ‘군웅할거’격인 지역 소주업계를 누가 통일하느냐가 흥미를 끌고 있고 진로의 법정관리는 1조9,100억원대(2002년말 기준) 소주 시장을 외국계로부터 지키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급속도로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진로의 법정관리주류업계의 올해 최대 뉴스는 역시 진로의 법정관리행이다. 법정관리는 국내인을 비롯해 최대채권자인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에까지 M&A의 문이 열려 있다.진로가 M&A 대상이 된 사실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진로가 전통주시장의 최대수요품목인 소주업체 가운데 시장지배적 사업자이기 때문이다.대한주류공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술시장 규모는 지속적인 확대를 유지해왔으며 2002년말 현재 전체 시장 규모는 5조9,500억원대에 달한다. 이중에서도 소주는 꾸준한 수요 확대로 같은 기간 1조9,100억원대에 이르고 있다.시장점유율에서 진로는 독보적인 존재다. 99년(39.2%)을 제외하고는 매년 50%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53.6%로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한해 5,900억여원의 매출을 자랑하는 진로는 골드만삭스가 최대채권자로 등장하면서부터 줄곧 경영권이 외국인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제기돼왔다.진로는 지난 98년 화의개시 결정이 내려져 지난해 말까지 9,600억원의 채무를 갚아왔으나 이는 대부분 화의채무 이자로 아직도 1조7,200억원의 채무가 남아 있다.진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88년 장진호 전회장이 총수로 오르면서부터. 장 전회장은 확장위주의 경영을 펴다 부실을 초래했다. 화의 진행 중에도 매년 1,000억여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으나 870억원 가량의 채권을 보유해 최대채권자로 부상한 골드만삭스가 지난달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진로는 항고할 뜻을 밝히고 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8월경 공개매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대선과 무학의 M&A 대결대선과 무학은 경남지역의 대표적인 소주업체. 두 회사의 전쟁은 지난해 6월 무학이 화의 진행 중이던 대선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를 선언, 사실상 M&A 의도를 드러내면서부터다. 이때 무학이 내세운 명분은 전국적 판매망을 갖춘 소주업체들의 지방공략에 맞서 시장 방어 차원의 합병론이었다. 그러나 대선의 적극 방어로 무학의 계획은 물거품으로 끝났다.무학은 당시 대선의 주주들을 상대로 주당 2만5,000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주주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무학의 M&A 시도는 무산됐다.

이후 무학은 대선 지분 46.8%로 대선의 임원 해임을 목표로 임시주총을 열기도 했으나 대선에 패한데 이어 대선의 우호세력을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하려하자 신주 발행을 금지하는 소송을 내기도 했으나 이 마저도 패소했다.무학이 시도한 모든 M&A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두 회사는 예전의 상태로 원상복귀하고 있다. 무학은 매집한 대선 지분을 공정위 명령으로 내년 1월까지 모두 매각해야 한다. M&A를 겪으며 무학과 대선은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는 손실을 입어야만 했다.

▲떠오르는 샛별 두산진로의 법정관리와 함께 지역 소주업계의 춘추전국시대에 최대 수혜자는 두산이 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소주의 최대 수요처인 서울과 수도권에서 진로의 ‘참이슬’을 대채할 유일한 술이 ‘산’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두산은 진로에 이어 수도권 소주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진로의 법정관리 직후 진로 노동조합이 한때 조업을 중단해 두산이 큰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진로는 조업 중단 선언 직후 다시 생산을 재개했다.2002년말 기준 두산의 전체 시장점유율은 진로, 금복주(9.5%)에 이어 3위(9.2%). 진로의 향후 경영권이 불투명해 만약 조업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유통업체와 도매상들이 대체하기 용이한 업체가 두산이라는 점에서 두산은 잔뜩 기대하고 있다.

이밖에도 전남의 보해양조, 경북 금복주, 전북 하이트주조, 충남 선양, 충북 하이트소주, 제주 한라산 등 각 지역의 맹주들이 지역민심을 업고 ‘전국구’인 진로를 상대로 분투하고 있다.소주 시장의 춘추전국시대는 93년 두산이 경월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하이트주조가 보배를, 하이트소주가 백학을, 한라산이 한일을 인수하는 등 시장 재편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진로의 어려움을 틈타 지역 세력들이 공격적 마케팅으로 나올 것이 확실시됨과 동시에 시장 재편도 함께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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