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피해자 김지은 씨와 검찰 측 증인신문으로 불리하게 흐르던 재판이 11일 열린 4회 차 공판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 재판까지는 두 사람 간의 관계에서 상명하복의 분위기가 강했다는 내용이 강조됐다면 이 날은 전혀 다른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공개된 것. 기세를 몰아 안 전 지사 역시 ‘수비’에서 ‘공격’으로 대응 전략을 수정했다. 안 전 지사 측은 검찰 측 증인을 대상으로 모해위증 혐의로 고소함으로써 대대적인 공세를 예고했다. 안희정 전성시대는 한 여비서의 폭로로 파국을 맞이했다. 안 전 지사와 관련된 수많은 의혹들이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논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비서의 주장을 신뢰하는 쪽과 여비서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쪽이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5일 ‘안희정 스캔들’이 불거진 당시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관측이다.
 

- “김 씨 직접 호텔 예약...” 安 측 증언 ‘채택’이 재판 ‘변곡점’
- “분위기 바뀌었다!” 안희정, ‘공세적 재판 전략’으로 수정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혐의에 대한 재판이 새 국면을 맞았다. 안 전 지사가 부하직원들에게 권위적으로 대하지 않았고 안 전 지사와 김지은 전 정무비서가 친밀한 관계였다는 증언과 정황이 나온 것. 앞서 지난 3차 공판에 참석한 증인들이 “안 전 지사의 캠프가 수직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였다”는 주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이다.
 
“安, 참모들과 ‘맞담배’...
김 씨, 자진해서 해외출장”

 
11일 오전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 심리로 열린 안 전 지사 4차 공판에는 피고인 측 증인으로 고소인 김 씨의 충남도청 후임 수행비서인 어모씨와 전 운전비서 정모씨, 전 비서실장 신모씨, 전 미디어센터장 장모 씨 등 4명의 증인 신문이 열렸다. 이날 증인들은 입을 모아 업무 환경에 강압적인 면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안 전 지사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신 씨는 “안 전 지사는 참모들과 모두 맞담배를 피웠다”며 “수행비서를 배석하지 않는 오찬이나 만찬에도 같이 가자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 전 지사가 참모들을 배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지사가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했다는 취지다.
 
김 씨의 후임으로 수행비서 업무를 맡은 어 씨도 “제가 경선캠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라며 “권위적이라는 느낌은 전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선 경선 캠프에서 선배들이 술자리 참여를 강제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며 “특히 홍보팀은 팀장과 팀원들이 어떤 컨셉을 잡을 것인가 아이디어를 많이 주고받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고 진술했다.
 
‘안 전 지사의 태도가 어땠냐’는 질문에도 “안 전 지사는 아랫사람에게 ‘무엇을 해주게’ 식으로 부탁조로 말했다”며 “호통을 친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 오히려 어 씨는 수행비서를 맡으면서 큰 실수를 한 사례를 언급하며 “안 전 지사에게 꾸지람을 받긴 했지만, 일주일 뒤 안 전 지사가 굴을 선물해줬다”며 “저는 그 일을 잊었는데, 안 전 지사가 내내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 씨는 김 씨가 안 전 지사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검사 측 증인들과 상반된 증언을 했다. 어 씨는 김 씨를 ‘유독 안 전 지사와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로 기억했다. 어 씨는 김 씨가 술자리에서 안 전 지사에게 술을 더 달라고 말하거나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밝혔다.
 
그는 “비서실 회식 자리에서 안 전 지사가 김 씨에게 농담조로 놀리는 말을 하니 ‘지사님이 뭘 알아요. 그거 아니에요’라고 말해 너무 놀랐다”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친밀해 보였다”고 증언했다.
 
특히 어 씨는 사건의 쟁점인 ‘해외 출장’과 관련해서도 김 씨가 자처했다고 했다. 어 씨는 “김 씨에 이어 수행비서로 활동하면서 ‘해외 출장을 가기 싫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이에 김 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어차피 나와 직무를 바꾼 것이니 내가 대신 가 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증언들은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인 ‘위력’, ‘안 전 지사와 김 씨의 관계’와 직결되는 것이어서 그의 증언이 받아들여질 경우 안 전 지사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安 측근 4명에 부인까지...
재판 새 국면 맞이하나
 

이날 재판에선 김 씨가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에 대한 반박도 나왔다. 또 다른 증인인 정 씨는 “그날 마지막 일정이 호프집에서 있었다. 김 씨로부터 ‘오늘은 서울에서 자고 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며 “그 뒤 김 씨가 직접 호텔 약도까지 보냈다”고 증언했다.
 
기세를 몰아 안 전 지사의 변호인단은 측근 증인신문 외에도 검찰 측 증인이었던 구 씨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는 등 추가 반격에 나섰다. 안 전 지사의 변호인은 이날 오전 재판이 끝난 뒤 모해위증 혐의로 구 씨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 서부지검에 제출했다.
 
구 씨는 지난 9일 증인신문에서 “한 기자가 (피해자와의 성관계 과정에서) 안희정의 위력을 증명하는 취재를 시작하자 안희정이 직접 해당 언론사의 유력 인사(고위 간부)에게 전화해 취재를 중단하라고 한 사실을 듣고 실망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구 씨는 “안 전 지사는 ‘취재를 막아주면 민주원 여사 인터뷰를 잡아주겠다’고 제안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안 전 지사 측 변호인은 “구 씨의 증언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특히 고통받고 있는 아내(민 여사)의 인터뷰를 언론에 제안했다는 증언은 명백한 허위사실뿐 아니라 악의적으로 재판에 영향을 끼치려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반박했다.
 
한편 지난 13일 열린 5차 공판에는 안 전 지사의 부인 민주원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민 씨가 남편의 성폭행 및 추행 혐의에 대해 직접 입장이나 심경을 밝히는 건 처음이다. 이날 재판에서 민 씨는 김 씨의 평소 태도와 행동에 대해 집중적으로 증언했다. 특히 민 씨는 이른바 ‘상화원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난해 8월 안 전 지사와 민 씨가 충남 보령시 죽도 상화원 리조트에 부부 동반 모임을 갔을 당시, 부부가 묵는 방에 김 씨가 새벽에 들어와 두 사람이 자는 침대 발치에서 보고 있었다는 게 안 전 지사 측의 주장이다.
 
이는 김 씨 측 증인인 구 씨가 지난 3차 공판에서 민 씨와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구 씨는 “여사(민 씨)가 피해자의 연애사와 과거 행적에 관한 정보를 취합해줄 것으로 요청했다”며 “이 과정에서 ‘안희정 정말 나쁜 XX다. 패 죽이고 싶지만 애 아빠니까 그래도 살려야 한다. 김지은 원래 맘에 안 들었다. 새벽에 우리 침실에 들어와 있던 적도 있다. 그래서 내가 수행에서 정무로 보냈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김지은 씨와 오누이로 불릴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는 성 씨의 증언도 새롭게 나왔다. 성 씨 말로는 김지은 씨가 안희정 전 지사를 향해 아이돌 같은 팬심으로 바라봤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해외 출장 뒤 성추행을 당했다는 분위기도 발견하지 못 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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