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부산·경남 5명, 수도권 5명, 호남 3명, 충청 3명, 대구·경북 1명.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18개 중앙부처 장관의 출신지다. ‘TK 패싱’이 가시화된 대목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함에 따라 ‘TK 패싱’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그러자 TK는 유일한 지역 각료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처지에서 좋든 싫든 김 장관만이 ‘동아줄’이라는 인식에서다. 이 같은 기대감은 최근 김 장관의 ‘당권 도전설’과 맞물려 극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김 장관을 TK의 대권주자로 까지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러한 ‘TK의 꿈’은 김 장관의 전대 출마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으로 비치는 친문계로 인해 일장춘몽의 위기에 놓이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시작된 TK의 혹독한 겨울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노골적인 ‘TK 패싱’에 ‘김부겸 동아줄’ 잡아보려 했지만...
- 집중포화에 몸 낮춘 김부겸, ‘당권 찍고 대권’→ ‘대권 직행’?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TK 패싱’이 점차 노골화되고 있다. 중앙 부처, 공공기관 등에서 PK와 호남 출신은 대거 약진한 반면 TK지역 출신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18개 중앙부처 장관 가운데 TK 출신은 김부겸 행정자치부장관이 유일하다.
 
文 정부, 보란듯 ‘TK 패싱’...
‘예산 편성’에서도 ‘TK 홀대’
 

‘TK 패싱’ 논란은 현 정권 초기부터 불거졌다. 내각 장·차관급 인사 114명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은 11명이었으나 호남은 31명, 부산·울산·경남은 28명이었다. 여당의 지방선거 압승에 따라 특정지역 편중 인사는 더 심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 내년도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국비 확보전’에서도 TK는 시작부터 밀리고 있다. 대구광역시는 기재부 1차 심의에서 대구산업선철도 건설, 물산업 클러스터, 5G-ICT 융합디바이스 사업 등의 국비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거나 대폭 삭감됐다.
 
경북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북도는 스마트서비스 융합밸리 조성, 국립 지진방재연구원 설립, 중부권동서횡단철도, 중부권동서횡단철도 등 필수적인 주요 사업 24개를 신규 사업으로 선정해 그 예산을 정부에 신청했다. 그러나 이 중 17개 사업이 부처 예산심사에서 탈락했다. 2기 내각에서도 ‘TK 홀대’가 지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수의 심장’ TK가 민주당 소속 김부겸 장관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심지어 지역 정가 일각에서는 TK 내 ‘인물’이 전멸한 탓에 김 장관을 차기 TK의 ‘대권 주자’로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눈치다. 이 같은 기대감은 김 장관의 ‘당권 도전설’과 맞물리면서 극에 달했다.
 
천지일보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가 6월 29~30일 이틀간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차기 당대표 적합도에서 김 장관은 25.9%의 지지율을 기록해 1위로 앞서 나갔다. 이어 ▲이해찬 의원(14.1%) ▲박영선 의원(11.9%) ▲박범계 의원(9.3%) ▲송영길 의원(4.4%) ▲이종걸 의원(2.6%) 순으로 집계됐다.
 
1위인 김 장관과 2위인 이해찬 의원 간 지지율 격차는 11.9%p로 오차 범위를 한참 벗어났다. 특히 김 장관은 자유한국당 지지층에서도 29.4%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나머지 주자들은 6%대 이하의 지지율에 그쳤다.
 
이 조사에서 주목할 대목은 김 장관이 ▲50대(32.8%) ▲60대(30.5%) ▲70세 이상(35.8%) ▲대구·경북(39.9%) ▲부산·울산·경남(31.9%) 등 전통적으로 보수 지지 성향이 강한 장년층과 영남에서 우위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 조사는 ARS 자동응답시스템(RDD 휴대전화 85%, RDD 유선전화 15%) 방식으로 진행했다. 통계보정은 2018년 5월 말 현재 국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라 성ㆍ연령ㆍ지역별 가중치를 부여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은 3.3%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구 수성갑 현역 국회의원인 김 장관은 이미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진보 정당의 불모지이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서 더불어민주당 간판을 달고 60%가 넘는 득표율로 지역구 의원에 당선되면서 보수 지지층으로의 확장성을 입증한 바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당의 간판이 대구를 지역기반으로 두고 있는 김 의원이 당대표가 된다면 TK 지역을 겨냥한 당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출마 시 당선 유력했지만...
자충수에 불출마 ‘가닥’

 
만약 김 장관이 출마할 시 당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그의 출마가 곧 문재인 대통령의 시그널로 해석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현직 각료가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일단 장관직 사표를 제출해야 하고, 대통령이 이를 수리해야 한다.
 
즉 문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한다는 것은 김 장관의 당대표 등판을 승낙한 것이라 다름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부겸 출마=문재인 대통령의 승낙=문심(文心)’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는 주장이다.
 
김 장관 역시 지난달 26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정치권에 있으면 ‘출마합니다’라고 선언하면 되지만 내각에 있는 나를 지휘하는 사람은 대통령과 국무총리”라며 “그분들에게서 ‘당에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없는데 마음대로 사표를 던지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김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발톱을 숨기고 있던 친문계에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김부겸 출마=문재인 대통령의 시그널’로 해석된다. 당연히 친문계 후보들 입장에서 그의 출마가 달가울 리 없다.

김 장관의 출마 시 좋든 싫든 길을 내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김 장관 스스로가 ‘대통령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다’며 자충수를 두었고, 친문계는 곧바로 먹잇감을 물었다.
 
결국 김 장관은 지난 1일 SNS에 자신의 발언이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고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정치적 술수로 읽혔다”며 “제 불찰이다. 너무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하명이 있으면 출마하겠다는 식으로 비쳐졌다”며 “결과적으로 임명권자에게 부담을 드린 점 역시 큰 잘못”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정치권에서는 김 장관의 ‘불출마’가 기정 사실화되는 모양새다. 사실 ‘대권’을 꿈꾸고 있는 김 장관 입장에서도 무리하게 ‘당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그의 당권 도전이 ‘대권’을 위한 디딤돌로 비친다면 역풍의 우려가 더 크다. ‘당권 찍고 대권’이 아닌 ‘대권 직행’이 더 지름길일 수 있다.
 
민주당 소속 한 의원 역시 “김 장관 본인이 말실수를 한 것도 있고 당내에서도 대권에 욕심 있는 사람을 대표로 뽑아주진 않을 것”이라며 “본인도 당대표를 출마하다가 대권을 놓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부겸 변수’ 사라진다면?
“親文, 99% 이해찬으로 정리”

 
한편 김 장관의 전당대회 ‘불출마’ 기류가 짙어지자 다른 한쪽에선 ‘출마’ 채비를 서두르는 이가 있다. ‘친노·친문’의 좌장 이해찬 의원(7선. 세종시)이다. 이 의원은 당초 국회의장 도전을 포기하면서 당대표로 방향을 트는 것이 확정적으로 비쳤다.
 
그러나 정작 출마 선언은 차일피일 미루며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는데 이는 김부겸 장관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의 ‘큰 어른’인 이 의원 입장에서도 문 대통령의 ‘시그널’을 받은 김부겸 장관이 출마를 결정할 경우 맞서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김 장관이 불출마할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이 의원이 출마 시 혼잡 양상이던 친문 후보군이 한 번에 교통정리될 공산이 높다. 당장 당내에서는 전해철 의원, 최재성 의원, 김진표 의원 등이 이해찬 의원을 중심으로 ‘공동연대’를 구성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세 의원 중 두 명이 출마 논의를 하고, 단일화를 이룬 한 후보가 다른 후보를 만나 결판을 짓는다는 것이 당초 구상이었지만, 시간이 촉박해 세 사람이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안민석 의원 역시 KBS 라디오 ‘최강욱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핵심적인 변수는 이해찬 의원께서 출마할지 안 할 지다. 그분이 워낙 당의 어른이시고 친노, 친문의 가장 좌장이시니 이분이 출마하게 되면 아마 절반, 그 이상이 접거나 아니면 거취를 새로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친문계 관계자 역시 “이해찬 의원으로 거의 99% 정리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민주당 전대는 친문계 의원들이 물밑 협상을 진행한 뒤 이해찬 의원을 구심점으로 삼아 친문계 경쟁 구도를 단일화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이해찬 의원이 친문이라기보다는 친노로 봐야 한다며 후보군이 난립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분명 이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다른 후보군과는 당대표의 위상과 역할 등에 대해 시각 차를 보이고 있다. 이에 각자 예비경선에서 살아남은 뒤 ‘진검승부’를 벌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전직 의원은 “이 의원은 당이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데 대해 상당히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서 역시 이 의원이 소위 ‘할 말은 하는’ 강경 노선을 밟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드보이 리스크’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지방선거에서 ‘압승’하긴 했지만 다소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 의원을 당의 얼굴로 앞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 의원 측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지난 10일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세대교체는 일리 있는 말”이라면서도 “당내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혁신만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열린우리당 시절에 보지 않았나. 리더십을 기반으로 한 안정이 있어야 혁신도 가능하다”라고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만약 민주당이 한국당처럼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라 일대 쇄신이 필요한 거라면 젊은 혁신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나”라며 “세대교체가 필수 불가결한 조건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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