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지분 판 후 시가보다 싼 공모가 노려 증자참여 의혹본인들 소유 다른자산 풀지않아 회생의지 강한 의구심카드사를 계열사로 둔 재벌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어지간한 굴뚝 산업 뺨치는 수익으로 총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최근 몇 년에 비하면 최근 카드사들은 ‘낙동강 오리알’ 대접을 받고 있다. 이는 여신상환 능력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 ‘묻지마’식으로 카드를 발급해 눈덩이처럼 연체가 불어나자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실 카드사들의 거의 유일한 회생 방안은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마련. 그러나 연체 규모 확대,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매출 저조 등이 예상돼 대주주들마저 증자참여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이같은 현상의 가장 극단적 형태가 LG카드와 구본무 회장 등 LG그룹 대주주 일가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LG에 따르면 구 회장 등은 일단 카드 유상증자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증자에 참여는 하되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카드 지분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이 자금으로 증자에 참여할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워버그나 체리스톤 등 외국계 대주주들도 마찬가지. 쌈짓돈은 풀지 않고 증자 참여라는 형식만 취하겠다는 의도다.참여연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등 계열사가 삼성카드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삼성그룹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참여연대는 “삼성전자 등이 삼성카드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은 계열사들의 동반 부실을 불러올 수 있다”며 증자 참여를 적극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카드를 살려야 한다는 그룹의 방침은 확고하다.반면 LG카드는 유상증자를 앞두고 색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주주들이 증자 참여자금을 만들기 위해 기존 LG카드 주식을 매각하고 있는 것. 구본무 회장 등은 지난 4월10일부터 5월17일 현재까지 LG카드 주식 508만여주를 장내에서 처분했다.

이렇게 마련한 자금은 약 960여억원에 달한다.대주주들뿐 아니라 워버그핀커스, 채리스톤 등 외국계 대주주들도 LG카드 지분을 팔아치우기는 마찬가지다. 역시 유상증자 참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대주주들의 연이은 지분 매각은 시가(1만5,550원, 21일 종가 기준)에 비해 공모가로 형성될 것으로 보이는 8,800원대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이 시세차익을 올리거나 차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주로서 회사를 살리겠다는 의지보다 자기 주머니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이 애널리스트 역시 이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는 “체리스톤은 페이퍼 컴퍼니로서 과거 LG산전으로부터 주식을 매입해 대주주가 됨과 동시에 LG카드 주식을 담보로 사채를 발행했을 때 LG산전이 보증을 서줘 사실상 특수관계에 놓여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며 “유상증자란 새로운 자금이 들어오는 것을 말하는데 대주주들이 주식을 매각해 주가를 떨어뜨리고 헐값에 신주를 인수한다는 것은 유상증자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난했다.

대주주들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해당 계열사와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된 것은 LG의 지주회사제도와 관련이 깊다는 게 증권전문가들의 분석이다.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금융계열사를 자회사로 편입시키지 못한다. LG그룹의 금융계열사 중 지주회사격인 LG투자증권은 LG전자가 최대주주이기는 하지만 멀지 않아 대주주 일가가 이 지분을 사들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편입되지 못하기 때문에 순전히 대주주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LG카드와 같은 금융사는 제도적으로 금융사들을 제외한 계열사들의 증자 참여가 금지된다.또 구조조정본부 시절과는 달리 지주회사는 자회사들에 책임 경영을 맡기고 있어 구조본을 통한 대주주의 경영 간섭이 제한된다. 과거 계열사간 거미줄 출자로 동반 부실 등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고안한 제도적 장치가 바로 지주회사다.

제도와 제도로 인한 대주주의 경영권 전횡의 한계로 인해 계열사들은 LG카드 증자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생긴 셈이다.LG카드는 자산총액이 20조원에 달한다. 부실의 골이 깊을수록 대주주들의 책임도 커지기 마련이다. LG카드는 지난 한해 3,500억원 흑자와는 달리 올해 3월까지 3개월간 3,845억원의 적자를 냈다. 1개월 평균 1,280억원의 적자를 낸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앞으로 적자폭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악순환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지주회사’ LG는 LG카드 회생을 위해 대주주들의 사재출연이 논의될 공산도 없지 않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LG카드의 대주주들의 최근 움직임으로 봐서는 LG카드를 회생시키려는 의지가 있는지 강한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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