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율성 훼손이냐 vs 건전한 시장 확립이냐

이봉주 보건복지부 조직문화 및 제도개선 위원장이 지난달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 의료 영리화, 사회보장 협의제도 등을 골자로 한 제도개선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7월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앞두고 있다. 또 스튜어드십코드를 통해 총수 등 경영진 일가의 사익 편취에 일조한 투자 대상 기업들을 적극 감시하고, 주주 활동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와 관련해 각계각층의 반응은 상당히 엇갈린다. 우선 재계는 “국민연금 간섭 강화하면 기업 자율성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경제시민단체 등지에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채택의 후퇴는 안 된다”고 못 박는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채택이 향후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벌써부터 긴장감이 흐르는 모양새다.

경영 간섭 강화 놓고 각계각층서 대립각 세워
부당 지원·총수일가 사익 편취·횡령·배임 정조준 


지난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관리·감독하는 보건복지부는 오는 26일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을 심의, 의결한 뒤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스튜어드십코드란 국민연금이나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큰 집의 집안일을 맡은 집사(Steward)처럼 고객과 수탁자가 맡긴 돈을 자기 돈처럼 여기고 최선을 다해서 관리, 운용해야 한다는 지침이자 모범 규범이다.

보건복지부는 17일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의 구체적 실행방안을 담은 초안을 놓고 공청회를 열어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다. 스튜어드십코드가 시행되면 국민연금은 강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초안은 주주제안을 통한 사외이사 후보 추천이나 국민연금 의사 관철을 위한 의결권 위임장 대결, 경영참여형 펀드 위탁운용 등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활동을 주주권 행사범위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제시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스튜어드십코드가 실행되면 배당정책 이외에 부당지원행위, 경영진일가 사익 편취행위, 횡령, 배임 등 주주가치와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사안으로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기업 가치 훼손 방지

이른바 중점 관리사안으로 설정, 여기에 해당하는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이사회·경영진 면담을 통해 개선 대책을 요구해 기업조치사항을 확인하고, 비공개 서한을 발송하는 등 비공개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되지 않으면 의결권 행사와 연계해 주주총회에서 횡령, 배임, 부당지원행위, 경영진 사익 편취행위를 주도한 이사 임원이나 사외이사, 감사의 선임을 반대하기로 했다.

또 국민연금의 과도한 영향력에 대한 우려 해소 차원에서 위탁자산을 맡아서 굴리는 자산운용사에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넘기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 후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의결권 행사 범위에 대한 논의를 거쳐 점차적으로 도입할 방침이다.

당초 예상보다 강도와 수위가 약해지긴 했지만,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 시행으로 이전의 ‘거수기’ 또는 ‘종이호랑이’ 등의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때보다 훨씬 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분석이 높다.

다만 적극적인 주주제안 행사에 대해선 찬반 대립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대상이 된 재계의 입장은 “지나친 경영 간섭으로 자율 경영 침해가 우려되고 오히려 주주들이 손해를 볼 것”이라는 견해다.

아울러 국민연금의 기업 배당 요구 강화 방안이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삼성·현대차·LG·SK 등 주요 대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이 50% 이상인 만큼 배당 확대는 외국인에 대한 배당도 늘리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는 예측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부당한 경영에 대한 감시 효과와 자율성 침해 우려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반대로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1일 논평을 통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채택이 경영 간섭 우려 때문에 후퇴해서는 안 된다”면서 “부당개입과 같은 관치경영의 오명을 씻고 국민의 소중한 노후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경제개혁연대는 국민연금이 위탁자산의 주주권 행사를 투자일임업자에 맡기도록 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데 대해 “국민연금과 위탁운용사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의결권 불통일 행사의 문제가 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각종 이해관계로 인해 재벌의 입김에 취약하며 국민연금에 비해 외부 감시를 덜 받을 수밖에 없는 민간 위탁운용사의 경우 독립적 의결권 행사가 쉽지 않은 점 등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내년 본격 시행 예상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범위에 의결권 위임장 대결, 주주제안, 경영참여형 펀드 위탁운용 등 경영참여 활동을 넣지 않는 방향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의 취지를 몰각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제개혁연대는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강화로 건전한 시장 질서를 확립할 것을 약속했는데도 주주권행사의 범위를 극히 제한하려는 것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형해(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는 결국 내년 2019년을 기점으로 본격 시행될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분석이 가장 많다. 때문에 해당 정책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도 2019년도 주주총회에서 판명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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