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규율’ 토론해서 우리가 정해요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교육 현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입시제도의 변화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말이 현실로 와닿는 움직임이다. 과거 주입식 교육, 입시 교육이 강요되던 학교가 이제는 배움의 의미를, 꿈을, 평화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일요서울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한 광수중학교를 찾아 혁신학교가 이끌고 있는 교육계 변모 실태를 살펴봤다.   

학생·학부모·교사 3주체가 벌이는 대토론회
토론회 참석한 학부모 “교육 주체로서 나아간다”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한 광수중학교 학생들이 한울관에 모였다. 전교생 약 300여 명과 학부모 20여 명 그리고 교사와 함께 외부 인사들이 함께한 자리였다.

이 날은 3주체 대토론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학교의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가 모두 모여 미리 준비된 주제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단상 위에는 토론에 참여할 학생대표 4명과 학부모 2명, 교사 2명과 사회자가 앉아 있었다.

토론회 시작 시간인 오후 1시 40분이 되자 한 학생의 토론 패널 소개와 함께 본격적인 토론회가 시작됐다. 

교사 관여 없이
학생들이 진행하는 토론


대토론회 주제는 자율복 규정 제정 건과 휴대전화 규제 강화 건이었다.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있는 주제이자 뜨거운 이슈다. 

광수중학교는 지난해 9월부터 교복자율화를 시행했다. 당시 교복자율화 여부를 놓고 학생과 학부모 사이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결국 교복자율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오늘까지 왔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학생들의 복장은 제각각이었다. 전형적인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편안한 차림의 반바지, 반팔을 입은 학생도 많았다. 복장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토론회에서는 교복자율화 이후 노출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돼 관련 규정을 만들 것인지 말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찬성과 반대 측 주장을 듣고 패널로 참여한 학생, 교사, 학부모의 반론이 펼쳐졌다. 

패널로 나선 학생들의 발표 수준에 깜짝 놀랐다. 하루이틀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광수중학교는 학생자치회장 선거도 이곳에서 전교생을 모아놓고 진행한다. 후보들 간 질문은 물론 일반 학생들도 질문을 할 수 있다.

토론회도 마찬가지였다. 이 날도 일반 학생들의 질문이 나왔다. 각자 찬성, 반대임을 밝히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모습을 보니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였다. 주입식 교육만 받아온 기성 세대에게는 놀라운 장면이었다.         

질문에 나선 학생이 말을 잘 못해도 잘못 이해해도 주변 학생들은 발표자를 비난하지 않았다. 대신 친구가 자기와 같은 의견을 말하면 박수로 동의를 표시했다.

노출에 따른 교복 자율화 규정 제정 외에도 휴대폰 규제 강화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휴대전화를 수거하는데 일부 학생이 내지 않아 다른 학생들이 선의의 피해를 본다는 문제제기에 토론 주제로 선정된 것이다. 

토론 과정에서 학생들은 치열하게 각자의 논리를 펼쳤다. 학생 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학생들 대다수가 수업 중 휴대폰 수거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는 듯했다. 

한 시간을 훌쩍 넘긴 토론은 학생들이 주도했다. 토론 시간이 길어지자 학생들 주의가 산만해 졌지만 사회자의 정리 멘트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토론은 약 1시간 40여 분이 걸렸다. 토론 주제인 노출 문제와 휴대폰 사용 제한 등의 필요성에 대해 학생들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는 만큼 뜨거운 공방전은 없었지만 학생들이 두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다는 반응이었다.
  “올바른 민주주의”
“올바른 자치” 시작


학생들의 토론 모습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토론자로 나선 교사를 제외하고는 교장선생님 조차도 진행에 개입하지 않는 점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토론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광수중학교 장재근 교장은 토론 효과에 대해 “학생들이 자신의 얘기를 표현하고, 상대의 생각을 잘 듣고, 서로 간에 존중하고, 그러면서 인권을 서로 존중하고 올바른 소통이 됨으로써 건강한 시민으로 자랄 수 있다”며 “그게 바로 올바른 민주주의고 올바른 자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내가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들이 생긴다. 옛날에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따르라 했는데 지금은 내가 정하다 보니 서로 노력한다. 지키려고”라며 긍정적인 효과를 설명했다. 

토론회에 참여하는 학부모 생각은 어떨까. 학부모 김미애 씨는 학생들의 토론회에 참여한 뒤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처음에는 옛날 제가 학교 다녔던 것처럼 윽박지르고 혼내고 규정에 따라야 된다고 강하게 (생각)했었다면 지금은 ‘너희들이 해놓은 것이니까 (알아서) 정해’라고 하니 더 이상 말을 못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에 대해서는 학교에 나와 토론회 등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 자녀 때문에 가는 게 아니고 교육 주체로서 나간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이 학교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나가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지난해에도 열렸던 대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했다.

광수중학교의 토론 문화는 주변 학교들에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이날 토론회에도 타 지역 교사들이 참관을 했다. 그런 만큼 학생들의 자부심도 상당하다.

3학년 학생자치회장 최가을 학생은 “이런 대토론회를 학생끼리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끼리 하면서 민주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 그게 좀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광수중학교에서는 대토론회가 일 년에 2번 열린다. 학생들은 토론회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대의원회를 개최한다. 대의원회는 학생회장단, 각 학급별 회장·부회장이 모여서 하는 회의다. 각 반에서 미리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하고 의견을 취합해 대의원 회의에서 논의한다.

경기도에서 혁신학교가 처음 운영된 건 지난 2009년이다. 당시 1대 민선교육감에 김상곤 현 교육부장관이 당선되면서 13개 학교가 처음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혁신학교는 학습 다양화, 학습 복지, 학생인권 등 학생중심의 학교운영체제를 바탕으로 학교 혁신과 공교육정상화를 꾀해 왔다.   

경기도에는 현재 초·중·고교에 총 541개의 혁신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성남이 40개로 가장 많다. 많은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배움이 즐거운 학교를 꿈꾼다. 그동안 우리 교육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협력보다는 경쟁을, 공교육보다는 수월성교육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학교 안에서는 협력과 공교육이 가능하다. 즐거운 배움을 통해 공공성의 가치를 배우며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광수중학교 학생들의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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