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봉숭아학당’이라는 TV 코미디는 일제강점기 때를 배경으로, 신식 학당에서 신식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코너였다. 등장할 때마다 항상 모든 이야기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는 맹구를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와 학당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코너답게 당시 많은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바보상자’ TV 속 코미디였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봉숭아학당’과 비슷한 정당(政黨)이 TV도 아닌 실제 정치권에 등장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이야기다. 이들이 벌이고 있는 일련의 코미디극은 ‘봉숭아학당’의 그것을 넘어선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그들의 코미디는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됐다. 사실 이들은 훨씬 전부터 두 패로 나뉘어 서로 치고받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정권창출과 장권재창출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는 휴전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마침내 대충돌했다.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옥새 파문’을 일으켰다. 당의 대표라는 인사가 공천장에 찍을 도장을 갖고 고향으로 날아가 버리는 진풍경을 연출한 것이다.    

유권자들은 총선에서 그런 새누리당(한국당 전신)에게 옐로카드를 내보였다. 180석도 가능하다고 큰소리치던 그들을 원내 제2당으로 밀어낸 것이다.

새누리당은 그러나 정신을 못 차렸다. 두 패는 계속 싸우기만 했다. 심지어 한 패는 좋든 싫든 끝까지 함께 해야 할 주군을 되레 권좌에서 몰아내는 어처구니없는 작태를 보였다. 맹구가 그랬듯 당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경고를 했던 유권자들은 이번에는 아예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 조기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선택하면서 새누리당을 집권당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그 때서야 새누리당은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일부 의원들은 집을 뛰쳐나가고 남은 자들은 자유한국당으로 당 간판을 바꿨다. 그러나 돌아선 민심을 돌이키는 데는 턱 없이 부족했다. 집 나간 인사들이 복당하는 코미디를 연출한 뒤 당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또다시 두 패는 집안싸움을 벌였다.

그런 그들에게 유권자들은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통해 한국당에 철퇴를 가했다. 대구와 경북을 제외하고 전 지역을 파랗게(민주당) 물들게 한 것이다.
이 한 방으로 한국당은 사실상 죽었다. 숨만 쉬고 있을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정당’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됐다.

다시 일어나보려고 애를 쓰고는 있으나 그 과정이 또 코미디다. 두 패는 여전히 자기네가 잘났다며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있고, 비상대책위원장을 모시기 위해 벌이는 행태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진보들의 ‘전가의 보도’인 ‘파격’을 흉내 내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진보가 했으니 보수도 그렇게 하면 될 것이라는 안일한 발상이 빚은 비극이었다.

얼마나 한심했으면 국민들조차 빈정댈까. 비대위원장을 국민들로부터 추천을 받겠다고 하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영어의 몸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거론했다. 이 보다 더한 인사도 있었을 것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아무리 비대위원장 모시기가 어렵다 해도 이런 식의 장난기 섞인 방식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기보다는 짜증만 나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만 바라보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한국당은 더 이상 보수답지 않은 행동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한국당은 없어지는 게 낫다”는 대구 민심이 두렵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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