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정국 이후 관심을 끌고 있는 차기 중심 축은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이다. 최근 두 단체장은 마치 경쟁하듯이 비슷한 정책공약을 발표하는 등 총선을 앞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이와관련해 구구한 관측도 나돌고 있다. 총선의 결과가 차기 대권 행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니 벌써’라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 겉으로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지만, 이 시장과 손 지사의 물밑 대권경쟁은 이미 불을 뿜기 시작했다는 관측이다.지난해 연말 서울 P호텔에서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가 오찬회동을 가졌다. 손 지사가 먼저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지사가 이 시장의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에 대응, 도내 3곳에 ‘캠퍼스형 영어마을’ 건립을 추진하던 터였다.

손 지사는 이날 이 시장에게 경기도가 건립예정인 ‘캠퍼스형 영어마을’ 가운데 한 곳을 서울시와 공동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 지사의 이같은 제스처는 서울시가 경기도 발표직후 부지매입비와 건립비 등 680여억원을 들여 서울 송파지역에 교육 및 숙박, 레포츠 시설을 갖춘 ‘영어체험마을’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이와관련 두 단체장의 경쟁심이 정책남발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않다. 이 시장은 이날 회동에서 지방분권 정책에 공동 대응할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했지만 경쟁적인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모임 끝에는 상대진영에 대한 품평도 오간 것으로 알려지는 등 이미 대권가도를 향한 양진영의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아직까지는 드러내 놓고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지는 않지만 4·15 총선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두 사람의 물밑 경쟁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잠재적 대선후보군 중 처음으로 대선 출마 의사를 내비친 이 시장측은 이미 대선용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이 시장과 친분이 있는 한나라당 인사는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 시장은 홀가분한 상태”라며 “청계천 복원 사업을 무리없이 추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고무돼 있는 인상”이라고 말했다. 정두언 전 정무 부시장은 이 시장이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아직 준비된 것은 없으며 결정된 바도 없다”면서 “이 시장은 단지 시정에 전념할 뿐”이라며 대선주자 행보의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서울시 예산만 3,700억원이 투입되는 청계천복원사업이 순탄하게 출발하자, 핵심 측근들이 빠르게 대선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당장의 서울시 사업구상도 이와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서울 강북지역을 10년 내 강남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도심개발 사업, 3,000억원 규모의 서울시 문화재단 건립계획 등 대규모 사업들이 대선 포석으로 비친다. 당 안팎에서는 여의도에 있는 모연구소가 이 시장의 차기 대권후보 베이스 캠프라는 소문도 들린다.당 관계자는 “이 시장은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최병렬 대표를 도와 서청원 의원을 민 손 지사와 비교할 때 차기 대권 행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이 시장은 서울시장 선거 당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고, 이 시장의 고려대 후배인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과 친분을 배경으로 당내 입지 확보에 나섰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 시장측은 홍 의원과 행정수도 이전문제와 서울시의 강북지역 뉴타운 개발계획 및 청계천 복원사업이 17대 총선 및 차기 대선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 적잖은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얘기가 들린다.

손 지사의 경우 경기도청 내에 국제·언론·시민단체 등을 담당하는 파트를 조직, 차기 ‘용꿈’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 시장에 이어 대권 도전 의사를 직접 나타낸 손학규 지사가 경기도란 ‘한계’를 걷어내겠다는 의지로 읽혀진다. 최근 그는 미국을 방문, 국무부 켈리 차관보 등 미 행정부 고위관계자들을 잇달아 만났다.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이 테마였다. 그는 “주한미군이 한강 이남으로 가면 북한의 오판을 불러올 수 있고, 한·미 동맹관계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외쳤다.주한미군 재배치 논의가 시작된 뒤 손 지사측은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지도자’를 핵심 홍보문안으로 활용하고 있다.한 측근은 “도시와 농촌, 바다와 평야가 혼재하고, 군사화력의 80%가 집중된 경기도를 이끄는 리더십은 ‘도심뿐인’ 서울과 다르다”고 귀띔했다. 그가 대권을 그리는 관점도 ‘국가경영은 경험을 가져야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의 경륜이 국가 경영에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접근한다.

파주 LG필립스 공장 유치, 평택 부근의 대규모 자동차 부품단지 조성, 판교 동양 최고의 실리콘 밸리 구축 등 그의 경제 프로젝트엔 ‘국가 경영’ 차원의 시각이 얹혀있다. 손 지사는 “수도권의 경쟁력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라고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총선에 대비한 손 지사측의 움직임은 이 시장측에 비해 심상치 않은 양상이다.이 시장의 측근으로 이번 총선에 나서는 인사로는 정두언 전정무부시장이 유일한 반면, 손 지사측은 ‘손학규 사단’으로 불리는 인사들이 이번 총선에 ‘올인’ 태세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현규 경기도 정무부지사, 이철규 경기도개발연구원장, 정성운 서울사무소장 등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고, 손 지사와 오랜 지우관계인 이수영 전교통개발연구원장, 송태호 경기도 문화재단 이사장, 노시범 경기개발공사 사장도 자천타천으로 총선 채비에 나서고 있다.

손 지사는 이와는 별도로 경기지역 의원들과 수시로 골프모임을 갖는가 하면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후보 보좌역을 지낸 차명진씨를 경기도청 공보관으로 데려간 것도 당내에 다양한 우군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의 일환으로 알려졌다.정치적 변수가 없는 한 ‘2007년’대선경쟁에서 만나게 될 두 사람은 이미 전쟁 중이다. “정치전문가들이 캠프에 합류했다”, “거물급 인사를 영입, 대선프로젝트 지휘를 맡겼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17대 총선을 치른 후 이 시장과 손 지사의 대권야망이 누구에게 유리하게 펼쳐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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