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외신인도, 최근 대형화 추세 부응” 주장노조 “관료주의적 발상 근거한 실적 쌓기” 비판 정부의 조흥은행 매각 추진과 관련,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과 조흥은행 노조가 오는 25일 사상 초유의 전산망 다운을 포함한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해 노정(勞政)간 극심한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노조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매각을 강행하려는 정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조흥은행의 속내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외부적으로 나타난 정부의 조흥은행 매각 이유는 대외신인도 고려와 최근의 금융권 대형화 추세에 부응한다는 것. 이에 대해 금융노조와 조흥은행 노조는 “정부가 대외신인도 고려와 대형화 추세 운운하는 것은 단지 듣기 좋은 허울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지극히 관료주의적 발상에 의한 실적 쌓기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흥 “전산망 다운 등 총파업”

금융노조와 조흥은행 노조가 이처럼 초강경 투쟁을 선언한 것은 지난 2일 ‘조흥은행 매각과 관련한 토론회’에서 정부의 ‘조흥은행 매각’방침이 확인된 이후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와 신한금융지주회사(이하 신한지주)의 매각협상이 급진전됐기 때문이다. 이들 양측은 신한지주가 그동안 펴온 주당가격 6,150원을 깎자는 주장을 철회하고 계약 이후 발생할 손실에 대한 보전 범위를 넓혀줄 것을 요구했고 예보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금융노조와 조흥은행 노조는 11일 기자회견을 자청, 사상 초유의 전산시스템 중단이라는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날 조흥은행 노조는 정부의 조흥은행 일괄매각 추진을 ‘대형화 위주의 금융구조조정 정책의 산물’로 규정하고 “지난 2일 청와대토론회 이후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가 당초 약속과는 달리 강제매각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며 “정부는 당초 약속한 대로 독자생존을 전제로 3∼4년에 걸친 단계적 민영화를 추진하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금융노조와 조흥은행 노조는 전산망 다운을 포함,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하는 한편 강력한 항의 표시로 노조원뿐 아니라 조흥은행 전직원들의 사직서를 16일 청와대에 제출키로 결의했다.

정부 “매각 방침 변함없다”

이에 대해 정부는 총파업 선언 다음날인 12일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을 통해 조흥은행 매각 방침을 재확인했다.이날 문 수석은 “조흥은행 매각문제에 대해 노조측의 주장을 들었지만 매각 외 달리 방법이 없다는 정부 결정이 내려진 만큼 노조측은 이에 따라야 할 것”이라며 “노조가 매각 자체를 반대하는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노조측의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노조와의 만남에서 독자생존을 약속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매각 외 다른 방법이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었지 매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면서 “노조측과 매각을 전제로 고용승계, 근로조건 개선 등 문제에 대해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지만 매각 자체는 정부의 방침인 만큼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조흥은행 노조는 김진표 경제부총리와 변양호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이인원 예보 사장, 김병주 예보 과장을 직권남용죄 및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본격 행동에 나서면서 이들의 대립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들은 소장에서 김 부총리 등이 조흥은행 실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신한회계법인의 회계책임자에게 조흥은행 주당가격을 낮추라는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실사결과 기존 주당가격 6,150원보다 3,000원 가량 높이 평가됐던 조흥은행 주당가격이 5,930원으로 오히려 낮게 나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흥은행 이용규 노조부위원장은 “주당 3,000원을 낮췄을 경우 이는 전체적으로 1조5,0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그만큼 조흥은행을 헐값에 매각하겠다는 것”이라며 “납득할 설명도 없이 정부가 이처럼 조흥은행 매각을 서두르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흥은 매각은 관료주의적 발상”

금융노조와 조흥은행 노조는 정부의 조흥은행 강제매각 방침에 대해 지극히 관료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실적 쌓기 측면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 공적자금 조기회수라는 명분에 휩쓸려 납득할 만한 금융산업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구조조정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대통령에 보고되는 등 독자생존을 전제로 3∼4년간 단계적 분할매각하기로 했던 방침에서 갑자기 10월 일괄매각으로 방침이 바뀐 것은 정권 말기 공적자금 손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관료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금융정책 관련 실정(失政)까지 은행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흥은행 이용규 노조부위원장은 “정부의 민영화 및 매각 방침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조흥은행을 신한지주에 흡수합병 시키는 것은 신한과 조흥을 모두 죽이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조흥은행 매각문제는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한국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를 시험하는 ‘척도’로 국내외 투자자에게 인식돼 왔다”며 “조흥은행 매각이 지연될 경우 오는 6∼7월로 예정된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기관의 국가신용등급 조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조측이 은행 전산망 다운을 선언하면서 벌써부터 자금 이탈 현상이 나타나는 등 조흥은행의 부실화가 우려된다”며 “어떻게든 전산망 중단사태는 막겠다는 게 방침이지만 노조측의 극단적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아무튼 현재까지의 상황은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25일로 예정된 은행 전산망 중단을 포함한 총파업 사태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은행 전산망이 다운될 경우 조흥은행 고객은 물론, 연계된 다른 은행의 고객에게도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와 노조 모두 국민을 생각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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