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전지훈련서 女선수 몸 더듬은 감독…영구제명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국내 스포츠계가 그 어떤 곳보다 성폭력 위험이 큰 곳으로 지목되고 있다. 학교 운동부 합숙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성추행 문제도 있지만 제3의 장소나 훈련장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도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엔 검도계에서 성폭력 문제가 터져 나왔다. 한국 검도 국가대표팀 감독이 여자팀 선수들을 여러 차례 성추행 및 성희롱한 정황이 드러난 것. 성추행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짬짬이 의혹도 제기되고 있지만 대한검도회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 수차례 성희롱 발언하기도…목격한 선수들 많아
- 체육계, 자체징계 후 ‘제 식구 감싸기’ 감경 일쑤



한국 검도 국가대표팀 감독이 여자팀 선수를 성추행하다가 영구제명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도계 내부에서는 그간 A감독이 선수를 성추행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를 증명할 사실이 없었다.

하지만 침묵하고 있던 피해자 B선수는 지난달 초 A감독이 자신을 성추행한 사실을 대한검도회에 알렸다.

일요서울이 받은 제보에 따르면 A감독은 피해자 B선수의 아버지와 잘 알고 지냈던 사이였다.

감독의 나쁜 손은 꽤 오랫동안 뻗쳐 있었다. 검도 국가대표팀은 지난 5월 말 지방으로 전지훈련을 갔다. 마지막 날 워크숍을 가진 자리에서 A감독은 B선수의 신체를 더듬고 만지는 등 성추행했다. 대한검도회 관계자는 “이 성추행 장면을 목격한 선수도 있었다. 더 알아보니 B선수 외에 다른 선수에게도 성희롱 비슷한 말을 했던 것으로 진술서에 적혀 있었다”고 말했지만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자세한 정황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대한검도회 규정상 징계의 의결이 있는 경우 즉시 대한체육회 공정체육실에 이를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검도회는 6월 초에 접수된 진정을 1달이 다 되도록 대한체육회 공정체육실에 보고하지 않아 이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짬짬이 의혹을 받고 있다.
 

A감독, 성추행 인정
피해자, 일단 경기에 집중
 


이와 관련 대한검도회 관계자는 이의신청 기간으로 보고가 지연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징계 확정을 지으려면 14일간의 이의신청 기간을 거쳐야 한다. 대한검도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지난달 12일 모여 징계를 의결한 후 A감독에게 통보했다”며 “A감독이 이 기간 동안 이의를 두지 않아 같은 달 26일 대한체육회 공정체육실에 징계보고서를 등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참석하지 않은 A감독은 성추행 사실을 인정한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진술서를 보냈다고 한다.

일각에선 여전히 사건을 은폐하려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문체부 한 관계자는 “‘대한검도회가 대한체육회에 A감독과 관련된 징계보고서를 등록하지 않고 있다’는 민원이 지난달 27일 국민신문고에 들어왔다. 검토해보니 민원이 들어오기 하루 전인 같은 달 26일 감독의 영구제명과 관련된 공문이 시행된 것을 확인했다”며 “이후 지난 3일 2차 민원이 들어왔는데 ‘내가 민원을 제기한다고 하니 이들이 처리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마 검도계에서 설왕설래가 있었던 것 같다. 민원자가 ‘왜 보고를 빨리 안 하느냐. 민원을 넣겠다’고 하자 검도회 측에서 바로 보고를 한 것이 아닌가라는 추정이 나온다”라고 했다.

B선수는 오는 9월 14~16일 인천에서 열리는 세계검도선수권대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검도회 관계자는 “피해자 측은 현재까지 경찰에 고소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검도회 내부에서 처리를 해달라고 요구해 영구제명을 결정했다”며 “이 선수의 의사에 따르면 지금은 세계대회가 코앞에 있기 때문에 경기를 마친 후 경찰에 사건을 접수하려는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A감독의 자리에는 현재 박경옥 코치가 대신하고 있다.
 

미국 고등학교스포츠연맹
학교·운동부 관리 감독 책임 물어

 

체육계의 성폭력·성추행 사건은 앞서도 제기됐다.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팀 단체팀 코치(47)는 대한체조협회 전 고위간부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며 체육계의 미투운동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뉴시스>

그는 지난 2011년 대한체조협회 전 고위간부 C씨에게 “생활이 어려우니 기회가 되면 월급 좀 올려 달라”고 말했다. 그 이후부터 C씨는 “그런 얘기 하려면 모텔에 가자”라고 말하는가 하면 “저번보다 살이 빠졌네. 좀 쪘나”라면서 몸을 만지기도 했다.

체육계 관계자에 따르면 C씨는 선수·코치 선발 등 협회의 일을 도맡아 하는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자진 사퇴한 후 2년 뒤 전보다 높은 직위의 임원 후보가 돼 협회에 돌아왔다.

태권도 선수로 소년체전에 출전하기도 했던 D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지난 1998년 사범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하나씩 틀릴 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겼다. 대회에 나가려면 2차 성징 여부를 알아야 한다며 가슴을 만졌다. 몸무게를 잴 때도 속옷만 남기고 모두 벗으라고 강요했다”라고 폭로했다.

약 10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박명수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감독은 지난 2007년 4월 10일 로스앤젤레스 전지훈련 도중 소속팀의 한 선수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여 옷을 벗기고 추행했다.

그는 감옥생활을 하지 않고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 나왔다.

스포츠계의 성폭력은 감독·코치의 절대 권력과 연관이 깊다. 이들은 선수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진학과 경기 출전권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다. 게다가 연봉 협상이나 실업팀 입단에서도 그 영향력은 막강하다. 어린 선수들이 지도자의 부당한 요구를 ‘감히’ 거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대부분의 선수가 학창시절 운동에만 집중한 탓에 다른 분야에 취업하기 어려운 것도 폭로를 막는 걸림돌이다.

국제사회는 지난 200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주관으로 ‘체육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미국의 고등학교스포츠연맹(NFSH)은 ‘학교 운동부 성폭력 예방 십계명’을 제정했다. 실제 성폭력이 발생하면 지도자는 물론 학교·운동부(구단)의 관리 감독 책임까지 철저히 묻는다.

한국 체육계도 성폭력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스포츠인권센터를 설치해 신고·상담 업무를 하는 방안을 내놨다. 문화관광부는 지난 2008년 ‘스포츠 성폭력 근절대책’을 내놓았다.

체육계는 그간 성추행 사건이 발생되면 해당 감독을 영구제명하고 추가적인 형사 고발 등 가능한 최고 수위의 제재를 가했다.

문제는 여론이 잠잠해지면 징계수위를 낮춰주고 살 길을 모색해 주는 행태를 반복해 왔다는 것. 이에 최근 도입한 시스템들로 성폭력으로부터 안전지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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