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투·대투·현투 등 부실 3인방 살리기에 7조7천억 투입 허사 올 결산서 각각 수천억씩 손실 … 공적자금 추가 투입여부 고민주무장관 밝힌 구조조정도 수월치 않을듯지난 8월18일, 투신협회가 낸 공시자료에 국내 증시의 주름살이 깊어갔다. 올해 1분기 전체 투신운용사들의 순이익이 244억원에 불과하다는 소식이었다. 이 액수는 전년도 같은 기간(4∼6월) 순이익 573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 1분기 영업이익은 301억원으로 전년 기간의 47.1%에 불과했다. 적자를 낸 것도 아닌데 증시가 고민에 빠진 이유는 이렇게 나가다가는 하반기 투신사들이 구조조정 바람에 휩쓸릴 공산이 커지기 때문이다.1분기 실적을 보면 투신업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돼가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가장 적자가 큰 PCA에서부터 동양, 동부, 세종, 태광, 한국, 슈로더투신운용 등은 지난해보다 적자폭이 더 벌어졌다.반면 삼성, LG, 미래에셋, 하나알리안츠, 국민투신운용 등은 지난해에 비해 이익률은 다소 줄었으나 흑자기조를 유지했다.그러나 전반적으로 투신업계는 참패 분위기다. 상반기에 시작된 수익악화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면서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위기의식이 급속히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실의 골이 깊어진 투신사들의 처리 문제는 하반기 금융시장 재편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어 근심과 관심이 교차하고 있다.금융당국의 최대 현안은 한국투자신탁증권, 대한투자신탁증권, 현대투자신탁증권 등 부실 투신사 살리기. 이들은 이미 정부로부터 공적자금 7조7,000억원을 수혈 받은 상태다.

그러나 상반기 이들 부실 3인방의 실적은 심각하다. ‘돈 먹는 하마’라 불릴 정도다.한투증권은 올해 결산(2002년 4월1일∼2003년 3월31일)에서 1,883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같은 기간 대투와 현투도 각각 1,224억원, 2,618억원의 손실을 냈다. 공적자금 회수는 고사하고 추가 공적자금이 거론되는 지금, 과연 그렇게 해야 하느냐에 정부는 고민하고 있다.일반 굴뚝 산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투신사 처리 문제는 정부로서는 골치 아픈 현안이 아닐 수 없다. 공기업이 아니면서도 다소간의 공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문제다.투신사는 투자자로부터 신탁재산을 유치해 이를 주식이나 채권 등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게 본업이다. 기관투자가로서 이들이 움직이는 곳에는 거액의 뭉칫돈이 위성처럼 주위를 따른다.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막대한 자금이 움직이는만큼 상당수 기업에 대주주로서 지위도 갖고 있다.투신사가 투자한 거래소 주식은 지난 4월 현재 상장주식 시가총액 248조원의 7%, 상장채권잔액 571조의 14%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콜시장에서 전체 콜자금 1,253조원의 59%를 공급하고 있다. 투신사가 없으면 콜시장은 자취를 감출 판이다. 이 정도면 관료들이 서명 한 번으로 ‘공룡’ 부실 투신사를 처리할 수 없는 이유는 충분하다.어쩌다 투신사가 부실의 늪에 빠져버린 걸까.시초는 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대우 사태 이후 증권업계의 수익증권 판매규모가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증권시장의 시한폭탄으로 잠복해 있다가 올초 SK글로벌 사태와 카드채 위기로 인한 환매 사태는 감춰진 염증을 드러냈다.더 심각한 사실은 투신사가 금융 시장의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 속으로는 곪고 곪은 부실을 안고 겉으로는 고객들의 신탁재산으로 기관투자가로 입김을 발휘하고 있다. 또 자금 시장에서는 단기차입자이기도 하다.

한 증권업계 인사는 “지급불능 상태인 부실 투신사가 걷는 길은 외줄타기를 연상시킨다”라고까지 말한다.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투신사를 연말까지 구조조정하겠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고 김진표 부총리도 대통령과 뜻을 같이 했다. 그러나 행정부 수반의 말대로 구조조정이 수월할 것인가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탐탁해 하지 않아 하는 눈치.부실의 핵심인 현대투자신탁증권이 갑론을박 속에 몇 해 동안 파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현투를 두고 한투나 대투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정부는 현투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현투의 매각 여부에 따라 한투와 대투 처리 문제가 실마리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현투 매각작업은 현투와 푸르덴셜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현재 협상과 실사가 진행 중이다. 이미 AIG와 매각 협상에서 결렬 경험을 갖고 있는 정부는 푸르덴셜과 협상에서 어떻게든 종결을 짓겠다는 각오다.그러나 협상 결과는 고사하고 협상이 진전됐다는 어떠한 얘기도 없다. 뜸을 너무 들이면 타는 법이다. 안좋은 소문들이 나오고 있다. 일설에는 부실 자산 처리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매각 결과 발표가 늦춰지고 있다고 알려졌다.현투를 두고 한투나 대투 처리 방향을 거론하는 것은 이른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은 공적자금이 투입됐다는 점에서 현투와는 또 다른 심각한 양상을 지닌다. 이미 공적자금 7조7,000억원이 투입됐음에도 추가 부실이 각각 1조원씩 발생했다고 알려졌다.지금과 같은 증시 불황기에는 부실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가다가는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모르는 딜레마에 빠질 공산이 크다.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하겠지만 매각 또는 추가 공적자금 투입 말고는 별 다른 대책이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정부는 현투증권 매각, 공적자금 투입 여부, 한투와 대투의 합병 가능성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 해결의 방법은 하나로 요약된다. ‘스텝 바이 스텝’. 정부가 생각하는 방법은 무엇이든 하나만 제대로 해결하면 여기에서 틀을 잡아 연쇄적으로 해결한다는 것. 탄력을 두겠다는 얘기다.하반기 금융시장의 폭풍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는 부실 투신사 처리 문제. 정부가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올해를 넘길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측이다. 정부가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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