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사는 ‘한국’ 서울에 ‘한국’ 정조(情調)가 이렇게 보이지 않을 수야 있나? 저 가게마다 걸린 간판에 그린 한국 인물들을 보게, 어디 한국 사람 됐냐고? 저것은 한국 사람도 아니고 외국 사람도 아니고 두루뭉수릴세 그려---거기는 참으로 한국 사람이 없었다. 얼른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이비적 한국인, 즉 어느 딴나라 사람에게 한국 옷을 입힌 것을 발견할 것이다.”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서울 풍경을 그린 이 글에 동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지금의 종로 모습이 아니다. ‘승방비곡’을 쓴 신소설가 최독견이 지금으로부터 76년전인 1927년 ‘조선문단’에 쓴 수필 ‘조선 정조’의 일부다. 원문에는 물론 한국이 조선으로 돼있고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정조라는 말은 시쳇말로는 정서쯤이 될 것이다. 이 글의 앞부분은 같은 시대에 활약했던 소설가 서해(曙海) 최학송의 소견이니 서해와 최독견이 오늘의 종로를 보면 과연 어떤 감상을 하게 될까가 사뭇 궁금하다.

아마도 그분들은 이것은 한국이 아니야, 이것은 분명 미국이야 라고 통곡을 할법하다. 상당기간 영어 공부를 한 사람도 알수 없는 외국어로 뒤덮여있는 거리는 그분들의 눈에 조선 땅이 아닐 것이요, 배꼽을 내놓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들, 사람들의 모습 또한 ‘조선사람’이 아닐 것이다.몇 년 전인데 60년대에 미국에 가 한국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한 의사 친구가 모처럼 서울에 들러 한다는 얘기가 “한국사람들이 너무나 잘 산다”는 말과 함께 “한국의 인종이 달라졌는데 혹시 외국인 피가 섞이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다. 40여년 만에 그의 눈에 비친 오늘의 한국인은 그가 60년대까지 보아온 한국인의 얼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물며 192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눈에 지금의 한국사람들은 아마도 조선의 피가 아닌 다른 인종쯤으로 보일 것이다.

키가 훌쩍 크고 피부가 희며 얼굴의 각이 다른 이방인일 것이다.각설하고 신라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고려시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가 궁금하듯이 가까이는 바로 우리의 아버지 세대, 할아버지 세대가 살았던 시대상과 그분들의 생각도 관심거리다. 때맞춰 20세기 초엽에서 40년대 초까지, 왜정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수필을 모은 ‘모던 수필’(방민호 엮음)이 최근 나와 이런 궁금증을 얼마간 달래주고 있다.역사 소설의 대가인 월탄(月灘) 박종화가 1942년 ‘청태집’에 쓴 ‘여우 목도리’는 한편의 재미있는 풍자다. 1930년대 중반들어 서울에는 여인들 사이 여우 목도리가 대유행했던가 보다. 월탄은 유행은 참으로 무섭다고 전제한뒤 조선 부인네들이 여우 목도리를 하고 다니는게 어디 될법이나 한 일이냐고 개탄한다.

여우는 냄새가 지독한데다 송장을 파먹고 “간악한 시앗을 보면 구미호 같이 잘 후려낸다던 여우, 여우의 무엇을 차고 다니면 사나이를 잘 후려낸다던 여우”, 그래서 점잖은 부녀자들이 가장 기피하던 여우의 껍데기를 조선의 여인들이 목에 칭칭 감고 다니는게 말이나 되느냐고 질타하고 있다.월탄은 이 글에서 다른 일화 한 토막도 전한다. “어느 신문을 읽으니 표범 껍질로 얼룩덜룩 성장을 차리고 굽높은 구두를 바지작 거리면서 득의 양양하여 종로 거리를 활보하다 마침 뛰어오는 사냥개에게 흉물스런 짐승으로 오인되어 (사냥개가)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이 호기롭던 성장 미인은 샛노란 비명을 지르며 이발소로 뛰어들어가 뭇 남성들의 조소거리가 됐더라”면서 이런 현상을 월탄은 원시생활을 그리워하는 변태적 심리, 엽기적 행동이 아니냐고 꼬집는다.

삽화가였던 안석영이 1937년 ‘조광’에 쓴 ‘모던 걸’과 시인 박팔양이 1927년 조선일보에 쓴 ‘진실한 의미의 모던이 되자’도 그시대 여성들의 차림새에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찌부러진 초가 삼간에서도 길 나올 때는 불란서 파리나 뉴욕의 맨해튼에서 부침하는 여성들의 옷을 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래서 ‘모던’이 ‘못된’이 된게 아니냐며 오늘의 조선 여성들의 무엇엔가 초조한 심리가 허영을 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그 시대 지식인들이 그리는 세태에는 나라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빚어지는 전통사회와의 갈등, 특히 세칭 신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불만과 사시(斜視)가 도처에 깃들여 있다. 주로 여성들의 차림새가 강조되고 있는 것은 당시만 해도 글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성들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 시대라고 ‘못된 보이’는 없었을까. <경제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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