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실채권비율 급상승 … 금감위, 서둘러 건전성 회복 지시스톡옵션 행사·사전인지 SK주식 처분 등으로 이미 여론도 악화추석을 앞둔 지난 8일 오후, 금융감독원에서는 한 은행 관계자에게 이례적인 지시를 내렸다. 이례적 지시란 해당 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의 급상승에 따른 대책마련. 이 소식은 금융계의 귀를 쫑긋 세우기에 충분했다. 고정이하여신비율 문제를 가지고 금감원이 특정은행을 가리키며 관계자를 불러들인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제의 은행이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이었다는 점에서 이날의 관심사는 온통 국민은행의 재무건전성에 모아졌다.금감원이 가리킨 고정이하여신비율이란 전체 여신 중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 채권 비율을 의미한다.

상반기 현재 국민은행의 고정이하여신은 5조9,399억원이며 고정이하여신비율은 4.4%에 달한다. 이 수치는 작년말에 비해 고정이하여신은 55.4%,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5%나 상승한 수치다.단순히 국민은행의 수치로만 놓고 봤을 때는 심각성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다른 은행들과 비교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경우 같은 기간 고정이하여신비율이 2.5%이고 하나은행은 2.7%다. 경쟁 대형은행들에 비해 국민은행이 적게는 1.7%에서 많게는 1.9%까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 평균이 3.3%인 점을 감안하면 국민은행의 상황이 어느정도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사정이 이 정도에 이르자 얼마전부터 금융계는 국민은행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급기야 관망을 유지하던 금감원이 국민은행에 건전성 회복을 지시하자 금융계는 예감이 적중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국민은행의 주름살이 잡히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국민은행이 2/4분기에 1,146억원 적자를 내고 상반기 전체로는 407억원의 적자를 냈다고 알리면서부터다. 국민은행은 이와 함께 신용카드 충당금 7,858억원을 비롯해 SK글로벌 충당금을 포함한 기업여신 충당금, 가계여신충당금 등 모두 1조8,085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고 밝혔다. 작년 동기 5,891억원에 비해 3배 이상 덩어리가 커진 것이다.금융계의 시선 속에 금감원이 팔을 걷고 나선 이유는 국민은행이 전체 은행 자산의 2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특히 아시아 최대 소매금융을 지향할만큼 가계 대출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상반기 대손충당금에서 신용카드와 가계여신충당금만 1조2,870억원을 쌓아놓았다.금융계에 따르면 금감원의 경고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첫 번째는 가계와 자영업자 등 소호대출의 부실, 두 번째는 이로 인한 고정이하여신비율 급상승 등이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에 경고성 메시지를 던지는 것과 동시에 대책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금감원이 가장 우려를 보낸 문제는 고정이하여신비율의 악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었다고 알려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국민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5%포인트 상승했다. 시중은행이 평균 0.9% 상승한 것에 그친 것에 비하면 국민은행의 대출 기준과 심사가 우려할만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이 더 이상 국민은행의 대출 영업 방식에 손을 놓고 있기 어렵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금감원은 국민은행 관계자를 불러들이는데 숙고를 거듭했다고 전해졌다. 그 이유는 배경과 방법을 떠나 관치금융 논란을 재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 가뜩이나 최근 국민은행과 김정태 행장의 거취 문제를 놓고 갖가지 소문이 난무하고 있어 금감원을 더욱 고민하게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2001년 옛 주택은행과 합병한 이후 국내 최대 우량 은행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국민은행은 올해 들어 유난히 힘에 부치고 있다. 올초 김정태 행장의 거취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대두됐는가 하면 스톡옵션 행사 시기를 놓고 뒤늦게 금감원의 징계 조치를 받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SK증권 감자 소식을 사전에 알고 주식을 처분했다며 불공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졌다.국민은행의 거듭된 악재에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은행은 국내 최대 거대은행이기 때문에 국민은행의 일거수일투족은 금융계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며 “그만큼 재무건전성과 도덕성 측면에서 요구받는 수준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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