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온 ‘신’ 대하듯 찬양 강요해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이른 바 ‘총수 숭배’ 라고 불리는 신종 갑(甲) 질 행태와 관련한 피해자 고발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총수 숭배형’ 갑질이란 사용자가 근로자와 단순 계약 관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마치  전제군주 시대 ‘상전’ 을 모실 때 할 법한 행동들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갑질 논란은 총수일가의 성범죄, 폭력과 폭언 등 각종 일탈 행위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그에 따른 자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갑질의 방법이나 형태가 갈수록 다양해지는 모습을 나타내어 사회적 우려를 쌓고 있다.

여전히 존재하는 구시대적 기업 문화
여직원 갑질, 찬양 노래, 과잉 의전 등


몇 년 전, 중국 베이징(北京) 퉁저우(通州)에 소재한 모 주류 제조기기 제조사 사장이 매일 아침 여직원들을 일렬로 세우고 돌아가면서 입맞춤을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특히 입맞춤 의식은 해당 업체의 사규에도 명시돼 있어 국내 독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또 실제로 해당 회사에 입사한 뒤 규정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년 동안 상당수의 여직원이 강제 퇴사 조처됐다는 주장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치부됐으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우리나라의 현실도 그에 못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

우리나라 총수 숭배 갑질 사례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 점이 나타난다. 남성 총수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여직원, 용비어천가를 연상시키는 회장 또는 사장님 찬양 노래,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의 과잉 의전 등이다.

왜 여직원들이 의전?

여직원을 동원해 총수를 모시는 경우 “엄연한 직무를 가지고 있는 근로자를 북한의 기쁨조 취급했다”거나 “시대착오적 발상이자 엄연한 성범죄의 일부”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례로 한 재벌 총수는 외모가 뛰어난 여직원들이 전담해서 배웅을 해줬다는 논란이 인 바 있다. 총수가 양 팔을 벌리면 달려가 안겨야 했다거나, 손수 만든 선물과 편지 등을 준비해야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또 다른 기업에서는 총수와 여직원들의 만남 때 여직원들은 복장을 빨간색 망토로 통일시키거나 한복, 드레스 등을 입어야 했다. 해당 문제가 제기되면 업체들은 한결같이 “오해다. 사실무근이다” 또는 “자발적 행동이었다”고 항변한다.

두 번째 총수 숭배 갑질은 총수에 대한 마음을 담은 찬양 노래의 존재다. 그러나 해당 직원들이 총수를 ‘존경해서’ 만든 노래인지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갑질의 일환인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한 업체의 찬양 노래 가사는 “우리와 행복해하는 OO님을 보면 내 맘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껴! 힘들었던 기억 다 사라지고 설레는 내 마음…가득 찬 사랑을 전해주고 싶어 항상 그대 곁에, OO님 항상 그대 곁에”로 이어진다.

또 다른 업체의 노래 가사는 “OO님을 뵙는 날, 자꾸만 떨리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다. 새빨간 장미만큼 사랑한다. 가슴이 터질 듯한 마음 아는지” 등이 포함됐다. “행복한 직장과 가정을 주신 회장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가사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이를 전해들은 한 30대 직장인은 “진짜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이 스스로 주인이라 생각하는 것인가”라면서 “나도 여자인데 사장을 왜 사랑해야 하냐, 그런 말이 직원한테 듣고 싶은 것이라면 정신병을 의심해야 한다”고 분개했다.

대놓고 총수나 주요 경영진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 공연에 야한 옷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는 장기자랑을 해야 했던 직원들의 고통도 전해진다. 총수의 생일 때마다 여직원들이 1박 2일 준비한 공연을 한다는 제보도 들어왔다.

아울러 구시대적 의전 문화도 갑질 논란에 불을 붙이는 대목 중 한 가지다. 일반적인 사례로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늦거나 전화를 한 번이라도 받지 못하면 폭언과 폭행이 난무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일부 경영진은 “전화가 세 번 울리기 전에 받아라”거나 “임원이 스스로 누군지 먼저 밝히지 않더라도 전화를 받자마자 알아채야 한다”는 주문을 한다. 존경과 의전을 넘어 독심술과 투시까지 요구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황제 행차 논란도

일부 총수들의 과잉 의전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빠지지 않는 한 가지는 황제 행차다. 임금이 행차한 것 같은 의전 준비 때문에 주변의 시선이 찌푸려지는 일도 허다하다.

‘OO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초대형 현수막을 걸고, 사원들이 업무를 하다 말고 일렬로 줄을 맞춰 박수를 쳐 줘야 할 때도 있다. 한 기업은 사장이 사장실을 나설 때마다 전 직원에 “사장님 사무실 방문 시 전원 기립”이라는 알림을 돌리기 바쁘다.

이 외에도 ▲ 집기 교체는 총수가 부재중일 때 해야 한다 ▲ 총수가 사업장을 찾을 때 직원들이 돌아다니지 않도록 한다 ▲ 총수 전용 무정차 엘리베이터 사용 ▲ 총수 의전 행사 미참여 시 부당 징계 등도 대표적 과잉 의전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나도 의전 업무가 배정될 때마다 긴장이 된다”면서 “우리 경영진이 구시대적 과잉 의전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상당한 부담이 존재한다. 과도한 의전을 요구하는 총수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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