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내용이 달라져야 한다”, “지도부가 모든 걸 다 내려놓아야 한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밝힌 한국당과의 통합 조건이다. ‘보수 대통합론’은 지방선거 이전부터 거론됐다. 이대로라면 보수가 ‘궤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였다. 하지만 홍준표-유승민, 보수 대통합의 키를 쥐고 있던 두 사람 사이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결국 두 보수 정당은 각자도생을 택했고 ‘공멸’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선이 끝난 후 한 달 보름여가 지난 지금 ‘보수 대통합’ 논의가 다시 거론되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당 김병준 신임 비대위원장이 보수 대통합의 신호탄을 다시 쏘아 올린 것이다. 홍준표 체제는 침몰했고 비대위가 메스를 잡았다. 한국당 혁신 비대위의 ‘중도 지향 개혁’은 유승민 전 대표와 상당 부분 결을 같이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유 전 대표의 통합 조건 두 가지에 모두 들어맞는 부분이다. 다만 일각에선 비대위의 태생적 한계와 김 위원장의 정체성을 지적하며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 ‘원조 친노’가 보수 대통합?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까지 잃는다”
- 한국당-바른미래, 새 지도부 꾸리기 전 통합 논의는 ‘헛수고’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 비상대책위원장이 바른미래당 일부 인사들을 만나 보수통합을 언급한 게 알려지면서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던 야권 발 정계개편론이 다시 부상할 조짐이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내정 하루 전인 지난 15일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주최한 공부 모임에 참석했다. 모임에는 김상민 전 의원, 이준석 전 노원병 당협위원장 등 바른미래당 인사들을 비롯해 20명 안팎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구체적인 면면을 밝힐 수는 없지만 현 정국에 문제의식을 가진 젊은 중도·보수 인사들이 모인 자리”라고 밝혔다.
 
‘공멸’ 위기 보수 야당...
‘비대위’ 간 통합 논의 ‘활발’
 

특히 이 자리에선 김 위원장이 한국당행(行)을 택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토론과 정계개편 전망에 대한 김 위원장의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먼저 정립한 뒤 “그 깃발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여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보수 대통합을 시사했다는 분석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보수 대통합’은 지방선거 참패 이전부터 흘러나왔다. 대체적으로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출신 간 화학적 결합이 어려운 바른미래당이 분열하면서 정계개편을 촉발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지방선거 참패 여파로 양 정당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정계개편 얘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했다.
 
특히 바른미래당 내 국민의당 출신들의 거부감이 강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당과 연대 또는 통합한다는 것은 말하기 좋아하는 분들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한국당 비대위원장 내정 이전부터 유력한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어 온 김 위원장이 내정 하루 전날 바른미래당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계개편을 언급한 게 뒤늦게 알려지면서 그의 이런 행보가 향후 전개될 보수 통합의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다시 나오고 있다.
 
보수 야당이 처한 현 상황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이미 바른미래당은 한국당 못지않은 내홍을 겪고 있다. 지선 참패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지만, 국민의당 출신과 바른정당 출신 간 의견 차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이 혁신에 성공한다면 ‘영·호남 통합’이라는 정치 실험의 희생양이 된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로서는 ‘복당의 유혹’을 이겨내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한국당 모 중진 의원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유 전 대표와 이혜훈·지상욱 의원 등은 (호남계가 주류로 등장하는) 현 상태의 바른미래당에 더 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그럼 어디로 가겠나”라고 반문했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도 “지방선거를 거치며 제3정당의 정치 실험은 실패로 드러난 상황”이라며 “언제가 됐든지 당은 쪼개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이 ‘혁신안’으로 내걸고 있는 국가주의 극복과 공동체의 자율 등이 유승민 전 대표와 방향성에서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점도 보수 대 통합을 앞당길 수 있는 요소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고공 행진과 반대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답보(踏步)에 빠진 상황에서, ‘원조 친노’ 인사인 김 위원장의 ‘중도 지향 개혁’이 양당 통합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바른미래당의 정책을 뜯어보면 이는 한국당에 가깝다. 바른미래당은 지난달 19일 워크숍에서 최저임금 인상·52시간 근로시간 단축·탈원전 문제 등의 주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급격한 인상 반대, 근로시간 단축에는 탄력적 근로제 확대를 주장했다. 탈원전 정책을 두고는 현 정부의 에너지 전환이 너무 급하다며 비판했다.
 
‘공천권’ 없는 비대위...
‘계파 청산’ 한계 지적

 
결국 ‘보수 대통합’의 열쇠는 김병준호가 쥐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정치권은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을 반비례 관계로 분석한다. 한국당의 지지율이 상승할 경우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은 필연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만약 김 위원장이 한국당을 중도 보수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고 나면, 이 같은 현상은 심화될 것이 자명하다. 그렇게 되면 바른미래당은 자연히 붕괴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새 지도부가 선출이 되어야만 정계개편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020년 총선 공천권이 없는 비대위가 ‘혁신’의 전제조건인 ‘계파 청산’을 이뤄 내기엔 무리라는 이유에서다.
 
한국당 내부는 현재 김병준 비대위원장 선출로 계파 갈등이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계파 청산 ‘메스’를 꺼내 드는 시절에 친박계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친박계는 비대위는 결국 김성태 원내대표 등 복당파의 ‘칼’에 불과하다며 ‘차도살인’ 의혹을 내비치고 있다. 친박계 입장에선 비대위에 2020년 공천권이 없는 점도 ‘결사항쟁’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말 그대로 비대위다. 한쪽 계파가 당을 장악한 상황이 아니다. 거기에 공천권도 없지 않나”라며 “비대위의 한계는 분명하다. 거기에 김병준 의원장이 친노 인사인 점은 물론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독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진단했다.
 
설상가상으로 기존의 한국당 지지층 내부에선 ‘원조 친노’ 인사인 김 위원장이 ‘보수 정당’의 수술 집도의라는 사실에 근본적인 의구심을 제기하는 모양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성형외과 의사가 신경외과 수술을 하는 것과 뭐가 다르나”라며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까지 잃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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