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나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블록체인(Block Chain‧공공 거래 장부)을 실생활에 도입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한 모양새다. 지난 6월 지자체장 선거에 지역화폐를 암호화폐로 도입하겠다는 공약이 등장한 데 이어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미 실행 준비 단계에 돌입했다.

여러 장점 있으나 ‘왜’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는 지자체들

지자체에서 블록체인을 도입하면 각종 수당 및 보조금 지급, 결제의 투명성 확보, 거래 시 수수료 인하 등 여러 장점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왜 만들어야 하는 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직 치열하지 않다. 또 실제로 만들었을 때의 효용성, 보안 문제, 민간시장의 영역 잠식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는 상황이다.
 
너도 나도 ‘암호화폐’
 
블록체인 업계에 따르면 서울‧부산‧제주 등 지자체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를 암호화폐로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정부가 ICO(암호화폐 공개)를 원칙적으로 제한하면서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에서 암호화폐를 언급하는 것조차 꺼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암호화폐를 도입하겠다고 공식화한 곳은 다름 아닌 지자체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올해 3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암호화폐 ‘S코인’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지난 6월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서울시정에 블록체인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아이디어 단계에 머물렀던 ‘S코인’ 도입을 공약으로 본격화했다.

부산, 제주 등도 선거 기간 스위스의 크립토밸리를 모방한 블록체인 특구를 조성하겠다고 선언하며 암호화폐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가칭 ‘B코인’을,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코인’을 지역화폐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다.

이와 비슷한 기초자치단체장의 공약까지 더하면 지난 6월 선거는 그동안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던 암호화폐가 ‘백조’로 거듭나던 순간이나 다름없다.

지역화폐는 지역 내에서만 활용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발행된다.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는 재정자립도가 낮아 지역경제 활성화는 항상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블록체인 기술은 지역화폐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결제 수단 기능에 투명성을 높일 수 있어 지역화폐와 융합이 주목받고 있다. 블록체인은 장부 추적이 용이해 각종 수당을 지급받은 사람들의 사용 내역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청년수당과 같이 특정 목적에만 사용할 수 있는 복지정책에 안성맞춤인 셈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지역화폐가 결제 수단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면,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각종 수당에 암호화폐를 도입해 활용 폭을 더 넓혀 나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NW’ 성공 사례 주목?
 
지자체가 암호화폐를 도입하겠다고 연이어 선언하고 나선 배경에는 노원구의 암호화폐 도입이 지역사회에 안착한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원구는 지난 2월부터 기존의 지폐나 상품권 형태로 발행돼 사용되던 지역화폐를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 암호화폐 ‘노원(NW)’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NW는 개인과 단체가 노원구 내에서 자원봉사, 기부, 자원순환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면 현금과 같은 형태로 지급한다. 예를 들어, 한 시간 봉사활동을 하면 700NW를 받으며, 기부액의 10%를 적립해 준다.

NW는 비트코인처럼 참여 형태가 개방된 ‘퍼블릭 블록체인’이 아닌 네트워크에 인증된 사람만 참가할 수 있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시스템이 구성됐다.

이를 통해 결제수단으로 안정성을 높였다. 최근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급락을 거듭하면서 화폐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으나 NW는 노원구청의 보증을 통해 실물화폐와 1대 1 태환을 할 수 있다. 1 NW은 1원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다.

노원구 주민들의 이용도 크게 늘었다.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2월 1526명이던 지역화폐 회원이 지난 10일 기준 5403명으로 증가했다. 2월 3000만 NW이던 지역화폐 발행액도 6500만 NW로 두 배 이상 올랐다. 그러나 아직 NW만으로 구매는 불가능하다. 사용기준율이 10%라면 1000원 결제 시, 100 NW을 사용하고 900원은 현금을 내야 한다. 향후 NW 유통이 확대되면 사용기준율이 더 커질 전망이다.

서울시는 암호화폐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지자체다. 서울시는 최근 NW 시스템을 구축한 글로스퍼와 접촉해 ‘S코인’ 발생을 위한 실무 준비에 착수했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서울시는 글로스퍼(국내 블록체인 업체)와 만나 NW 시스템 구축에 대한 사례를 자세히 듣기 위해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스퍼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서울시와 필요한 부분을 검토 중”이라며 “협력체와 지자체 등 지역화폐 도입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으나 자세한 상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업계는 인구가 많은 서울시 등 광역자치단체급은 글로스퍼만으로는 시스템 구축이 어렵다고 평가하고 있다. 블록체인 사업을 추진하는 IT기업과 공동으로 진행하거나 여러 블록체인 업체들이 모여 컨소시엄을 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노원구의 경우 참여자가 많지 않아 스타트업인 글로스퍼가 감당할 수 있었지만, 서울시가 암호화폐를 도입하면 대형 사업이 될 것”이라며 “최근 블록체인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대기업 등과 연계하거나 여러 블록체인 업체들과 힘을 합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글로스퍼 측도 지역화폐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관련 업체와 협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스타트업에 비해 덩치가 상대적으로 큰 IT기업들은 지역화폐 도입 사업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 스캠(사기) 논란을 극복하지 못한 암호화폐와 연결되는 것을 꺼리는 모양새다.

한편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우후죽순처럼 암호화폐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지자체가 유행처럼 암호화폐 도입을 공언하고 있다”며 “공무원들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금을 지급하는 수당에서도 공무원들의 부정 지급 문제가 발생하고는 한다”며 “암호화폐를 수당으로 지급하더라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암호화폐를 도입하더라도 운영하는 공무원들의 기술적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관련 교육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며 “왜 암호화폐를 도입하려고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지역화폐 도입에 활용된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보안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증된 참여자만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해킹에 강하다고 알려졌지만, 외부의 시스템 공격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스퍼 관계자는 “NW의 경우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보안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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