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보수 함께 못 한다”던 ‘비박계’ 두 축 결국 붕괴하나

<뉴시스>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유승민·김무성 의원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비박(非朴)계의 두 축으로서 ‘새 보수’를 공언하더니 부정 인사 청탁 논란에 휩싸인 것. 더욱이 유·김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보수 분열 조장’ 비난에도 “부패한 보수와 함께할 수 없다”며 탈당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등을 돌린 박근혜 전 정권에 대해 청탁한 정황이 드러났다. 여론은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전형이라며 두 의원에 대한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는 유·김 의원이 배지까지 내놓아야 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 관측이다.
 
유 의원 10여 회 “도와 달라”… ‘부탁’한 조모씨 결국 감투 써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지난 26일 오후 안 전 수석의 비공개 휴대폰 문자와 녹취파일을 공개했다. 2016년 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안 전 수석은 1심에서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방송에 따르면 해당 문자와 녹취파일에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의원과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의원 등이 안 전 수석에게 인사를 부탁한 정황이 담겼다. 지연·학연이 있는 인사를 추천하는 내용이다. 유 의원과 안 전 수석은 같은 대구 출신이자, 위스콘신 대학원 동문으로 가까운 사이다.
 
뭐라고 문자 보냈기에

 
유 의원은 안 전 수석에게 문자를 보내 “조OO XX증권 사장을 그만두는 분이 있다. 경북고 1년 선배인데 금융 쪽에 씨가 말라가는 TK다. 대우증권 사장 및 서울보증보험 사장에 관심 있다. 괜찮은 사람이다. 도와주길. 서울보증보험 자리는 내정된 사람이 있나”라고 보냈다. 같은 해 8월 보낸 문자에서도 “지난번 부탁드린 조OO 사장, 대우증권 사장 공모 때 신경써주시길” “제가 말했던 조모씨는 안 되나요?”라고 거듭 요청했다.
 
조모씨에 대한 청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같은 해 9월 30일 유 의원은 “안 수석, 요즘 민원이 많네. 한국벤처투자주식회사 사장 공모에 지난번 대우증권 때 말씀드렸던 조OO가 최종 3배수에 1순위로 올라가있다는데… 한번 챙겨봐주소”라고 했다. 이에 안 전 수석은 “잘 챙기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결국 조 씨는 한국벤처투자주식회사 사장이 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유 의원은 같은 해 10월 28일 안 전 수석에게 “조OO는 고마워요. 가스안전공사는 산자부가 1순위로 올리고 제가 추천했던 분이 안됐네요”라고 했다.
 
또 다른 문자에서도 유 의원은 “지난 번 박OO 민원 또 오네요. KAMCO 등 공공기관 비상임이사라도 부탁한다고.. 한번 챙겨봐주소”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유 의원은 안 전 수석에게 가스안전공사 사장, 인천공항공사 사장, 금융연구원장 등 11차례에 달하는 인사 청탁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프로그램은 전했다.
 
유 의원은 안봉근 전 비서관에게도 인사 청탁을 한 정황이 포착됐다. 유 의원은 같은 해 10월 1일 “잘 챙기고 있습니다”라는 안 전 수석의 문자에 “봉근이한테도 챙겨보라 했어요”라고 답했고, 이에 안 전 수석은 “예, 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김무성 의원의 경우, 2015년 새누리당 대표를 맡던 당시 누군가를 추천하면서 “이 사람이 세계 최초로 LNG 엔진을 개발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내용이 공개됐다.
 
이 밖에도 이 방송은 안 전 수석에게 홍문종·이철우·나성린·김종훈·박대출·조원진 의원 등이 특정 인물을 챙겨 달라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다고 전했다. 이들은 제작진에 “청탁 사실에 대해 기억이 없다”며 전면 부인했다.
 
이에 대해 정두언 전 의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며 “보통 청탁할 때 도와 달라고 하지 무슨 말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구체적 정황에도 2년 전과 똑같은 해명
 
유 의원은 방송 다음 날인 지난 27일 보도 자료를 통해 해명했다. 방송 전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측의 반론 요청을 묵살했다고 알려진 것과 판이한 태도다.
 
유 의원은 이날 “당시 제 의도는 청와대가 미리 내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정된 인사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탁으로 비친 점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유 의원은 “제가 안 전 수석에게 인사와 관련해 문자로 문의하고 사람을 추천했던 적이 있고, 이 문제는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똑같은 내용이 보도됐고 소명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해명에도 의혹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유 전 공동대표의 해명대로 해당 인사 청탁 의혹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
 
앞서 지난 19대 대선 당시에도 유 전 공동대표가 안 전 수석에게 10명 이상의 인사에 대한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유 의원은 그때도 “내정자가 있는지 물어봤을 뿐, 안 전 수석에게 답도 제대로 못 들었다. 실제 인사가 성사된 사례도 없다”며 청탁이 아니라는 취지로 부인한 바 있다. 그렇게 일단락 됐던 의혹이 이번 방송을 통해 구체적 증거가 제시된 것이다.
 
김무성 의원 측은 현재(7월 27일)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본지는 수차례 김 의원과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지연·학연 뿌리 뽑는다더니 “朴 팔아 이미지 세탁”
 
여기에 유·김 의원이 구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분당을 주도한 인물이라는 점은 여론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당내에도 찬반 의견이 분분했다. 보수 정당의 혈통을 지켜야 한다는 친박계와 국정농단에 맞서 새 보수를 창건해야 한다는 비박계가 팽팽히 맞섰다.
 
이때 비박계의 두 축이었던 유·김 의원은 후자였다. 김무성 의원은 2014년 새누리당 대표 역임 당시 개헌론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가 청와대와 틀어졌고, 유승민은 공개석상에서 여러 차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을 수위 높게 비판해 등을 돌린 바 있다.
 
결국 유·김 의원은 새누리당을 떠나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두 의원 등 탈당파는 창당 선언문에서 “새누리당을 허문 자리에 따뜻한 공동체를 실현할 진정한 보수 정당의 새로운 집을 짓겠다”며 “혈연, 지연, 학연에 좌우되는 정실자본주의를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후에도 유·김 의원은 박 전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를 비판하며 보수 정당 분열을 조장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후에 김무성 의원이 복당했지만 기류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한 두 의원이 전 정권에 인사 청탁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지난 27일 자신의 트위터에 “유승민·김무성 인사 청탁 의혹 일파만파, 앞에선 깨끗한 척 뒤에선 구린X 꼴이고 박근혜 팔아 이미지 세탁하다 들킨X 꼴”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 뒤에 숨어서 방귀 뀌고 성낸X 꼴이고 국회의원 탄핵 대상X 꼴이다. 국회의원 사퇴하고 정계은퇴 선언하라. 김병준 비대위가 일순간에 비데위로 전락하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여론은 앞에서는 청렴결백한 척, 뒤에서는 부패를 저지르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전형이라며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드러난 게 이정도면 정치권 인사 청탁이 비일비재할 것이 자명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학연·지연에 기반한 인사 청탁이란 사실이 여론의 분노를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누리꾼들은 유 의원 SNS에 “깨끗하고 합리적인 보수라고? XXX아. 한 짓이 다 드러났다. 박근혜 XXX. 조용히 잘 가거라” “깨끗한 보수인 척하더니 꽁꽁 숨겼던 실체가 드러났다” “나도 경북고 나왔으면 좋겠다” 등 비판의 댓글을 남겼다.
 
보수 기반 TK 공략?
 
다만 유 의원 측에서는 이 같은 의혹 제기가 정부 여당의 ‘보수 궤멸 작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TK 출신인 유·김 의원에 대한 ‘흠집 내기’를 통해 지역 지지층 분열을 조장, 보수의 최후의 보루인 TK 지역마저 무너뜨리겠다는 심산이라는 것.
 
권성주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지난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 이름대로 새까만 의도를 드러낸다”면서 “이 정권과 관련 인사들의 ‘보수 궤멸’ 위한 독기가 사고 한 번 칠 것 같다”고 반발했다.
 
이어 권 대변인은 “이미 해명했고 문제가 있으면 수사하라고 했던 일을 다시 꺼내든다”며 “능력 있고 괜찮은 주변 인물을 추천하고 살펴봐 달라 한 것을 적폐몰이한다면, 진행자 친구의 성추행을 덮기 위해 공중파를 대놓고 활용하고 왜곡시키려 했던 것은 적폐 지망생 파렴치범 수준”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편파 진행’으로 8초(8월 초) 폐지되는 방송이 반성은커녕 양심 없는 못된 독기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한국당 내 친박계를 이번 의혹의 출처로 지목하기도 한다. 복당파가 징검다리 비대위 이후 새로운 당대표로 김무성 의원을 염두에 두고 있고, 이를 저지하기위해 친박계에서 김 의원과 관련된 의혹들을 흘렸다는 것.
 
이 같은 주장에 전혀 개연성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친박-복당파 간 뇌관은 지선 참패 이후 폭발했다. 지선 참패 후 불거진 한국당 내홍의 본질은 ‘지선 책임론’이 아니었다. 계파 간 정치적 생명을 건 싸움이었다. 승리하는 쪽이 불과 2년도 남지 않은 2020년 총선의 공천권을 거머쥘 수 있기 때문. 최근 친박계가 분당까지 불사하겠다며 결사 항쟁했던 이유다.
 
우여곡절 끝에 복당파는 비대위 구성에 성공했다. 다만 친박계 내에서 김병준 비대위를 단순히 ‘혁신’을 위한 특단의 조치로 여기는 이는 없다. 비대위가 결국 현 지도부의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 비대위는 추후 복당파가 주도할 지도부를 위한 ‘징검다리 비대위’ 라는 게 친박계 대다수의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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