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건희

그룹 오너인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런 ‘건강 이상설’로 홍역을 치른 삼성. 이번 일을 계기로 이 회장의 건강과 비상경영시스템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소문 발생일인 지난 12일, 일부 언론사들은 이건희 회장의 건강상태가 심각하다는 전제 하에 이 회장 공백시 그룹 경영권 향배에 대한 기획 취재에 돌입하기도 했다.삼성 입장에서는 너무 앞서간 얘기라며 불쾌해할 수도 있겠지만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의 역할과 위상을 생각할 때 이건희 회장의 건강과 기업지배구조는 간단히 흘려버릴 문제가 아니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0년 초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서 폐암수술을 받았다. 이후 이건희 회장이 보여준 왕성한 활동 등으로 완쾌되는 듯 보였으나 재계에서는 ‘건강 이상설’이 공공연히 나돌았던 게 사실이다. 이번 소동에서도 기자들이 삼성의료원과 함께 국립암센터에 몰린 이유는 폐암 후유증이 발병했다던 소문과 무관하지 않다.

‘만약’ 이건희 회장이 불의의 사고나 갑작스런 건강 이상으로 유고를 당했을 경우, 삼성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경영구도상 이학수 구조본부장이 ‘회장 직무 대행’이 될 공산이 가장 크다. 삼성 내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제외하고 이학수 사장만큼 그룹 전체 사정을 꿰뚫고 있는 인물이 없다. 오히려 세세한 사항들은 실무에 있는 이학수 사장이 더 많이 알고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임시총수로서 이학수 사장이 활약한다 해도 오너십 측면에서 이재용 상무의 존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지배구조에서 이재용 상무가 비상장사 에버랜드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기 때문에 내부 경영권 다툼이나 M&A 위협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불안 국면은 넘긴다 해도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파트너십 문제는 삼성이 풀어야할 최대 현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SK - 최태원

과거 경영권 향방이 위에서 언급한 삼성의 경우와 매우 유사했던 기업이 SK다. SK는 지난 98년 고 최종현 회장이 예상보다 빨리 타계하자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파트너십이 급조된 케이스. 당시 최씨 일가는 집안 회의를 소집해 최태원 회장을 집안 대표 경영인으로 결정하고 전문경영인인 손길승 회장과 오너인 최태원 회장의 파트너십을 그룹 경영의 큰 틀로 채택했다.최태원 회장은 올해 43세로 5대그룹 총수들 중 가장 젊다. 특별히 지병을 앓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역시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SK의 비상 경영시스템은 한마디로 말하면 다소 불안한 편이다. 구조본 체제라는 강력한 지배구도가 없는 데다 손길승 회장의 입지마저 위축됐고 김창근 구조본부장은 SK(주) 경영진의 일원으로 물러난 상태다. 그렇다고 최태원 회장의 동생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이 나서기에는 조직장악력과 충성도를 유발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소버린이 호시탐탐 경영참여 기회를 노리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 부재로 인한 힘의 분산으로 SK는 경영권분쟁 내지 M&A 대상이 될 공산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LG - 구본무

올해로 58세인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건강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과는 불과 3살 차이지만? 구 회장은 지금까지 건강문제가 불거진 적이 없다. 구 회장이 특별히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지는 않으면서도 구자경 명예회장이 버섯농장을 운영하며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구 회장 일가는 건강복을 타고난 것 같다.구본무 회장이 유고에 직면한다 해도 LG는 경영혼란을 겪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지주회사 체제가 주는 안정감이다. 또 강유식 (주)LG 부회장은 다수의 대주주 일가 속에서도 확고한 입지를 다져놓았다. 강 부회장은 그룹 대소사를 맡아 원만히 일을 수행해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 만큼 구회장 부재상황에서도 그룹장악력이 빠를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문제에 있어서는 (주)LG를 대주주 일가가 지배하는 만큼 분쟁의 소지가 거의 없다.

현대차 - 정몽구

선친으로부터 건강을 타고나기로는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도 구본무 회장에 뒤지지 않는다. 현대차에 따르면 정 회장은 6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히 추운 날씨에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는 건강체질이라는 것. 정 회장은 시간이 날 때면 등산을 즐기며 건강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정몽구 회장이 건강한 탓에 후계자인 정의선 부사장의 입지에 대해 현대차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정 부사장의 그룹내 지분이 미미한 상황에서도 현대차는 아직 시간이 많이 있고 그동안 정 부사장이 경영능력을 보여주면 된다는 입장이다.최근 M&A 위협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 지분을 매입한 일은 정 회장의 경영권 지배력이 다소 취약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 지분을 30% 가량 확보할 때까지 지분 매입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정 회장이 갑작스레 부재할 경우 경영공백을 현대차가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다. 가장 기초적인 대처방안은 김동진 부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경영체제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정의선 부사장의 낮은 지분은 차차 늘려 가면 될 것이고 무엇보다 경영능력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아 최고경영자가 되는 수순을 밟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롯데 - 신격호

‘마지막 남은 재계 1세대 경영인’.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수식어다. 신격호 회장은 올해로 82세다. 재벌 오너들 중 최고령자다. 그럼에도 신 회장은 왕성한 정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 달 간격으로 현해탄을 넘나들며 한국·일본 롯데를 진두지휘하는 것을 보면 가히 초인적인 능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아무리 신 회장의 건강이 좋다고는 하나 고령은 아무래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롯데는 후계구도에 있어 지지부진한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찌감치 한국롯데는 신동빈 부회장이 맡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것은 롯데 안팎의 예상일 뿐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신격호 회장의 유고를 가정해봤을 때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 그룹의 최대 실세로 알려진 신동인 호텔롯데 사장이 비상경영체제를 이끌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어 본격적인 후계체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이때 후계구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논의될 수 있다. 먼저 지분구도상 일본롯데가 한국롯데를 지배하는 방안이다.

일본롯데는 롯데알미늄의 최대주주로서 롯데알미늄을 통해 한국롯데를 지배하고 있다. 이 경우 경영권을 놓고 신동빈 부회장과 그의 형인 신동주 일본롯데 전무가 협의 또는 이사회 신임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한국롯데와 일본롯데를 분리하는 방안이 예상된다. 이때도 역시 신동빈·신동주 형제를 비롯해 가족 회의를 거쳐야 가능하다.대기업 총수들은 자신들의 몸 자체가 그룹의 공적 재산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때문에 선천적 내지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질병을 제외하고는 자기 과실로 인해 병을 얻는 경우는 거의 없다.한국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전문경영인보다는 총수 중심의 경영을 우선하는 경향이 짙어 오너가 불의의 사고를 당할 경우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이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것은 결국 기업지배구조와 경영진의 힘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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