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2일 저녁, 각 언론사 편집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건희 회장이 건강 이상으로 삼성의료원에 입원했다는 정보가 속속 입수됐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입수한 정보를 발빠르게 보고했고 편집국은 기자들에게 취재 지시를 내리는 사이클이 그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됐다.각 언론사가 이처럼 발빠르게 움직여야 했던 이유는 이건희 회장의 건강이 단순한 개인 또는 일개 기업인의 그것이 아닌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해프닝’으로 막을 내린 12일 밤의 소동은 그날 저녁 6시경부터 시작됐다.각 언론사와 국정원, 경찰청 정보국, 대기업 정보팀, 증권가 정보맨 등 정보수집을 업(業)으로 하는 조직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이건희 건강 이상설’을 접수했다. 이때부터 숨가쁜 정보전이 시작됐다. 삼성그룹의 공식 언론창구라 할 수 있는 구조본 홍보실에는 당연히 기자들의 확인 전화가 빗발쳤다.

기자들의 전화에 소문의 실체를 접한 홍보실은 즉각 한남동 이건희 회장 자택에 연락을 넣어 소문의 진위를 확인했다. 이날 홍보실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확인 결과 이건희 회장은 한남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꾸로 기자에게 소문의 발생지를 확인하려는 ‘역정보 수집’에 들어가기도 했다.6시경부터 나기 시작한 소문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구체성을 띠어갔다. 심지어 그룹 홍보실에서 해주는 확인은 ‘트릭’에 불과하다는 괴정보까지 입수될 지경이었다.당시 본지가 입수한 정보는 이렇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료원에 입원했는데 강북삼성병원인지 강남삼성병원인지는 확실치 않다’ ‘일설에는 이 회장이 강북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강남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허위 정보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왜냐하면 강북과 강남삼성병원에서 각각 가정부와 이 회장 전담 안마사가 한남동 자택에서 쓰러져 응급차로 실려갔다고 주장하더라. 어쨌든 이건희 회장이 아닐 수도 있다’ 등등.확인은 편집국의 몫이었다.

당시로서는 확인 결과 ‘사실무근’ 또는 ‘확인실패’를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본래 기자는 ‘사실무근’을 확인하면 모를까 ‘확인실패’를 용납할 수 없는 직종의 종사자들이다. 기자의 보고를 받은 데스크는 연이어 취재 지시를 내렸다. 국립암센터로 확인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폐암을 겪은 바 있는 이건희 회장이 암치료에 있어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국립암센터에 입원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에서도 확인은 되지 않았다. 확인된 것이라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이름으로 입원하거나 치료를 받은 사실이 없다는 정도였다.이번 해프닝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건희 회장과는 전혀 무관한 외국인 안마사가 소문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태국 국적의 이 여인은 12일 저녁 강북삼성병원에 맹장염 수술로 입원했다.

소문에 따르면 이 여인은 한남동 이건희 회장 자택에서 안마를 하던 중 복통을 호소해 승용차로 병원에 옮겨졌다는 것이었다.여인의 존재와 맹장염 수술로 인한 입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단지 이 여인은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에 입주한 주식회사 S사 관계자가 국내로 초청한 사람일 뿐이었다. S사가 삼성생명에 입주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누군가가 이 여인을 이건희 회장과 연결 지어 생각한 것으로 추론된다.결국 ‘이건희 회장 건강 이상설’은 13일 이건희 회장이 직접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날 이후로도 이건희 회장이 국립암센터에서 일본 암센터로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언론이 눈치를 채자 불편한 몸을 이끌고 황급히 귀국했다는 소문이 또 한차례 난무하기도 했다.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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