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분기동안 업계 최대 흑자 올려 능력 인정 받던터라 의외김승연회장의 외형확장 노선에 내실경영으로 맞서다 낙마 후문‘제 아무리 경영능력이 탁월한 전문경영인이라도 오너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면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없다.’ 상반기(4∼9월)동안 5,800억원의 순익을 올리는 등 업계 최대의 흑자를 올린 대한생명 고영선 전사장이 취임 1년여만에 전격 경질된 데 대한 재계의 ‘쓴소리’다. 한화그룹은 “고 전사장의 사퇴는 기존 영업조직과 갈등을 빚는 등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고 전사장과 김승연 회장과의 불화설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번에 경질된 고영선 대한생명 전사장은 지난 71년 한국신탁은행에 입사해 금융권에 첫발을 내디딘 뒤 신한은행 전무를 거쳐 지난해 12월까지 신한생명 부회장을 지냈다. 고 전사장은 보험업계에선 전형적인 보험통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 고영선 전사장은 조직슬림 등 군살없는 내실경영을 해온 전문경영인으로도 유명하다. 고 전사장이 대표이사를 지낸 신한생명이 24개 보험회사 중 작지만 내실 있는 보험회사로 아직까지 평가받고 있는 것도 고영선 전사장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한화그룹으로 넘어간 대한생명 초대 사장으로 고 전사장이 낙점된 것도 그의 경영스타일을 높이 샀기 때문. 그러나 고 전사장의 경영스타일은 그를 낙마시킨 부메랑이 됐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외형 확장을 주장하는 김승연 회장과의 경영노선에 따른 갈등이 고 전사장 낙마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김승연 회장과 고영선 전 사장의 갈등은 개인영업부문의 시각 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승연 회장은 업계 2위를 굳히기 위해 전체 매출의 70∼80%를 차지하는 개인영업 강화를 고 전사장에게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 전사장은 김회장의 요구를 뿌리쳤다는 후문이다. 고 전사장은 개인영업의 매출 비중이 높아 당장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향후 비용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말렸다는 것. 이는 감원대상인 보험설계사 수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비용부담과 저축성 상품 판매에 따른 역마진이 향후 경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고 전사장의 만류에도 김승연 회장은 외형 확대를 고집해왔다는 게 보험업계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중순 경 대표이사 물망에 오른 신은철 전 삼성생명 개인영업부문 사장을 경영고문으로 영입, 곧바로 개인영업부문을 맡겼다는 것. 고 전사장을 거치지 않고 김회장 본인이 신은철 고문을 통해 직접 경영에 나섰다는 말까지 보험업계에 나돌고 있다. 이런 갈등 때문인지, 고 전사장의 진퇴문제는 그동안 재계에 줄기차게 나돌았던 사안이다.고 전사장의 퇴진은 11월에 들어서 더욱 가시화됐다. 지난 11월 10일 대한생명의 중국 주재소 개소식을 위해 출국할 때 김승연 회장은 신은철 고문과 함께 중국으로 나갔다는 것. 정작 당사자인 고영선 사장은 후발대로 출국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고영선 전 사장의 퇴진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대한생명과 한화 관계자는 “이질적인 기업 환경에서 근무하다 보니 매끄럽지 못한 면이 있었던 것이지 회장과의 불화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반면 15일 대한생명 임시 주총을 통해 대표이사에 오른 신은철 고문은 대한생명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업계에서 가장 능력 있는 개인영업 전문가로 통한다. 게다가 삼성생명이라는 재벌계 출신이다. 한화그룹이 지배하는 대한생명과 정서적으로도 통하는 측면에서 2기 대한생명 대표이사로 적임자라는 평이다. 신은철 신임사장은 지난 2002년 초대 대한생명 사장 후보로 고영선 전사장과 함께 물망에 오르기도 했었다. 다만 지난 2001년 삼성생명 개인영업 사장으로 재직할 때 ‘요실금’ 상품을 잘못 기획한 책임을 지고 고문으로 물러난 오점을 안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신은철 고문을 삼성그룹의 고위층으로부터 추천받아 사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그동안 공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 고 전사장의 사퇴 책임을 김승연 회장에게만 지울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는 변화된 경영환경에 따른 오너와 전문경영인 간의 시각 차인 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김승연 회장의 경우 석유화학 등 중후장대형 사업을 경영해온 탓에 외형 위주의 경영철학을 지녔다. 반면 고영선 전사장의 경우 보수적 경영을 해야 하는 보험 전문경영인이다. 그러다 보니 내실과 외형이라는 경영의 양극 성향을 지닌 두 사람이 양립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초대 사장으로 고영선 전사장의 역할이 끝났다는 관점도 경질의 배경이 되고 있다. 주인 없는 기업이라 인수 초기 빈껍데기 아니냐는 우려가 말끔히 가셨기 때문. 예상외로 대한생명의 경영조직은 탄탄했던 것. 대한생명은 올해 3/4분기 업계 최대의 흑자를 올렸다.

이런 신호는 김승연 회장 입장에서 고영선 전사장의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할 수도 있었다는 것. 이 시점에서 김승연 회장은 회사를 키울 공격수가 필요했고, 거기에 비해 고 전사장은 약했으며, 그 적임자로 개인보험영업 전문가인 신은철 고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화 측은 “대표이사는 경영환경에 따라 그 시기와 역할에 따라 임명되는 것으로 고 전사장의 능력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인수 이후 경영환경의 변화에 걸맞는 적임자가 아니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안다”고 말해 이와 무관치 않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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