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카드의 내년 1조원 증자 계획과 관련한 재계의 색다른 해석이 나와 주목된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의 합병으로 1조원 증자를 계열사로부터 얻어냈다. 이를 통해 경영부진에 빠진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 등의 지원 명분을 찾았다. 두 회사가 삼성에버랜드의 주요 주주라는 점에서 그룹 경영권 방어에 나설 수도 있게 됐다. 즉 합병이라는 형식으로 카드사 지원 명분을 찾고, 그룹 경영권 방어에 나서는 등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었다는 분석이다. 삼성카드는 지난 18일 비용절감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내년 2월 계열사인 삼성캐피탈을 흡수 합병하고, 3월말까지 1조원 규모를 유상 증자키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등 기존 주주 계열사와 함께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이 증자에 참여한다.

두 회사의 합병은 개인대출 등 중복사업에 따르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합병에 따라 현금성 자산 5조원을 확보해 향후 발생할지 모를 만일의 사태를 미연에 예방하게 됐다는 게 삼성카드 측의 설명이다. 삼성카드는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캐피탈의 흡수합병으로 비용구조 혁신 및 사업구조 재편으로 안정적 성장기반 구축이 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즉 유상증자로 기업가치가 높은 회사로 탈바꿈돼 투자할 만하다는 주장이다. 계열사들의 삼성카드 유상 증자 참여가 지원이 아닌 투자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참여 계열사들의 반응은 외부의 시선에 눈치를 보고 있다. 삼성카드의 주주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는 이날 공시를 통해 “긍정적인 검토일 뿐 확정된 것이 없다”며 삼성카드의 증자 계획 발표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는 삼성카드 증자 참여와 관련한 소액 주주와 외국인 주주들의 반발을 우려한 탓이다. 삼성생명도 눈치 보기에 바쁘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증자 참여여부가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며 다만 긍정적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해, 한 발짝 물러났다. 증자 참여 배경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여신전문업체인 삼성카드의 출자가 같은 금융사인 삼성생명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라며 지원이 아닌 투자임을 힘주어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비상장 회사인 삼성카드의 주당 가치 문제나 참여 규모 등이 확정되지 않았으며, 부실 계열사 지원이라는 논란이 우려된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삼성카드의 지분이 없던 삼성생명이 삼성카드 지원에 나섰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생보사 상장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인 시민단체들이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지원을 곱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의 증자 참여가 여론의 향배에 따라 결정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현실화는 미지수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삼성생명의 증자 참여를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기존 주주 계열사와 삼성생명의 증자 참여는 결정됐으며, 다만 시기와 방법 등 미세한 문제에 대한 검토만 남았다”고 전했다. 이쯤 되면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 간 합병을 주도한 삼성그룹도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증자 참여시 불러올 시민단체의 저항을 대강 짐작했을 터. 그럼에도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증자 참여를 결정한 배경은 무엇일까. 카드업계에선 삼성카드의 유동성위기설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LG카드의 차입구조가 단기 채권 위주인 반면, 삼성카드는 장기채권이 주류여서 유동성위기가 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삼성카드의 내년 12월까지 만기 도래 카드채(CP, ABS 포함)는 총 7조6,455억원으로 12월 3,285억원, 1월 7,989억원, 2월 4,500억원, 3월 8,685억원 등 4개월 동안 2조 4,000억원 가량의 카드채 상환을 앞두고 있다. 삼성카드는 유동성 대책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내년 금융권은 예측불허다.

LG카드의 유동성 위기 등 금융권 불안이 잔재돼 있어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 게다가 카드업계는 높은 연체율이 지속돼 적자폭이 날로 커지고 있어 경영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삼성카드가 제2의 LG카드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량 계열사인 삼성생명의 유상 증자 참여는 삼성카드에 대한 시장의 불신을 덜어줄 수 있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각에선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의 흡수합병과 증자 결정이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의 주요 주주사인 두 회사(삼성카드 14%, 삼성캐피탈 11.06%)의 부실화에 따른 적대적 M&A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 상무가 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는 삼성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생명(19%)을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6%를 지배한다. 다시 삼성전자는 삼성그룹의 계열사를 통제하는 형국. 즉 이건희 회장 등 특수관계인들이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삼성그룹의 전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의 주요 주주사로 참여하고 있는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의 부실은 삼성그룹에 위협이 될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 위협이란 유동성 위기와 경영부진 상태에 빠진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의 삼성에버랜드 지분이 제3자 손에 넘어갈 경우를 말한 것이다. 물론 최악의 경우에 이같은 일이 벌어 질 수도 있다.SK사태에서 나타났듯이 그룹 지주회사의 주요 지분이 제3자의 손에 넘어갔을 때 꼼짝없이 그룹의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삼성그룹이 카드업계 부진과 개인연체율 급증으로 경영부진 상태에 빠진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을 한데 묶어 그룹 경영권 관리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삼성카드는 올 3/4분기 적자 규모가 무려 1조331억원에 달하고 있으며, 삼성캐피탈은 844억원으로 적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삼성카드의 적자폭이 날로 커지고 있어 LG카드 사태를 불구경하듯 쳐다만 볼 상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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