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이후 10여 년간 민주당을 유령처럼 떠돌던 친노와 비노란 프레임이 힘을 잃고 새로운 프레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언론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는 친노와 친문의 분화와 대립으로 확전되고 있다. 친노와 친문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을 처음 도입한 언론은 의외로 조선일보가 아니다.
 
이 참신하기 그지없는 프레임은 CBS 계열의 노컷뉴스에서 시작됐다. 이후 태초에 말씀이 있었던 것처럼 이 프레임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친노를 대표하는 이해찬, 친문을 대표하는 김진표, 둘 사이에 끼어 호남대표를 자임하는 송영길이라는 구도는 언론 입장에서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설명하는 가장 섹시한 분석틀이다.
 
언론이 설정한 이런 새로운 구도에서 느닷없이 이재명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현직 경기도지사이고 전당대회에는 출마하지도 않은 이재명이 전당대회 관련 뉴스의 중심에 불려나온 것이다. 전당대회 본선 레이스 초반, 이재명을 소환한 김진표는 이재명이 민주당을 탈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란과 스캔들로 얼룩진 이재명이 당과 대통령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이재명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해찬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표는 이재명의 탈당을 촉구하면서 친문 표심에 구애하고, 이해찬과 차별성을 드러내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김진표가 이재명 논란에 불을 붙이면서 민주당의 8월 전당대회는 이재명으로 시작해서 이재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재명은 현 민주당 정치인 중에 경남지사 김경수와 더불어 가장 인화성이 높은 존재다.
 
이런 이재명이 전당대회 레이스에 등장하면서 당의 미래 비전이나 정책은 묻히고, 세 후보 중 가장 돋보였던 김진표의 ‘경제대표론’마저 휘발해 버렸다. 이재명을 두고 친노와 친문이 갈리고, 주류와 비주류가 나뉘고 있다. 김진표는 나름대로 고심 속에 이재명 카드를 꺼냈겠지만 당내 갈등 수위만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친노, 비노 프레임을 친노, 친문 대립 프레임이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민주당 내부 정치에 이런 식의 분석이 힘을 얻으려면 이해찬과 김진표가 호각의 대결을 벌여야 한다. 여론조사에서 이해찬의 압도적 우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친노, 친문의 대결구도는 유효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세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점이 별로 없다. 어째든 김진표가 의도한 대로 세 후보 사이의 차별성은 이재명에 대한 입장에서 가장 선명하다. 마치 이재명에 당의 명운이 달린 것처럼.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재명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전당대회의 향배를 결정하는 것은 친노, 친문으로 일컬어지는 당 주류 세력이다. 당 주류는 현 상황을 조장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 김진표의 친문 표심 자극 전략으로 인해 여당의 8월 전당대회는 계파 싸움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졌다.
 
전당대회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친문이라는 소리마저 나왔던 민주당이다. 일부 철딱서니 없는 부엉이들의 일탈에도 불구하고 보수 언론들의 친노, 비노 프레임은 힘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예비경선도 별다른 마찰 없이 순조롭게 치러졌다. 이런 상황이 이재명을 전대 레이스에 불러내면서 바뀌고 있다.
 
당내 선거에서 과도한 네거티브는 분열을 부른다. 보수정당 침체의 기저에는 박근혜와 이명박을 중심으로 한 친이, 친박의 갈등과 대립이 있다. 두 계파는 마치 서로 다른 당인 것처럼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서로를 숙청하다시피 했다. 한때 일본 자민당처럼 반영구집권까지 꿈꾸던 보수 정당은 극렬한 당내 갈등 속에서 박근혜라는 기이한 권력자를 추종하다 괴멸의 위기에 몰렸다.
 
지금으로선 민주당이 2015년 말 안철수 분당 이후 누려온 태평성대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선택권은 온전히 당 주류인 친노, 친문 세력에게 있다. 그들에게 태평성대를 이어갈 지혜를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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