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신세 된 한국, 반전 기회 만들 수 있을까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 절차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미국과 북한이 밀당을 하는 사이 우리나라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관망만 하고 있는 모양새다. 문제는 대북제재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대북제재의 물꼬를 터 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미국은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다른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는 미국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개성공단 등 일부 제재 해제를 바라는 눈치다.
 
미국…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와 리스트 요구
북한…“제재는 북남관계 개선에 백해무익” 정부 압박


지난 2일 북한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가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우리 정부가 독자 행보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또 다국적 군사훈련에 참가하는 우리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함께 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판문점선언 이행의 주인은 우리 민족’이라는 제목의 정세론 해설에서 “판문점선언 이행에서 민족자주의 립장을 고수해 나가는 것은 우리 민족이 조국통일 문제의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라고 밝혔다.

신문은 “지금 미국은 싱가포르 조미(북미)공동성명과는 배치되게 일방적인 비핵화요구와 ‘최대의 제재압박’을 고집하면서 북남관계의 ‘속도조절’까지 운운하고 있다”며 “미국의 이런 부당한 입장과 태도가 조미관계 개선의 장애로 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변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북과 남은 판문점선언 이행의 주인으로서 제 할 바를 다해야 한다”며 “상대방에 대한 ‘제재’는 북남관계 개선에 백해무익하며 조선반도의 정세완화에 배치되는 대결정책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 정치적 잇속이나 체면유지를 위해 급급할 때가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제정신을 가지고 진정으로 북남관계 개선을 위해 나서야 할 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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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실험장‧ICBM 엔진시험장
폐쇄했다지만...

 
북한은 연쇄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대북제재 해제 등 변화의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일련의 흐름은 북한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북한은 ‘선의’에 기반한 선제적 조치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용 엔진을 개발할 수 있는 시험장을 폐기했다.

과거와 달리 말에 그치지 않고 약속을 행동으로 옮겼다. 최근에는 6‧25 참전 미국군의 유해까지 송환을 했다. 북한은 이제 종전선언을 하고 체제보장 논의 단계로 넘어가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강조한 비핵화 시간표와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와 리스트’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북한이 원하는 ‘동시행동’은 지켜질 수 없고 다음 단계로의 진전도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미국 내에서도 아직까지는 강경론이 우세다. 제재 해제 보다는 더 강하게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지난 2일 코리 가드너 공화당 상원의원은 개성공단 재가동은 미국 법과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행위며, 재개할 경우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소위원장인 가드너 의원은 또 한국 정부의 대북제재 유예 추진에 대해 어떤 제재도 완화돼선 안 된다며 최대 압박 정책을 완전히 시행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제재를 위반하는 모든 개인과 기업은 세컨더리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한국의 제재 완화 요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를 검토하고 있지만 (평창)올림픽 기간에 이뤄진 것 외에 다른 제재 유예를 허락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며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피해갈 수 있도록 하는 어떤 종류의 제재 완화도 예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 협력사업을 위한 제재 유예에 대해서도 가드너 의원은 어떤 제재도 완화해선 안 되며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빈틈없이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 내에서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북 비핵화 협상에 대한 회의론이 고조되면서, 상원이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법안 2건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 방송은 상원에 ‘대북 은행업무 제한 법안’과 ‘효과적인 외교촉진을 위한 영향력 법안’이 각각 발의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법안은 이미 지난해 말 각각 은행위원회와 외교위원회에서 심의를 통과한 상태로, 북미 대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던 올해 상반기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싱가포르 회담이 열린 지 두 달이 되도록 비핵화에 진전이 이뤄지지 않자 다시 추진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대북 은행업무 제한 법안’ 발의를 주도한 크리스 밴 홀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싱가포르 회담 직전까지만 해도 회담 진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며 상원이 법안 처리에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추가 대북제재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더 커질 것이라고 VOA에 말했다.

외교위 소속인 코리 가드너 공화당 상원의원은 VOA에 북한이 약속한 비핵화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치 않고 있는 만큼, 자신과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이 발의한 ‘효과적인 외교촉진을 위한 영향력 법안’ 등 새 대북제재 법안 통과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의원은 북한에 대한 완전한 유류 금수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효과적인 외교촉진을 위한 영향력 법안’은 대통령에게 90일마다 대북 원유와 정제유 수출 규모, 달러 환산치, 그리고 운반 수단을 기술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석탄, 석유 화학 등 북한과의 에너지 거래에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다수의 중국 기업들을 제재 리스트에 올려야 하는지에 관한 평가 보고서 제출 요구도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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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제재 해제‧경협 지원
미국 눈치 보는 정부

 
미국의 이런 분위기와 달리 국내에서는 대북제재 해제를 추진하는 정부의 행보가 여러 군데서 포착되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달 25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전화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25일 오전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전화통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 및 최근 남북관계 진행상황과 관련해서 폭넓은 협의를 진행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의 통화는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터 파트너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었던 만큼, 조 장관과의 직접 통화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통화는 조 장관이 이달 초 남북통일농구경대회 참석을 계기로 평양을 방문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 고위급 인사와 접촉한 만큼, 북한의 의중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겠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또 일각에서는 폼페이오 장관이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 해제 의향 등에 대해 속도 조절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별도로 우리 정부는 지난달 20일 제295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개최해 동해지구 남북 군 통신선 복원을 위한 남북협력기금 지원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교추협은 동해지구 남북 군 통신선 복원에 소요되는 경비를 11억 원 범위 내에서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에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군 통신선의 조속한 복구가 남북 간 출입 시 안전하고 원활한 통행과 군사적 긴장 완화 등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남북은 지난달에 판문점선언 후속 장성급군사회담과 통신실무접촉을 열어 동·서해지구 군 통신의 완전한 복구에 합의한 바 있다. 이어 지난 16일부로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완전 복원했다.

통일부는 “판문점선언을 분야별로 이행해 나가며, 남북 간 합의에 의한 사업 추진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관리해 나가겠다”며 “그 과정에서 대북제재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관부처 및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통일부는 3일 이유진 통일부 부대변인의 정례브리핑을 통해 “개성공단 재개 문제는 장기적 차원에서 본다면, 대북제재 해제 이후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로서는 미국이 대북제재를 풀어 주지 않는 한 적극적인 남북교류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 재가동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
다시 한 번 구원투수 등판?

 
남북, 미북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다 보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달 말 평양에서 만나 비핵화 협상과 종전선언 물꼬를 틀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앞당겨 남북 관계 진전에 속도를 내고, 북미 비핵화 협상의 촉진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다음달 셋째 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채택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진전 없이는 종전선언이 어렵다는 입장이며 북한은 미국이 종전선언으로 체제 안전 보장을 먼저 해줘야 한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에 북한이 체제 안전 보장을 위해 종전선언을 추진하자고 중국을 설득 중이며 종전선언 주체가 남·북·미·중 4자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청와대는 “형식적인 면보다는 실제 이행 여부가 중요하다”며 “종전선언 주체가 남·북·미 3자가 될지, 남·북·미·중 4자가 될지는 상황을 봐야 할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문 대통령은 올가을 평양을 방문해 후속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로 김 위원장과 합의했다. 올해 정전협정 65주년을 맞아 연내 종전선언을 할 방침도 밝혔다. 일반적으로 가을은 9~11월로 받아들여지나 이 시기 줄줄이 예정된 굵직한 외교 이벤트를 고려할 때 남북 정상회담을 앞당겨 미리 의견을 교환할 필요성이 있다는 시각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물이 나온다면 한반도 운전자론을 부각하며 올가을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도 삼을 수 있다. 남북 관계 진전도 주요 성과로 관측된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경제협력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지는 막판까지 민감한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현재 청와대는 아무 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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