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구체적 비핵화 조치 없는데…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국방부가 혼돈에 빠진 모양새다.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 계엄령 문건 파문’, ‘기무사 민간사찰 및 대통령 감청 의혹과 문건 입수 경위 논란’, ‘섣부른 국방개혁 2.0 확정’ 등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마 줄기처럼 캐도 캐도 끝이 없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비핵화가 어떻게 될지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 군의 안보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총체적 난국 속으로 들어가 보자.

文, 기무사 개혁 권고안 보고 하루 만에 해편(解編)‧현 사령관 경질
軍, 국방개혁 2.0 최종안 발표···방어무기 줄이고 ‘공세적 작전’ 없다?


지난달 24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터진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현직 기무부대장 간 초유의 진실 공방은 그간 기무사 개혁을 두고 양측 간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으로 남을 만하다.

개혁 대상인 기무사가 개혁 주체이자 상급자인 국방부 장관에게 항명에 가까울 정도로 정면으로 맞선 모습이 국회 공개석상에서 연출된 것은 기무사가 작정하지 않으면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라는 게 중론이다.

강도 높은 기무사 개혁을 추진해 온 송 장관과 조직 보호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기무사 간 힘 대결이 본격화했다. 이후 결국 기무사를 해체하는 수준으로 조직을 재편성하고, 현재 병력의 30%를 감축하는 개혁 권고안이 지난 2일 확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부 산하 자문기구인 기무사 개혁위원회(개혁TF)의 개혁 권고안을 즉각 보고 받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현재의 기무사를 ‘해편(解編)’해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도록 지시했다. 또 이석구(육사41기) 기무사령관을 경질하고 비(非) 육사 출신인 남영신 특수전사령관을 기무사 수장에 앉혔다.

군부가 위수령에 이어 계엄령 선포를 검토하고 있었다는 얘기는 최근에서야 나온 것이 아니다. 지난 2016년 당시 정치권에서도 문제가 제기됐으나 논란이 본격화된 것은 올해 3월 8일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가 수방사의 위수령 검토문건을 공개하면서부터다. 문건이 공개된 이후 국방부는 수방사 이외에 비슷한 문건이 작성된 경우가 있는지 조사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난달 24일 국회 국방위에서 나온 기무사 측 설명을 종합해보면 국방부 조사 지시 직후, 기무사 계엄 검토 문건 작성 작업에 참여한 인사가 해당 사실을 보고했으며 증언을 바탕으로 문건 작성 참여자와 작성 문건을 파악해 기무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석구 기무사령관은 해당 사항의 중대성을 인식해 참모들과 논의를 거친 다음 기무사 작성 문건을 2부 마련한 후 3월 16일 오전 송 장관을 찾았다. 이날 송 장관이 보인 반응이나 면담시간 등의 증언은 엇갈린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사령관이 준비한 문건 2부 중 1부를 장관 책상에 놓고 돌아갔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유한국당 측은 “제보를 받았다”면서 기무사령관이 “2부를 가지고 나갔는데 빈손으로 돌아 왔다”며 나머지 한 부가 나중에 이 문건의 존재를 폭로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나 군인권센터에 건네졌다고 의심했다.
 
김성태 원내대표
“군인권센터는 文 정권 하청업자”

 
8쪽 분량의 기무사 계엄문건인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2017.3)’은 지난달 5일 이 의원과 6일 군인권센터에 의해 차례로 공개됐다. 당시 인도 방문 중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적인 수사단이 조사하도록 10일 지시한다. 이후 청와대는 이 문건을 뒷받침하는 세부계획을 담은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20일 공개했다. 청와대의 공개에 앞서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군 합수부는 수사 개시 첫날인 16일 해당 문건이 담겨 있던 USB 분석을 통해 ‘세부계획’ 문건이 있었음을 인지하고 국방부에 요청해 자료를 확보했다.

지난 3월 16일 기무사 측이 국방부에 넘긴 자료는 8쪽짜리 수행방안과 67쪽짜리 세부계획을 포함한 자료였다. 약 4개월간 해당 문건의 존재는 공개되지 않다가 국회의원과 군 관련 단체가 폭로하자 세상에 나왔다.

이 의원은 문건 유출의 위법성 논란에 빠졌다. 논란은 이 의원만 겪은 것이 아니다. 군인권센터 폭로의 여파는 더욱 거셌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러한 문건을 어떻게 확보한 것이냐는 것이다. 특히 국회의원도 국방부로부터 확보하기 어려운 기무사 문건을 ‘시민단체’가 확보했다는 점이 여론 조성의 일환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상황.

최근 김병민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객원교수는 YTN ‘나이트포커스’에 출연해 “이 의원도 국방부로부터 문건을 받기까지 굉장히 어려운 절차를 거쳤다. 이후 이 의원은 8장짜리 평문의 문건을 여론에 공개했다”면서 “그러나 군인권센터는 이 의원의 8장 문건은 물론, 각색된 문건까지 언론에 알렸다”고 말했다.

그는 “임 소장이 ‘수많은 군 관련 요원들로부터 내부고발을 받았다’, ‘신원을 밝힐 수 없다’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임 소장은 지난 2012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 현 집권당인 민주당 청년 비례대표를 신청한 이력이 있다. (폭로는) 정치적으로도 총제척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이 의원이 공개한 계엄 문건은 물론, 추가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기무사가 탱크 200여 대와 장갑차 550대 등을 동원하려 했다는 주장이 추가적으로 나온 것. 이후 30일에는 베일에 가려졌던 기무사 조직도도 공개했다. 임 소장은 군 기밀도 언론에 공개했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기무사 계엄 문건 작성 의혹을 수사 중인 가운데 기무사가 면회 차 군부대를 방문한 민간인 등 일반인 수백만 명의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는 내용과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당시 국방부 장관 간 통화 내용을 감청했다는 내부 제보도 공개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군인권센터가 ‘정부기관’이 아닌 ‘비정부기관’인 것이다. 이 때문에 비정부기관이 국가 기밀문서를 확보한 것은 야권의 논쟁거리로 부각됐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방 안보의 중요한 축인 군 내부 기밀을 계속 폭로하는 부분에 대해 군사 기밀 문서가 어떻게 군인권센터에 손쉽게 넘어갈 수 있는지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 소장도 맞대응했다.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저는 대통령님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여권과) 무슨 유착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문건 제보도 기무사가 반헌법적 쿠데타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이를 참다못한 기무요원들께서 제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김 원내대표는 신보라 원내대변인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군기문란 진상규명 TF’를 구성하겠다는 입장을 바로 밝혔다. 임 소장이 속한 군인권센터를 통해 군 내부 기밀이 유출되는 경위에 대한 진상 조사를 하겠다는 것.

신 원내대변인은 “군인권센터라는 이름의 시민단체가 이름 그대로 군 인권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다면 모르겠지만, 최근 일련의 군 내부 기밀 유출 사례는 인권과 관계없는 군 구조개혁과 관련한 이슈들”이라며 “때문에 다분히 의도된 정치적 기획과 정치적 유착의 의혹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송 장관이 마리온 헬기 사고 희생자를 조문한 당시를 거론하며 문재인 정부와 임 소장 간 유착 의혹을 또다시 제기했다.

그는 지난달 21일 송 장관이 마리온 헬기 사고 희생자를 조문한 당시 항의하던 유가족에 맞서 임 소장이 장관을 두둔한 영상을 거론하며 현 정부와의 관계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해당 영상을 거론하며 “송 장관의 최측근 의전 참모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지켜봐 달라”며 “군인권센터는 문재인 정권의 하청업자인가, 많은 국민은 국방부에 속한 기관으로 알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분명한 사실은 군인권센터는 NGO, 시민단체로 출범했다”며 “그런데 이제는 송 장관의 의전 부속실인지, 문재인 정권의 군 개혁 메신저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임 소장과 도대체 어떤 밀착관계이기에 국민을 이렇게 혼돈스럽게 하는지 실상을 정확하게 밝혀 달라”고 쏘아붙였다.

임 소장의 해명에도 야권의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임 소장의 해명에는 개연성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병민 교수는 “임 소장은 자신이 폭로한 기밀 문건은 대부분 전현직 기무요원들이 제보했다고 한다. 문제는 전현직 기무요원들이 ‘기무사 전원 물갈이’를 주장하는 임 소장에게 무슨 이유로 문건을 제공하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병력 축소‧복무기간 단축
“섣부른 판단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동안 군 장성 수 76명이 줄어들고, 병 복무기간은 육군 기준 현행 21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되며 병장 봉급은 67만6000원까지 인상될 전망이다. 또 한국군 장성이 연합군 사령관을 맡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전력‧병력구조 개편을 시사했다.

국방부는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국방개혁 2.0’을 보고했다. 16개 대과제와 42개 소과제로 분류된 국방개혁 2.0은 ‘전방위 안보위협 대응’, ‘첨단과학 기술 기반의 정예화’, ‘선진화된 국가에 걸맞은 군대 육성’을 개혁의 3대 목표로 하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 남북관계 진전으로 전력화 축소‧연기 가능성이 제기된 3축체계(킬체인‧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대량응징보복) 전력은 정상적으로 전력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또 군 정찰위성 등 감시‧정찰 전력을 최우선 확보하는 한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를 구축하고, 원거리 정밀타격능력을 강화하는 등 전략적 억제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인 철매-II 개량형(천궁) 미사일의 경우, 전반기와 후반기로 분리해 양산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날아오는 적 미사일을 격추하는 미사일이다. 방위사업추진위는 내년부터 철매-II 개량형 양산에 들어가 7개 포대를 생산하는 방안을 올 2월 확정했었다. 그러나 지난달 송 장관이 재검토를 지시해 합참과 방위사업청이 4개 포대를 우선 생산한 뒤 나머지 물량 생산은 추후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 최종 결정을 위한 방위사업추진위 회의가 남아 있으나 국방부는 양산 물량을 처음 계획보다 40%까지 축소할 분위기다.

이 밖에 송 장관은 지난해 취임 당시부터 국군을 재건설해야 한다며 강력한 국방개혁을 통한 날쌘 군대, 유사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전쟁 패러다임 변화를 강조했다.

1달 이내에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이른바 ‘공세적 작전개념’을 가진 날쌘 군대로의 변화가 국방개혁의 한 모토였으나 이번 국방개혁 2.0 최종안에서는 이 용어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유사시 적 중심 깊숙이 침투해 지휘부의 근거를 타격하는 공정사단 신설과 고위력‧초정밀 미사일로 장사정포와 핵심시설을 타격하는 등의 전력 강화 방안 등도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았다. 국방부는 4월 말까지만 해도 이러한 내용을 담은 국방개혁안 보고를 청와대에 마치고 이를 공식 발표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지난 5월 청와대에서 국방부가 보고한 국방개혁안에 대해 재검토를 지시하고 남북, 미‧북 대화가 이어지면서 최종 보고에서는 공세적 개념이 생략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남북은 제9차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비무장지대(DMZ) 내 GP(감시초소) 시범철수 등에 대해 큰 틀에서 견해 일치를 봤다. 남북은 DMZ 내 감시초소의 장비와 병력을 시범 철수한 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여러 상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국방 계획에서 병력과 복무기간을 단축하더니 이제는 방어 무기마저 줄인다’, ‘북한 비핵화가 어떻게 될지 결정된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국방부가 섣부른 판단을 하고 있다’ 등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의 시도가 지난 수십 년간 여러 차례 있었으나 북측의 일방적 합의 파기로 백지장이 된 사례가 많다. 상호 신뢰 관계가 부족한 상황에서 간과 쓸개를 다 빼주기 보단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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