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그룹 창업주 정인영 전명예회장의 장남 정몽국씨와 차남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 형제간 법정 분쟁의 종착역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검이 정몽원 회장을 사문서위조 혐의로 불구속기소, 다시 한번 이 두 형제의 분쟁이 수면위로 부상했다. 검찰의 이번 기소는 정 회장이 지난 99년 한라그룹 구조조정 당시, 형 몽국씨 소유의 주식을 임의로 처분한 혐의로 고소당한 것에서 비롯됐다. 한라그룹은 한때 재계 10위를 넘보던 대기업이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그룹이 줄줄이 무너지며, 현재는 한라건설만 남은 상황. 때문에 이들 형제간 갈등을 지켜보는 주위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정몽원 회장의 혐의는 1999년 12월 직원을 통해 형 몽국씨 소유의 한라콘크리트 주식 2만 5,740주를 몽국씨 동의 없이 당시 구조조정을 위해 설립된 RH시멘트에 매도한다는 내용의 주식매매계약서를 작성, 행사토록 한 것.함께 기소당한 장모씨는 정몽원 회장의 측근인데, 역시 99년 12월 몽국씨가 소유한 한라시멘트 주식 14만 2,219주를 서모씨에게 매도한다는 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를 받았다. 장씨의 이 같은 주식 처분에 대해 정 회장은 추후에 보고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몽국씨가 그 동안 정 회장과 관련해 제기한 민사소송은 두 건. 지난해 1월 한라시멘트와 서모씨 등을 상대로 자신이 소유한 한라시멘트 주식 71만 719주에 대한 주주지위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몽국씨는 당시 미국에 있는 동안 자신의 한라시멘트 주식이 무단으로 양도됐다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이 건은 올 초 피고소인 측이 몽국씨의 주주지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소취하’ 되었다. 두번째 소송은 지난해 3월 있었다. 동생 정몽원 회장을 직접 겨냥해 제기한 이 소송에서 몽국씨는 “한라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본인 소유의 한화콘크리트 주식 2만5,740주가 편법으로 이전됐다”고 말했다. 몽국씨 주변에서는 “그 동안 정 회장이 그룹구조조정과 한라시멘트 매각과정에서 오히려 부를 축적해왔다”며, “지금까지 아무런 양해와 사과도 없이 형의 주식을 임의로 처분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한라건설 측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분위기다.이번 사건을 접한 전 한라건설 중견간부는 “그룹이 갈라져 건설만 남은 상황에서 형제간의 갈등이 계속 비춰지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이 간부는 또 “조속히 갈등이 해결되길 바란다”며, “정인영 명예회장은 병세 악화로 형제간의 갈등이 이처럼 심한지 알지도 못할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된 갈등의 골

몽국·몽원 두 형제간 갈등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라그룹은 한라중공업과 한라시멘트 등 16개 계열사에 종업원 2만1,525명이 근무하는 재계 서열 12위 그룹. 한라는 고 정주영 회장의 바로 아랫 동생인 정인영 명예회장이 현대양행을 모태로 설립, 만도기계 등을 주력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회사다. 창업주 정인영 회장은 89년,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기도 했으나 다시 경영에 복귀했고, 그 무렵 장남 몽국씨가 그룹 부회장으로 임명되어, 후계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92년에는 차남 정몽원 현회장도 부회장에 발탁돼, 삼부자가 모두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한라중공업 등 주요 사업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형제간 이견이 발생했고, 아버지 정인영 명예회장은 차남 몽원씨의 손을 들어준 것. 94년 정 명예회장이 몽원씨를 공식 후계자로 인정하자, 장남 몽국씨는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이듬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일찍부터 부회장에 발탁돼 후계자의 꿈을 키워왔던 몽국씨로선 아버지의 결정으로 자신의 그룹내 입지가 축소되었던 것.97년 1월 몽원씨가 그룹 회장에 취임해 2세 경영시대를 열자 이들 관계는 더욱 소원해진다. 그 해 불어닥친 외환위기가 한라간그룹을 부도로 몰고 가며, 형제간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룹총수에 오른 몽원씨가 1년도 채 버티지 못하며, 그 해 겨울 한라그룹은 2000%에 달하는 부채를 남기고, ‘부도처리’의 운명에 처한다.

부도 원인은 무리한 사업다각화와 방만한 경영 탓이었다. 이후 한라중공업 지원을 위해 계열사가 연대보증을 섰던 게 화근이 되어, 다른 계열사들도 줄줄이 동반부도에 처해 결국 그룹은 해체되고 오늘의 한라건설만 남게 된 것.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중풍을 앓던 부친 정인영 명예회장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현재는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로 알려진다. 또 지난해에는 정 명예회장의 부인이 사망하는 등 집안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한 상태.몽원씨는 지난해 한라그룹 우량계열사 자금을 한라중공업에 불법 지원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 처벌법상 배임 등)로 복역, 항소심 끝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몽국씨는 현재 한라대학교를 운영하는 배달학원 이사장으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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