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지만, 여느 해처럼 8월은 휴가철이다. 성수기를 맞은 대한민국은 휴양지마다 사람으로 넘쳐 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대통령은 일을 싸들고 명목상 휴가를 보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군 보안시설에서 휴식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장관, 차관들이 휴가를 갔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유례없는 폭염과 심상치 않은 경제 상황 따위가 고위공직자들의 휴가를 발목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도 누가 휴가 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국회의장이나 대권 주자급 정치인들은 짤막한 단신으로라도 들려올 법 하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지금 정치권은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무색할 만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2년 차 당대표를 뽑기 위해 전국 순회 연설회를 갖고 있고, 평화당은 이미 대표를 뽑았다. 바른미래당도 대표 선거를 앞두고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노무현의 정책실장을 비대위원장으로 모시고 설설 끓는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이런 열전 속에서 휴가 타령하는 정치인은 변변치 않은 존재감을 인증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매해 여의도 정치권이 이렇게 바쁜 여름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국회는 국회법에 따라 짝수 달에 임시국회를 열고, 9월부터 100일간의 정기국회를 연다.
 
휴가철인 8월에도 임시회를 열긴 하지만 국회도 7월부터 8월 중순경까지는 휴지기로 여기긴 한다. 대놓고 휴가를 가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틈을 보아 쉬는 경우도 많다. 물론, 국회의원도 법적으로는 공무원 신분이어서 연차도 있고 휴가도 있지만 그걸 내세우지는 않는다.
 
국회의원들은 조용히 휴가를 간다. 따로 휴가를 결제해 줄 사람도 없으니 자기 쉬고 싶은 때 쉰다. 국회의원들은 자영업자처럼 쉰다. 자영업자들이야 언제부터 언제까지 휴가라고 업장 출입문에 써 붙이고 쉬지만 국회의원은 휴가를 떠나도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행여나 누가 알세라 보좌진이나 일부 측근들에게만 알린다. 선출직인 까닭에 지역구민 눈치도 보이고, 항상 언론에 노출되다 보니 기자들 입길에 오르는 것도 꺼리지기 때문이다. 300명 국회의원 중에 대명천지에 드러내고 휴가를 떠나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포드자동차를 창업한 헨리 포드는 휴식을 모르는 사람을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에 비유했다. 쉴 줄 모르는 사람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본 것이다. 물론 포드주의를 고안해서 공장제 노동을 창조한 헨리 포드가 인간적인 이유에서 휴식을 강조했을 리는 없다. 포드와 같은 자본가에게 휴식은 생산성, 효율성을 높일 합리적인 선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차 휴가 의무 사용을 강조하면서 “휴식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라고 한 말과 일맥상통한다. 자본의 세상에서 휴가는 쉼이 아닌 재충전에 더 가까운 행위인 것이다. 휴가지로 떠난 사람들은 방전된 배터리를 채우듯 소모된 근로 의욕을 되살려 일터로 돌아와야 할 운명이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연차 휴가 사용을 권할 정도로 피로사회를 살고 있다. 연차 쓰는 게 눈치 보이고, 여름휴가 날짜 잡을 때 소심한 용기를 내야 했다는 무용담도 쉽사리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어렵사리 ‘찾아 먹는’ 휴가를 ‘재충전’으로 소모해야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항상 앞서가는 선각자는 있는 법인지 국회에선 의원실 출입문에 “너무 더워서 좀 쉬었다 올게요”라고 써 붙이고 휴가를 떠나버린 한 초선의원실이 있었다. 이번 여름은 대통령의 휴가보다 이 초선의원의 쉼이 더 휴가의 본질에 가까워 보인다. 더 많은 국회의원들이 이런 쉼을 갖게 된다면 우리 사회도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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