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We are the Moon Pa(우리가 문파다)’. 지난 6일 대전 MBC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송영길 의원이 차고 있던 팔찌 문구다. ‘Moon Pa’는 ‘혜경궁 닷컴’의 도메인 주소인 ‘www.moonpa.kr’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구다. ‘혜경궁 닷컴’은 반(反) 이재명을 외치는 친문 지지층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최근 이 지사의 부인인 김혜경 씨를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당대표는 당 전체의 화합을 도모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왜 당대표 후보인 송 의원은 같은 당원인 이 지사에 노골적으로 칼날을 겨누고 있는 집단을 암시하는 팔찌를 찬 것일까. 정치권은 이재명 지사 논란을 ‘친문 세력 결집용’이라고 분석한다. 결국 상대적으로 비문계로 분류되는 송 의원이 이 지사와 거리 두기를 통해 ‘문심’에 어필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혜경궁 닷컴 사이트 캡쳐

- ‘非文’ 송영길, ‘혜경궁 닷컴’ 암시 팔찌 착용? 이재명 ‘거리 두기’로 新文 어필 관측
- 宋 “문재인 대통령 팬이 줬을 뿐...” 확대 해석 경계
 

‘혜경궁 닷컴’은 ‘혜경궁 김 씨 사건’ 논란이 일 당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 후보를 반대했던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만든 사이트다. 이들은 이 지사의 아내인 김혜경 씨가 과거 문 대통령을 비방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혜경궁 닷컴’ 사이트에는 ‘혜경궁 김씨’ 사건과 관련한 언론 보도 및 의혹과 관련한 내용들을 게시판을 통해 게시하고 있으며, 패러디 등의 영상물을 올리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김부선엔 ‘후원금’
김혜경은 ‘고발’

 
‘혜경궁 닷컴’ 운영자는 지난 5월 9일 홈페이지 알림 코너를 통해 개설 취지를 밝혔다. 운영자는 이 알림에서 “트위터와 블로그 그리고 기사를 통해 ‘혜경궁김(08_hkkim)’ 관련한 그럴듯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며 “그 글들을 살펴보면 어느 순간 저 역시 사실로 믿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분노했다. 다음 대선에는 ‘이재명을 꼭 찍어줘야지’하고 마음먹었던 스스로에게 화가 매우 많이 났다”라고 밝혔다.
 
이어 “저와 같이 평범한 이들이 이해하고 숙지하기에는 트위터에 글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블로그의 글들은 산발적으로 흩어져 단편화되고 있다”며 “언론보도는 무엇 때문인지 사실관계 증명보다는 사족이 많은 매우 부족한 단순 의혹 제기 수준에 아직까지 머물러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와 같이 평범한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 마음먹고 급조한 것이 ‘혜경궁 닷컴’이고, ‘취지’는 시간과 능력이 따라주는 한도 내에서 ‘그냥 모으고, 정리해보자’이다”라고 덧붙였다.
 
혜경궁 닷컴은 이 후보와 교제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던 배우 김부선 씨에 2000만 원이 넘는 후원금을 전달한 것으로 지난 6월 17일 알려졌다. 혜경궁 닷컴은 지방선거 이틀 전인 지난 11일 홈페이지에 김부선 씨 통장 사본 사진을 게시하며 “개개인 판단에 따라 마음을 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계좌 오픈한다”고 했다.
 
이후 후원금은 3~4일 만에 2000만 원 넘게 입금된 것으로 전해졌다. 혜경궁 닷컴 관리자는 “김 씨가 입금 흔적들을 보고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고 전했다.
 
반면 이들은 같은 날 김혜경 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은 판사 시절 페이스북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패러디 ‘가카새끼 짬뽕’을 올려 논란을 빚었던 이정렬(49) 변호사가 냈다.
 
이 변호사는 이날 오후 1시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을 찾아 김 씨와 성명불상자 등 2명을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발하는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 변호사는 “이번 고발은 국내·외에 거주하는 1432명의 의뢰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김경수는 ‘감싸고’
이재명은 ‘시큰둥’ 왜?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로 구성된 ‘혜경궁 닷컴’이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서슬 퍼런 칼날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 당대표 후보에 출마한 송영길 의원이 지난 6일 방송 토론회에서 해당 사이트 도메인 주소 일부가 적힌 ‘팔찌’를 차고 나오자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친문 적자 경쟁’ 프레임 내에서 치러지는 양상이다. 당대표 후보들은 저마다 ‘친문 적자’임을 자임하고 있다. ‘원조 친노·친문’을 자처하는 이해찬·김진표 의원에 맞서 송영길 의원은 ‘신문(새로운 친문)’을 내세우고 있다.
 
이날 토론에서도 3인의 당대표 후보들은 드루킹 특검을 ‘정치특검’이라고 비난하며 김경수 경남지사를 일제히 옹호하고 나선 반면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해선 ‘탈당’을 거론하는가 하면 대부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민주당내 주요 인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지사의 각종 의혹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두둔하고 방어막을 치는 경우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김 지사와 이 지사에 대한 민주당 내 기류가 확연히 갈리는 이유는 우선 당권주자들의 경우 3주 앞으로 다가온 전당대회에서 막대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친문 표심을 고려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김 지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전까지 수행비서를 지낸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까지 묵묵히 역할을 한 친노·친문계의 핵심 인물이다. 반면 이 지사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과 대권 후보를 놓고 경쟁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 당시 친문 핵심 인사로 꼽히는 전해철 의원과 경쟁하면서 독자 노선을 걷는 인사로 인식되는 측면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한 트위터 계정 ‘혜경궁 김씨’와 이 지사의 부인 김혜경 씨의 관계에 대한 의혹까지 불거지자 친문 지지층 가운데선 ‘반(反) 이재명’ 기류가 극에 달했고 급기야 ‘혜경궁 닷컴’이란 사이트까지 등장한 것이다.
 
즉 송 의원이 ‘혜경궁 닷컴’의 도메인이 적힌 팔찌를 차고 나온 것은 이해찬·김진표 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문으로 분류되는 탓에 친문 지지층에 강한 어필을 하기 위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송 의원은 이날 토론회 이후 팔찌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현 정부의 북방경제에 대해 특강을 한 적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 한 팬이 줬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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