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운 쫓겠다’며 나무 관 속 하룻밤 보낸 40대 여성 사망

영화 '검은사제들' 캡쳐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경북 구미시 진평동 소재 한 원룸에서 40대 여성 A씨가 퇴마의식을 거행하다 지난 3일 오전 6시 30분경 변을 당했다. A씨는 액운을 쫓는다며 손과 발을 노끈으로 결박한 뒤 나무로 짠 관 속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내다 유명을 달리하게 됐다. 안타까운 일을 자아낸 ‘퇴마의식’의 전말을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피해자 A씨 “귀신 보인다” … 함께 ‘퇴마의식’ 준비한 B씨와 C씨
구미경찰 측 “세 사람 특정 종교 관련 없어…일상생활서 알게 된 사이”


구미경찰서 측은 관에 못질을 한 자국이나 외압의 흔적이 없는 것을 보아 질식 또는 온열질환을 A씨의 사망 원인으로 여기고 있다.

당시 현장에는 A씨 외에도 50대 여성인 B씨와 C씨가 함께 있었다. B씨는 사건이 일어난 원룸 거주자로서 최초 신고자이기도 하다. 현재 두 사람은 용의자 신분으로 구속된 상태다.

구미경찰서 강력계 이봉철 형사과장은 사건 배경에 대해 “이들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귀신을 불러낸다’고 (말)하는 것들(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심취돼 있었다”며 “퇴마의식을 행하는 과정에서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A “숨 막힌다” 말에
용의자 B·C “조금 참아보라”

 
연일 낮 최고 기온이 경신되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퇴마의식이라며 공기조차 잘 통하지 않는 관 속에서 무사히 하룻밤을 지새우기란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이다. 때문에 몇몇 이들이 특정 종교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일반적 추측과 달리 경찰조사 결과 특정 종교와의 연루 여부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 형사과장은 “이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만나듯 (특정 종교 또는 퇴마의식을 염두에 두는 것과) 상관없이 일상생활 중 만나게 된 사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세 사람은 일상에서 알게 돼 친분을 쌓아 가다 서로 신기(神氣)라든가 귀신·액운을 쫓는 의식 등에 관심이 있다는 공통분모를 발견해 가까이 지내게 됐다.

이 형사과장은 “그러던 중 A씨가 초자연적·비현실적인 부분에 심취돼 B씨와 C씨 등에게 ‘귀신이 보인다’고 털어놓자 자신들 나름대로 방법을 따라 의식을 진행하게 된 것 같다”고 이들이 퇴마의식을 벌이게 된 계기를 말했다.

퇴마의식은 지난 2일 오후부터 3일 새벽까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앞선 2일 오후 8시께 관에 들어간 A씨는 2시간여가 흐르자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관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를 본 B씨와 C씨가 “조금만 더 참아보라”며 권유해 다시 관 속에 누웠고, 이후 밤이 깊자 세 사람은 원룸에서 각각 잠이 들었다.

이튿날 3일 새벽에 잠에서 깬 B씨가 A씨가 누워 있던 관을 열어보니 그가 이미 호흡을 멈춘 상태임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이 형사과장은 B씨와 C씨에 대해 “(당시 현장에서) 외압에 의한 살인(의 증거나 흔적) 등은 발견할 수 없었고, 퇴마의식을 하다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업무상과실(과실치사 혐의)로 두 사람을 체포해 영장을 발부했다”고 말했다.

현재 구미경찰서는 두 사람을 지난 5일 구속한 뒤 관련 내용에 관해 보강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 “올바른 무속은
사람을 살리는 것”
 

앞서 지난달 20일 30대 D씨가 여섯 살 된 딸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D씨는 2월 19일 서울 강서구 소재의 어느 다세대 주택에서 영화에서 본 퇴마의식을 따라 하다 이러한 일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조사 당시 D씨는 “케이블 TV를 보다가 영화에서 퇴마의식이 나와 따라 했다”면서 “딸의 몸에 있는 악마를 내쫓기 위해 목을 졸랐다”고 말했다.

또한 D씨는 평소 딸이 언어발달장애를 앓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퇴마의식을 하면 이를 고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는 우리나라를 샤머니즘 문화가 발달한 국가로 여긴다. 샤머니즘이란 초자연적인 존재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샤먼을 중심으로 하는 주술이나 종교를 뜻하는데, 여기서 샤먼은 무속인과 상응되는 존재다.

하지만 이 같은 사건 사고 때문에 무속신앙이나 샤머니즘에 대해 부정적 선입견을 갖는 이들도 생긴다.

한국민속학회 이정재 회장(경희대학교 교수)는 “이것은 올바른 무속신앙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무속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전통적인 무속에서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는 의식 자체도 없다”며 “오히려 (이러한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선) 현대인들의 나약한 정신, 방황하는 정신적 영성(靈性)의 현상, 스스로 자신의 주체성을 확보하거나 찾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혼란성의 결과 등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의견을 표했다.

우리나라 문화 안에는 예로부터 나라의 대소사를 점(占)치거나 무속인을 찾아가는 등 샤머니즘과 무속신앙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퇴마의식 관련 사건의 뒤편에 샤머니즘이 발달한 우리나라의 특성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 볼만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초자연 현상과 관련 있는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가) 한국인의 근성과 자질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한국이 무속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지만, 이것과 퇴마의식과 관련 있는 일련의 사건을 직접 연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의 경우 반도(半島)라는 특징 위에서 샤머니즘 정통성이 지속될 수 있었으며, 고려·조선 때 상황도 샤머니즘이 뿌리 내리는 데 일조했다고 전했다.

당시 지배 세력의 압제 속에서 민초나 민중, 가난한 하층 계급이 향유하고 기댈 수 있는 신앙 체계가 무속 밖에 없어 기반이 더욱 공고해졌다는 분석이다.

또한 그에 따르면 퇴마의식은 심리학·종교적 영역·무속 등 모든 정신세계를 다루고 있어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초자연 현상과 관련 있는 사건들을 무조건 ‘무속적인 일’로 결부짓기 보다는 심리학·종교적 영역·무속을 모두 아우르는 넓은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전체적인 정신적 방황의 상태는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유사한 문제와 현상들은 도처에서 일어난다”며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두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인문적인 부분과 인간의 정신을 강화시키는 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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